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젠젠 May 07. 2023

과거에서 온 편지들

손편지 감성을 이어간다는 것



부모님 댁에서 소지품을 정리하다 종이박스에 가득 담긴 편지들을 발견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은 손때 묻은 오래된 편지들이 가득했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캐캐묵은 추억들이 밀려들었다. 


어렸을 적 순수한 호감으로 주고받았던 쪽지들,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던 교환 편지들, 타국에 멀리 떨어져 지낸 친구와의 안부편지, 서로의 사랑을 속삭였던 러브레터까지. 지금 와 다시 읽어보면 그때의 순수했던 아름다웠던 감정들이 다시금 떠오르고 만다. 그때의 나에게 글로리였던 순간들.


메시지의 디지털화가 시작되기 전, 소통을 위한 수단 중 하나였던 손편지. 그때의 감성을 곰곰이 떠올려보면 간질간질한 느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종이에 연필로, 펜으로 꾹꾹 눌러써 내려가던 감정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편지를 받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하고 싶은 얘기를 차분하게 한 글자, 한 문장씩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내용은 웬만하면 고치기 싫다. 지우개로 지우거나 슥슥 그어버리면 그만인데. 그 쉬운 행동 하나로 인해 그 순간의 내 감정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한번 써 내려간 내용은 고치기 싫다. 그래서 손편지는 내 감정을 담아내는데 있어 더 솔직하다. 다시 고치지 않을 걸 알기에 순간의 내 감정에 더 충실하게 된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진심으로 애정을 담은 메시지를 꾹꾹 눌러 담는다. 


아직도 가끔 친구와 손편지를 주고받는다. 여행 갔을 때 현지에서 이쁜 엽서를 사서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전시회 갔다가 기프트샵에서 구매한 굿즈에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에 대한 감상을 담아 보내기도 한다. 누군가를 위해 편지지를 고르고 어떤 내용을 적을까 고민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과정 하나하나가 편지에 가득 채워진다. 이걸 알기에 편지를 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 편지 하나에 고스란히 담긴 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낼 엽서를 고르는 순간을 즐기며


요즘은 손글씨를 쓰는게 참 어색하다. 메시지는 항상 톡으로 간단히 보내고, 노트북, 패드, 폰에 메모하는 게 익숙한 세상이다. 그래도 여전히 가끔이나마 손편지 감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건, 아직은 내 마음 깊숙이 소녀 감성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은 삭막하기만 한 세상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얼마 전 출산 한 친구를 위해 서랍에서 고이 모셔둔 엽서를 꺼내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지에서는 그 지역 음식을 먹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