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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영 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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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링 Sep 17. 2023

처음으로 수영을 멀리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여름이 다가오니 수영장에 새로운 사람들이 가득했다. 레인별 10명 이상의 사람들로 가득 찼고 덕분에 나는 밀려 밀려 연수반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내가 과연 쫓아갈 수 있을까?’

‘해보자!’


스스로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 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새벽 수영을 나갔고(다이빙 수업 제외), 저녁에도 주 3회 이상은 꾸준히 나갔다.

하지만 연수반 사람들의 실력을 쫓아갈 수 없었고 매일 맨 뒤에서 거리가 더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조급하게 수영을 했다.


두 달을 열심히 다녔다. 난 여전히 뒤에 있다. 이제는 쫓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내 수영실력이 더 늘었으면 하는 의욕도 사라졌다. 점점 자신감도 자존감도 사라지고 이제 수영장이 무서워졌다.


‘가야지.. 연습해야 실력이 늘지.’

‘내가 수영을 빠지다니 그건 말도 안 돼.‘

‘내 하루에서 수영을 빼면 남는 게 없어.’

‘수영이라도 해서 운동을 해야지.’

‘수영 안 가면 게을러지는 거야.‘


스스로 채찍질하며 겨우겨우 몸을 이끌고 수영장에 갔는데 결국 터져버렸다. 이제 수영장이 싫어졌다. 하루라도 안 가면 몸이 간지럽고 답답하고 우울했는데 이제는 수영장을 생각하면 우울해졌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루틴도 지겨워졌다. 그래서 과감하게 수영장 금지령을 내렸다. 일주일 동안 수영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수영장 금지령 1일 차

새벽 수영이기 때문에 매일 5시 20분에 눈을 떴다. 수영장을 가지 않는다고 늦잠 자는 것은 나를 더 괴롭게 할 것 같아서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옷을 갈아입고 집 근처 공원에 올라가 걸었다. 새벽 공기도 좋고,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새로운 루틴을 시작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았다.


수영장 금지령 2일 차

저녁 8시. 이번에는 따릉이를 빌려 한강 라이딩을 했다. 옥수역->세빛둥둥섬->옥수역 코스로 달렸다. 오래 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야경도 보고 멈춰서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다녀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는 야경을 보면서 운동하니 기분전환도 되고 기분이 좋았다.


수영장 금지령 3일 차

새벽에 일어나 운동 대신 유튜브 편집을 했다.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한 것들이 많았다. 시간이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수영이었다. 그만큼 수영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 시간은 수영에게 양보했다. 이젠 수영이 없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마치 오래 만난 연인과 헤어지고 못했던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기분이었다.


수영장 금지령 4일 차

전 날, 새벽에 수영을 가지 않으니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 친구와 강화도에 가서 일몰을 봤다. 바다의 물이 빠지는 모습, 구름 사이에 뜨겁게 비추다 지는 태양, 보랏빛 하늘, 넓은 논밭. 서울에서는 보지 못한 자연의 풍경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수영장 금지령 5일 차

평일에 저녁 수영이 7시에 있어서 늘 시간이 애매했다. 영화를 보기도, 다른 지역의 카페를 찾아가기도 시간과 거리가 애매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책과 노트, 필기구를 사고 일본어 자격증 책도 샀다. 행복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이제 다음 주에는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나는 원래 수영의 목적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했다. 물에 뜨는 느낌이 좋고, 가끔 물이 잘 잡혀서 앞으로 쭉쭉 나갈 땐 쾌감을 느꼈다. 혼자 좋아서 했던 운동인데 최근엔 자꾸 남들과 실력을 비교했던 것 같다.


운동은 꼭 힘들게 해야 하나?

기록을 줄여야 하나?

잘해야 하나?


아니! 어제보다 더 느려져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져도 괜찮아. 나는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묵묵히 하면 돼. 이번 순간을 겪고 느낀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쉴 땐 과감하게 포기하고 쉬자! 두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수영만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새벽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고, 한강 야경 보며 자전거 타는 것, 서점을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것, 자연을 바라보는 것, 노을 지는 하늘, 야구장 가는 것, 일본 드라마를 보는 것,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것, 활동지를 만드는 것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다음 주에 다시 자신감이 떨어지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자.


됐어.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 일은 과감하게 멈추자! 그것을 대신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 일들이 너무 많다(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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