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8월 7일 정오가 지난 시간 전국에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긴급한 아나운서의 멘트가 방송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RNTC 하사관 훈련을 받으러 동기들과 조치원 32사단에 3주간 입소한 상태였다. 군대란 곳에 처음 들어온 우리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았다. 두 번의 훈련소 입소로 군복무를 마친다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연병장에 집합한 우리들에게 소령 계급을 단 지휘관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동작 봐라. 군기가 빠졌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하며 기합을 주는 것이었다.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아서 연병장은 질퍽대고 물기가 흥건했다. 훈련소에 들어온다고 빳빳하게 다려 입은 군복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훈련복으로 갈아입은 후 시작된 일주일 간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다. 총검술, 독도법, 야간행군, 고지점령, 총기분해조립, 화생방 훈련까지 꽉 짜인 교본대로 우리를 훈련시켰다.
8월 7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간 동안 더위를 피해 연병장에 설치된 막사 안에서 오수에 빠져있는 사간이었다. 갑작스러운 공습경보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두 완전군장으로 집합한다. 시간은 5분이닷!"
조교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허둥대며 군복을 입고 군장 싸기에 바빴다. 군장을 처음 싸 본 학군단 1년 차인 우리는 허둥대고 있는데 2년 차인 선배들은 벌써 연병장에 집합하고 있었다. 늦으면 또 선착순 기합을 받아야 해서 간신히 연병장에 모였다.
첫날 우리에게 기합을 줬던 소령이 또다시 나타났다. 그는 긴장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북한군이 남침하기 직전이다. 지금 실탄을 지급하니 탄창과 총알을 수령하고 부대원들은 경계태세에 임한다. 알겠나! 목소리가 작다.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우리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바로 옆에 집합한 ROTC 장교 학군단 후보생들도 우리처럼 실탄을 지급받고 있었다. 우리는 분대별로 소총을 들고 각자 경계 위치로 흩어졌다.
그때서야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일이다냐? 미그기가 또 내려온 겨?"
"그러게. 중공군 미그 21기가 귀순했다고 소령이 말하던데."
누구보다 동작이 빨라 분대장을 하던 청주교대 출신 김상0가 말했다. 다행히 공습경보는 다시 경계경보로 낮추어 발령되어서 실탄과 총기를 반납하고 막사로 귀대할 수 있었다.
저녁때 들은 소식은 중국시험비행단 소속 손천근조종사가 다렌에서 훈련 중 이탈해 미그 21기를 몰고 귀순해서 우리 공군이 중부비행장에 안착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2월 23일 북한군 이웅평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대한민국에 귀순했는데 중공군까지 내려왔다니 '우리 민주주의가 좋긴 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사진 출처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