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자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삼십 대 시절, 저는 이미 여러 권의 전자책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PC통신부터 인터넷 개인홈페이지까지 다양한 곳에 남겨두었던 글들을 모아 수십 권의 전자책으로 엮었는데요, 이쪽 장르의 글이 많지 않다 보니 당시의 책들이 아직도 종종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합니다. 물론 1년 인세가 술 한 잔 값 정도지만(뜻을 같이 하는 작가들과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전부 기부합니다), 한편으론 그 시절의 전자책들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가 닿고 있다니 뿌듯하기도 하네요.
이번에도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책으로 내야겠다’는 특별한 목표는 없었어요. 하지만 글이 쌓이고 보니, 묶어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생겨났습니다.
사실 어느 글에서 “요즘은 누구나 책을 낸다. 블로그 글 모음 수준인데도…”라는 푸념을 보고 ‘그래, 나도 자제해야지’ 싶었는데요, 반면에 또 그런 사람은 제 글을 안 읽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용기 내서 책을 내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책은 파트너인, 아니 남편이라고 해두죠, 오스씨와 함께 여기저기 여행하며 써온 여행기를 모았습니다. 앞으로도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쓰고, 글들이 모이면 전자책으로 하나둘 정리해 나갈 생각입니다. 대대적으로 봐주세요, 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식으로 글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혹시 이 소박한 여행기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네이버에 링크를 걸어 두었으니 구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 소개
띠동갑 중년 게이 부부, 선우비와 오스씨의 타지 생활 모험이 펼쳐집니다! 이들은 매년 특별한 이유 없이, 그러나 아주 특별한 이유로 또 다른 도시를 찾아 떠나죠. 그들이 택한 목적지는 제주, 속초, 고성 그리고 광주와 선유도, 군산까지… 한 곳도 평범한 곳이 없습니다.
2022년 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시작한 제주 한달살이!
현실의 골칫거리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안 하겠다!”며 제주로 향한 두 사람. 하지만 가성비와 본전 생각에 익숙한 선우비와 오스씨가 가만히 있을 리가요! 결국 오름 투어부터 책방 투어, 자기 성찰에 친구들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활동으로 가득 채운 한 달이 펼쳐집니다. 이들의 여행은 단순한 ‘힐링’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들에 도전하기!”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운 두 사람의 제주 라이프를 따라가다 보면,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절로 들 거예요.
2023년 여름, 다시 떠난 속초/고성 반달살기
지난 한 달간의 제주살이에서 쓴맛, 단맛 모두 봤던 이들, 이번엔 단맛에 집중해보자며 기간을 ‘반’으로 줄여 속초와 고성으로 떠났습니다. 설악산의 장관, 동해의 푸른 바다를 벗 삼아 이들은 과연 제주에서 맛보지 못한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작은 바다 마을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반달살기, 이번엔 좀 더 느긋하게, 그러나 여전히 다채롭게!
2024년, 이들의 타지 생활 3탄! 광주, 선유도, 군산 열흘살기
‘프로 타지살이러’가 된 선우비와 오스씨가 또다시 배낭을 메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여행 전 기상청으로부터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 “홍수와 돌풍 주의보!” 자연의 장난을 이겨내며 이들은 여행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요? 특히 광주에서 남다른 흥미를 보이는 선우비의 게이바 탐방기까지, 속속들이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합니다. 광주와 선유도의 매력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빠져 보세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이 부부의 타지살이 모험, 그 흥미진진한 여정에 동참해 보세요!
작가 소개
선우비(敾郁斐). 오스씨와, 2005년부터, 부산에서, 게이 커플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퀴어에 대한 이야기와 소설을 씁니다.
책 속에서
1. 어떤 게이든 자신만의 디바 한 명쯤 품고 산다는 말이 있다.
나에겐 이효리다. <효리네 민박>을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효리처럼”은 다시금 시대정신이 되었다.
그녀는, 스몰웨딩, 유기견 돌보기, 가죽 제품 사용금지, 요가, 명상, 비건 등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일들을 현대인들이 추구해야 할 힙한 무언가로 바꿔버렸다.
나도 힙스터가 되고 싶었지만, 50대 게이 꼰대, 자존감 낮은 몸매, 코스트코 중독자, 개를 살짝 무서워하는 고양이 집사.
사실상 이번 생은 글렀다고 봐야지.
그래도 기왕 제주도에 왔는데, ‘효리처럼’의 맛은 살짝 보고 싶었다.
2. 그러고 보니 "도장 깨기"는 우리 여행의 특징을 적확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혹시나 해서 네이버에서 도장 깨기 여행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대체로 한 군데 '지역'을 선정해, 그 지역의 관광코스를 모조리 섭렵하는 걸 도장 깨기 여행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우리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우리의 도장은 '지역'이라기보다는 '주제'에 가깝다.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하루에 두세 개씩 40여 개의 오름에 오른다든지, 도쿄에 가서 지역구별 남성 편집숍을 돌아다니며 여행 내내 쇼핑만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우리, 이 먼 곳까지 와서 왜 '이것만' 하고 있냐."
가끔 오스씨가 볼멘소리로 항의하지만, 나도 잘 모른다. 맘에 드는 작가(소설가, 만화가, 음악가, 가수, 영화감독 등)가 생기면 전 작품을 모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그렇게 끝을 보아야 새로운 곳에 관심을 돌릴 수 있다.
그런 '외골수 편집증'은 함께 사는 파트너에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하는 나쁜 버릇일 텐데, 어휴... 그런 면에선 우린 어찌나 천생연분인지. 사귀고 나서 처음 오스씨 집에 갔을 때가 기억난다. 방 하나를 통째로 옷방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 많은 옷 대부분이 한 개의 브랜드 제품이었다.
3. 중년 이상의 나이대 게이가 갈 수 있는 게이바는 가볍게 한잔 하는 원샷바와 단란주점 형태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친구가 "노래하고 싶다"라고 청하지 않는 한, 원샷바에서 칵테일이나 와인 한잔 하는 걸 즐긴다. 단란주점에 가도 노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야 마이크 잡으면 놓기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오스씨조차 7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들이나, 일본 엔카도 구성지게 부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대가 늙어가면서, 또 아이돌 음악이 흥하면서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점점 줄어갔다.
그러다 어느 나이를 기점으로 더 이상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일단 키가 너무 낮아져서 내가 신청한 노래가 나오면 키부터 낮춰야 한다. 평소 연습을 단단히 했으면 적당한 키를 외웠다가 능숙하게 높낮이를 맞출 텐데, 술 먹고 대책 없이 부를 때가 많다 보니 키 조정하느라 앞부분은 다 날리고, 고음에선 삑사리 투성이가 되곤 일쑤다. 근사한 남자란 이미지를 팔고 싶은데, 헛웃음 유발하는 사내 장기자랑 애송이로 전락하는 일이 반복되자, 게이바 무대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목차
제주 한달살이 : 예쁜데 별로다, 그치? / 우리는 이종사촌 / 이효리처럼 / 나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 게이나 걔 / 자연에 체하다 / 까짓거 가자, 백록담!
제주 여행 + : 명상, 제주가 선물한 경험적 판타지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오름 / 우리가 고른 행성어 서적들 / 나는 선우비입니다, 나는 난민입니다
속초 반달살이
설악 산책 : 비룡 폭포 / 비선대 / 용소 폭포 / 곰배령 / 인제 자작나무 숲 / 흔들바위
고성 바다 : 봉포 / 교암리 / 백도, 아야진 / 가진 / 아야진
속초 놀기 : 속초에서 생긴 일 / 먹은 것들 / 중앙시장의 먹거리들 / 카페들/ 속초, 고성의 서점들
광주, 선유도, 군산의 초여름 열흘
광주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독립 서점 투어 / 게이바들 / 시립미술관에서 다짐 / 먹고 마시기
선유도 : 기대와 실망 사이 / 교훈 줍줍 여행 / 우아한 가난뱅이의 눈부신 안부 / 잘 쓰고, 잘 쉬다 갑니다
군산 : 월명동 게스트 하우스, 서점 마리서사 / 식도락 '밝은' 곁 이야기 / 식도락 '흐린' 곁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