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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비 Apr 08. 2024

10. 주먹을 불끈 쥐고 퀴어하자!

연작소설, 정연우 편

이야기가 이곳저곳 표류하다 다시 동필로 돌아왔다. 언니들의 걱정이 계속되자 지광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자신이 기획한 유튜브 채널 <럭셔리 디쉬라이프> 영상을 소개하며 동필이 만든 요리들이라고 자랑했다.

반응은 (다들 술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민호형은 청소년동성애자들을 돕는 단체의 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꼬막도 같이 하면 좋겠다. 가출한 애들이 많아서 식사 봉사도 자주 하거든.”


“수십 년 만에 만났는데 벌써부터 부려먹으려고 하네. 꼬막이 얼마나 바쁜지도 모르고.”


원장형의 만류에 동필은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시간 많아요! 잠자고 있던 ‘마미 DNA’가 꿈틀거렸다. 민호형은 거봐, 하면서, 늙을수록 고립되면 안 된다며 해공을 설득해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라 했다.

뿌까형은 동성 결혼 준비하는 애들이 웨딩 파티를 주관해 줄 사람을 찾는다는 정보도 알려주었다.


“적은 인원이 모여서 간단하게 하는 거지만 모양은 내고 싶어 하거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부탁할 사람이 없잖아, 우리 쪽이.”


그냥 잠시 수다를 떨었을 뿐인데 동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일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래도 일단은 애인과 이야기를 해봐. 설득해 봐서 안 되면 그때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민호형이 결론을 지었고, 동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필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 앱을 열었다. 조금 전에 찍은 광안대교 불꽃놀이 사진을 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이후에 벌어질 수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순간 위축되려는 마음을 떨치기 위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럭셔리 디쉬라이프>가 게이 쪽에도 먹히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열띠게 논쟁 중이었다. 술주정뱅이들의 헛소리가 대부분이었지만 밤새워 무언가를 해내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동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속으로 퀴어하자! 외치고는 사진을 해공에게 전송했다.


어느덧 하품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서로의 숙소 정보를 빠르게 교환하고는 근처 모텔에 모두 투숙하기로 했다. 민호형이 동필에게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여기서 헤어질 건지, 아니면 자신처럼 정연우를 찾아올 누군가와 함께 나무위키를 완성할 건지.

동필은 자고 나서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자고 일어난 후에 마음이 가는 대로 하겠다고.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휴대폰에서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정연우를 다시 그의 삶으로 불러온 바로 그 알림음이었다.


연작소설, <퀴어하게>의 정연우 편 마침.


이 소설은 부산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에서 2023년에 진행한 '소설가 김비님과 함께하는 소설 쓰기' 수업에서 쓴 작품입니다.

저의 20대 경험을 조금 녹여서 만든 이야기라 팩트와 꾸밈이 왔다 갔다 하는데요, 혹시라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이 있다면 '즐겁게 만든 이야기'로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설을 다 쓰고 나니 정연우가 다른 닉네임으로 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계속해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장 입구에서 당황한 일행을 지하로 이끈 검은 옷의 남자 이야기를 써보고 있습니다. 그는 닉네임 허왕호의 지인인 '이경우'라는 사람으로, 함께 퀴어퍼레이드 댄스팀에 참여했다는 설정입니다.

한동안 열심히 쓰다가 어딘가에서 콱 막혀서 멈춘 상태인데, 브런치에 연재하는 압박감을 에너지로 삼아 다시 도전해보려 합니다.

그럼 연작소설 <퀴어하게>의 다음 이야기, 이경우편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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