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우산이 없었고, 비를 피할 생각도 없었다. 사람들이 비를 피해서 우산 속으로 도망칠 때 나는 가만히 비를 맞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서 내 몸은 온통 비에 젖게 되었다.
나는 우산이 없었지만,
있더라도 펼치고 싶진 않았다.
세상이 나에게 씌어주는 우산을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으니까,
모두가 비를 피해서 걸어 나갈 때,
나는 가만히 있었고,
나에게는 우산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한 번 젖어 봐야 아는 게 있다고.
말로 들은 친절은 오래가지 않고,
몸으로 겪은 외로움은 오래 남고,
마음에 생긴 상처는 나의 그림자처럼 매일 따라다닌다.
집에 돌아가자 내 몸은 비에 뒤덮여진 상태였다.
방은 따뜻했지만 나는 서늘했다.
그날 나는 비에 젖은 게 아니라 무관심에 젖은 것이었다.
비가 오는 그날이 돌아온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우산을 피는 그런 사람이 되고,
누군가가 나처럼 젖어있다면
말없이 우산을 건네는 사람이 될 것이다.
몸은 말랐지만,
그날 비에 젖은 마음은 마르지 않았다.
그게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습기'일 수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