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로봇
지난번에 영화 와일드 로봇을 보고 꼭 다짐했던, 책으로 읽어보겠다는 결심을 마침내 이루고 말았다.
보면서 영화에 못지 않은, 그러면서도 다른 색조의 감동과 느낌을 받았고, 그걸 적어보고 싶어졌다.
일단 지금 개봉한 영화와 비교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생각보다 내용의 차이는 없었다.
지난 번에 약간 충격까지 느낄 정도로 분위기의 차이를 느꼈던 '내일은 내일에게'와는 달리 이번 작품은
전반적인 분위기나 내용에서 각색을 하긴 했어도 크게 흐름을 바꾸지는 않았다.
물론, 영화에서 돋보였던 핑크와 같은 감초 조연들의 역활이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전반적인 내용의 전개는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같은 내용과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작품에서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들을 묘사하는 텍스트와 비쥬얼의 톤이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 같다.
내 개인적인 감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로즈는 뭐랄까... T 성향이라 고지식하지만 그래도
뭔가 아직 철부지라서 여기저기 좌충우돌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사고뭉치 싱글맘 같은 느낌?
그런데, 책에서 묘사되는 로즈는 뭔가 세상을 달관한 듯한, 그리고 뭔가 깨닭음을 얻은 것 같은
차분하면서도 너그러운 숙련된 모두의 어머니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브라이트빌의 분위기도 많이 달랐다. 영화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비행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을 동시에 가지는 불안한 사춘기였다면, 원작에서는 본능에 따라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젊은 질풍노도의 모험가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영화와 소설이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받는 느낌은 확연히 달라졌던 것이다.
영화가 야생에 떨어진 유사 가족이 서로를 보듬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라면,
소설에서는 뭔가 이 세상에 구원이자 화합의 메세지를 가지고 모두에게 당도한 메시아의 신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부분은 특히 클라이막스에서 모두의 파티를 벌이면서 만드는 커다란 화톳불에서 절정을 달한다.
겨울의 추위에서 피조물들을 구하고, 그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던 불을
희망으로 모두에게 전해주고 거기서 파티를 벌이는 모습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케 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이 작품의 느낌이 마치 만들어진 신에 의한 깨닭음과 고행, 구원, 그리고 희생으로
이어지는 신화의 모습을 띈 것은... 너무 과한 해석이려나?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로즈의 행적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서 나오는 시대 배경이
왠지 환경의 변화로 지구가 물에 잠긴 디스토피아 세계라는 점 때문이다.
개인적인 여담이지만 난 왠지 영화를 보면서 여기는 혹시 인간마저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멸망하고
남겨진 문명의 로봇들이 의미없는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뭐, 소설이든 영화든 둘다 사람이 언급되서 그건 과잉 자의식이였지만,
나는 왠지 이 작품을 보면서 야생에서 눈을 떠서 자신의 의지로 이질적인 세계의 구세주로 활약하는
로즈의 모습에서 작가님이 던지는 세상에 대한 깊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 깊고 다양하게 해석되는 의미에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엄청 두꺼워도 1시간만에 주파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아주 단순하고 짧아도 한참 동안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특히 동화 작품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딱 이 작품이 그랬다.
동화에 걸맞은 쉽고 단순하고 명료한 문장을 쓰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깊이가 느껴지고
그 의미를 매번 깊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텍스트가 가지는 힘이 아닐까 싶다.
뭐,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닐까 오해할까 싶어서 말해두지만
결코 어렵고 복잡하지 않은 책이다. 어른들은 사흘을 정독해야 할지 몰라도 아이들은 30분이면
신나게 주파할 수 있는 책이니 걱정하지 말고 집어들기를 권하고 싶다.
P.S 1 비버 가족들 대체 뭐지? 왜 못만드는 것이 없어? 로즈 의족, 겨울 대피용 쉘터 여러개,
나중에는 물고기 담아갈 수조까지? 너 사실 비버 아니지?
P.S 2 핑크는 확실히 영화랑은 전혀 다른 캐릭터인듯. 그래서 지난번에도 말했던 주토피아의
닉이 잠시 카메오 출연했다가 아예 조연까지 꿰어찼다는 것에 한표! 그러고보니 닉 성도 와일드임.
#와일드로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