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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Dec 09. 2024

모두 깜언

모두 깜언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예전에 봤던 여행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기안84 특집에 나왔던 볼리비아 가족이 떠올랐다.


사실 그 방송을 보면 뭔가 조금 세련되고 멋진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와서 

한국에 매력에 빠지는 내용이 일반적이었는데, 그때는 기안84의 게스트라는 특별함 때문인지 현지에서

정말 소박한 삶을 사는 농부 아저씨와 그 아들들이 왔었다.


시청자들은 한국에 방문해서 행복해하는 소년들의 천진난만함에 많이 반했지만,

나는 그때 아이들보다 의외로 그 농부 아저씨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줄을 타고 가야 하는 깊은 시골에 살면서도, 뭔가 말의 품격과 깊이가 철학자와 시인을 연상케 하는

진중하면서도 사색적인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감탄을 통해서 조금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껴버렸다.

언제부터 우리는 부의 기준으로 사람의 지성과 철학까지도 급을 나누게 되었고,

나는 글을 쓰고자 하면서 어느새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린 그 물질주의에 빠져 있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는 다 자신의 생에 사색가이자 철학자이며 

감독이자 시인이고 노래하는 디바다. 저마다의 삶은 모두 하나의 예술이고 그것이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인생은 하나의 걸작으로 찬미될 작품인 것이기도 하고.


서두가 길었는데, 그때 내가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한 사색을 오늘 소개할 이 작품,

모두 깜언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는 것을 말하고 시작하고 싶었다.


이 작품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명작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작가님의 작품이다. 강화도를 배경으로 구개열화에 컴플렉스가 있고, 다문화 가정인 작은 집에 

사는 소녀 유정이 주위에 사람들과 살아가는 1년 동안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처럼 구성한 작품이다.


내용은 말한대로 유정이의 1년 동안 벌어지는 농촌 생활에 대한 이야기이고,

말그래도 옴니버스 식으로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느낌이라 왠지 일기 같은 기분도 든다.


사실 유정이의 삶이 그렇게 녹록하진 않다. 어렸을 때 구개열화로 집안에 구박을 받았고,

엄마는 가출하고 아빠는 사고로 사망해서 할머니와 같이 작은 아빠의 집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작은 아빠는 늦게 베트남에서 온 작은 엄마와 결혼해서 한참 어린 사촌 동생들도 있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벌어지는 농가의 삶은 만만치 않다. 감수성 예민한 소녀가 감당하기에 

고된 노동과 각박한 환경과 날씨, 그리고 주변에 벌어지는 시골의 힘겨운 세상 살이가 결코 쉽지 않다.


그건 유정이 뿐만 아니라, 유정이의 절친들인 지희와 우주와 광수도 마찬가지다. 

다들 저마다의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를 아직 어린 아이들이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처음에 읽을 때 많이 우울한 이야기로 흐르기 쉽단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예전에 읽었던 내일은 내일에게처럼 무겁디 무거운 이야기를 감내하는 인내를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근데, 그런 우려는 기분좋게 깨졌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결코 만만치 않고 결코 과장되지 않은 현실의 무게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느낌으로 이겨내고 그 과정에서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의 파도에 젖게 만든다.


처음에 언급했던 그 볼리비아 농부 아빠의 모습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궁벽한 시골이라 할법한 곳에서 아이들은 수많은 새의 이름과 울음소리를 노래로 들으며 마을을 달래고

계절마다 스치우는 꽃의 향기와 맛으로 시간을 감내하고, 논에 비친 달빛과 스치우는 바람에 

삶을 관조하고 한걸음 더 성숙해지는 모습을 담담하지만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과정과정이 마치 시처럼 느껴져서, 이 작품을 읽고 있다 보면 마치 마음은 저 너머에 

풀향기와 포도 내음이 느껴지는 그곳에서 눈을 감고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사람들 하나하나 모두모두가 다 저마다의 이야기와 서로를 위하는 다정함으로 

치유하고 이겨내고 달래가는 모습은 이제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 내음을 추억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중요한 것과

삶에 의미있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역시나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작가님의 필력이 

변치 않으심을 되새길 수 있었던 소중한 감동이었다.


책의 후기에도 적혀 있지만, 작가님은 괭이부리말을 쓰기 위해 만석동에서 13년이 걸렸고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강화에서 13년이 걸렸다는 언급을 하셨다. 정말로... 그 시간의 깊이가 압착되어 

녹아들고 배여나와 스며들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깊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트랜드의 청소년 작품들이 개인의 내면과 고뇌에 초점을 맞춘 깊이는 있지만 미시적인 

경향을 띄우는 것에 익숙해지다가, 갑작스럽게 한 개인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감정과 히스토리가 

담긴 이야기를 보게 되서 생소하였지만 동시에 걸작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간만에 되새길 수 있었다.


한번 쯤 삶에 지쳐 숨이 겨운 부모님들과 예민한 사춘기에 방황하는 자녀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치유와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내 삶이란 멋진 시의 시인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나 역시도 조금은 인간 관계의 갈등과 배금주의의 망령에 지배된 내 영혼의 주박을 벗어내고 

오늘만은 내가 아직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내 안의 순수를 위한 시를 써보며 이 작품을 추천한다.




P.S 1 근데 유정이 자학하는 성격치고는 의외로 인기녀? 왜 마을 최고의 인기 소년과 미소년이 

죄다 얘만 좋다고 난리래? 그리고 생각해보면 성격도 의외로 농촌 처녀가 아니라 도도한 공주님 쪽인데?

저기, 유정아... 너 생각보다는 살만해 보인다고 하면 나 너무한거니?


P.S 2 강화도의 익숙한 지리가 나와서 좀 신기했다. 예전에 다녀왔던 곳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인 것 같은데... 근데 거기 작중 묘사처럼 너무 시골은 아닌 것 같던데... 전에 1박2일에 나온 것도 그렇고.

에이, 그냥 그러려니 하자. 스스로의 감동을 깨지 말기로 생각하며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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