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평화 Mar 12. 2024

아름다운 황혼

5. 십시일반

 “어머니, 어머니 호적이 아니고 내 호적 건드리니까 걱정 마세요. 이 일은 죽고 사는 일도 화낼 일도 아니고요. 모든 것은 어머니의 아들이 바람피워 생긴 일이니까 아들이 철이 들어야 끝나는 일이에요.”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새벽부터 움직여서 피곤하다며 안방에 이부자리를 펴라 하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한참 코를 골더니 시장하다며 식사를 하시고 또 주무셨다. 나는 시장에 가서 매운탕 거리와 나물거리를 사가지고 왔다. 조금 있으니까 큰 시누이 부부가 왔다. 

 좋은 일도 아니어서 서로 모르는 척할 수도 있는데, 아들이 바람을 피워 생긴 문제로 서로 모여 떠벌리다니 나는 한숨이 나왔다. 부지런히 저녁거리를 준비하다 보니 남편이 퇴근했다. 

 “어머니, 시골에서 언제 오셨어요? 오늘 무슨 날도 아닌데, 우리 형제들이 모두 모였네요.”

 하며 남편이 말했다.

 “오빠 때문에 걱정이 되어 이렇게 모두 모였어.”

 “무슨 일, 무슨 걱정? 너희들이 어떻게 알았어? 너희들이 걱정하거나 나설 일이 아니야. 누가 쓸데없이 말했지? 새언니는 말할 사람이 아니고. 나는 누군지 알겠네.”

 어머니가 화내며 말했다. 

 “그래 누군가 전화해서 알았다. 걱정되어 오늘 새벽에 출발했는데 그게 할 말이냐?”

 “이제 수습하여 잘 되고 있는데 온 식구가 모여 뭘 어쩌자는 것입니까?”

 남편도 지지 않았다. 마마보이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할 말은 다하는 아들이었다. 

 “내가 당장 미스 논인가 밭인가 하는 여자를 만나 따져보아야겠다. 누구 딸인가도 물어보고.”

 “어머니, 일은 다 잘 끝났으니 그냥 돌아가세요.”

 그러자 시누이가 따졌다. 

 “오빠, 새언니 입장도 생각해야지. 우리가 가서 혼내줄게.”

 “새언니 핑계 댈 필요 없어. 새언니는 미스 노 딸 앞날을 생각하여 나를 이해해 준 사람이야. 미스 노 딸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 주민등록이 없어 학교를 못 간다고 하여 잠시 우리 부부의 주민등록을 빌려주려고 했던 거야.”

 “오빠, 그게 말이 돼? 당장 가서 오빠한테 떨어지라고 살림살이도 부수고 고함이라도 질러야겠어.”

 “새언니도 그 여자가 밉지? 우리가 가서 대신 시원하게 싸워줄게. 어떻게 생각해?”

 “조용히 못해? 미스 노의 친정아버지가 주민센터에 가서 직접 주민등록 해주었어.”   남편이 시누이한테 당당하게 말하였다. 

 “그럼 미스 노의 딸이 동생으로 되었겠네.” 

 시누이가 비꼬듯 말했다. 

 “아가씨, 좀 진정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지금부터 2년 전쯤 사건이에요. 어느 40대 초반의 엄마가 출생신고 못한 여덟 살 딸을 살해한 일이 있었어요. 출생신고를 못하여 학교에 못 다니게 될 딸을 먼저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했지만 자신은 미수로 그쳤어요. 딸은 출생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부업을 해서 먹고살았으나 그 일마저 끊기게 되자, 생활고를 겪게 되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명되었어요.”

 “남편은 없었어요?”

 “남편이란 작자는 술 퍼먹고 와서 돈 달라고 하고, 없다고 하면 발로 차고 때려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대요. 그러더니 제 발로 나가서 연락도 없고. 아주 이혼을 했더라면 엄마 호적으로 올려도 되는데, 아빠의 행방을 모르니까 일이 더 어렵게 되었지요.”  

 “그래서요? 그것하고 언니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고모, 왜 상관이 없어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누군가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갈 수 있었어요. 그 아이한테 학교만 보내줄 수 있었다면, 누군가 출생신고 하는데 도움만 되었더라면 그 엄마는 파출부라도 해서 아이를 가르칠 거였대요.”

 “아이를 어떻게 죽였대요?”

 “목을 눌러서 죽이고 따라 같이 죽지 못하자, 바로 경찰서에 자수했대요. 자기가 죄인이니까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면서.”

 “나는 금시초문인데 그런 일이 있었어요?” 

 시누이가 안 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때 뉴스와 신문에도 크게 나왔는데.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조금씩만 도와주었어도 아이는 죽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사건이 조용히 끝나는 것이 좀 심심한지 다시 말하였다.

 “그래도 나는 그 여자 상판대기를 한 번 보고 싶고 할 말도 있다. 우리 며느리보다 예쁜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 번 더 내 아들을 건드리면 죽을 줄 알라고 호통도 치고 해야겠다.” 

 “엄마, 궁금해요? 미스 노는 아주 섹시하고 그렇지만 마누라보다는 얼굴이 예쁘지는 않아요.”

 하며 남편이 말했다. 섹시하다는 남편의 말에 모두 빵 터졌다. 남편의 솔직한 말 덕분에 분위기가 갑자기 좋아졌다. 

 “아이고, 못 말리는 엄마, 새언니하고 오빠 문제니까 둘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하며 큰 시누이가 어른답게 말했다.

 “어머니,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테니까, 오늘 편히 주무시고 내일 조용히 내려가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런 문제로 식구들 모두 모이게 하지 마세요.”

 남편은 속에 있는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큰 시누이 부부도 시들부들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시집 안 간 막내 시누이랑 같이 잔다고 하며 그녀 방에 들어갔다. 다음 날, 큰 시누이가 집에서 고스톱 치자고 하여 어머니를 모셔다 드렸다. 미스 노와의 일이 잘 해결된 뒤 며칠이 지나고, 남편은 미스 노에게 한 번 만나고 싶다고 전화를 하였단다. 그러나 미스 노는 만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였다고 하였다. 미스 노는 자신도 이 일을 그만 둘 테니까, 여의도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남편한테 하였다. 이 이야기는 남편한테 들은 이야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황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