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판소리와 홍익인간
인간에게 귀향이 있듯이 람사르습지는 사라져 가는 생물들이 다시 돌아와서 살아가는 곳이다. 생물들의 귀향이다.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과 희귀종이 거주하는 습지보호구역이며 그들은 습지를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었다. 1급 멸종위기인 수달과 삵, 또 이름도 모르고 희한한 야생생물들이 무수히 많다. 어류 조개류 곤충 포유류 나비 등이 서식하여 바다의 우주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여기 있는 생물들은 거의 법정 보호동물이 되었으니 소중하게 대접받아야 하고 우리도 당연히 함부로 할 수 없다. 사실 아름다운 생물을 구경만 하는 것도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옆에 관광객 한 분이 여름에는 풀벌레 속삭이고 새들이 노래하는 운곡습지의 반딧불이 장관이라고 하였다.
“언니, 우리 여름에 또 와서 반딧불도 보고 청보리 밭도 가요.”
“아이고, 좋지요.”
점심도 먹었으니 빨리 선운산 도립공원에 가야 했다. 동생은 내가 나이가 좀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움직였으나 나는 호기심이 많아 아름다운 자연을 빨리 모두 보고 싶어 뛰어다녔다.
선운산은 눈꽃천지였다. 코로나 영향으로 선운사에서의 템플스테이 행사는 연기되었다. 템플스테이는 사찰에 머물면서 불교문화와 사찰 생활을 체험하는 일을 말한다. 자신을 비우는 체험이기도 하다. 다른 행사 역시 마찬가지로 취소나 연기되었고 그 빈자리에 눈꽃이 우리를 환하게 반겨주었다.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눈꽃, 대지의 광활함과 태고의 냄새가 우리를 엄숙하고 경건하게 해주었다. 사방이 눈꽃으로 덮인 선운산을 뒤로하고 세계무형문화유산 중의 하나인 판소리박물관에 들렀다. 우리의 판소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세계는 전쟁이라는 고통과 군부독재의 재생, 피 말리는 경쟁들 속에서도 지구 어느 한편에서는 문화와 인권과 예술이 꽃피우고 있었다. 세상은 모든 시간의 집합장소이다.
판소리란 소리라는 음악과 판이라는 자리판이 펼쳐진 공간, 연극의 대본이라는 문학이 어우러져야 판소리가 되는 것이다. 씨름판, 노름판 같은 공간과 높고 낮음의 소리와 이야기가 되는 문학이 어우러져야 판소리가 되는 것이다. 음악과 연극, 문학적 요소가 총결집된 종합공연예술이다. 즉 소리와 연극과 문학이다.
판소리는 참 매력적이다. 5천 년 세월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든 판소리는 인간의 당위성과 숨어 있는 욕구를 끌어내어 필요하면 동의를 구하고 인정받아 만든 사회적 창조물이 되었다. 때로 소리꾼은 자유롭게 정치와 현세를 풍자하여 민중의 사랑도 받아왔다. 고달픈 민중에게 묵시로 허락된 자유와 토로의 판이었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로 구성되지만 다른 장르와 차별화되는 것은 구경꾼이 참여하여 그들의 몫을 하는 것이다. 소리꾼은 대사와 몸짓을 섞어가며 노래하고, 고수는 북으로 장단을 맞추며 취임새로 분위기를 띄우고, 구경꾼은 소리에 맞추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고수는 오페라에 비교하면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지휘자는 공연 중에 소리꾼을 응원하고, 장시간 공연하다 지칠 때 힘을 주는 역할도 한다.
오페라의 관객은 쥐 죽은 듯이 있다가 끝날 때 박수를 마음껏 쳐주면 된다. 그러나 판소리는 ‘얼씨구, 좋다~’ 등의 소리로 구경꾼이 감정을 중간중간에 표현하는데 그 소리가 소리꾼의 소리와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소리꾼과 고수와 구경꾼이 소리에 녹아 흥을 만들고 판을 즐기는 것이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 구경꾼이 만나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어디 한쪽 귀퉁이에서 구슬픈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의 발길은 저절로 혼이 담긴 소리를 찾아갔다. 애간장 태우는 소리는 박물관 옆 판소리전수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소리꾼의 애절한 소리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소리는 나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동안 사느라고 억제하였던 내 안의 티끌들이 일제히 꾸무럭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다리는 저절로 움직여서 하얗게 눈 덮인 동네를 뛰기 시작하여 소리 나는 곳을 향하여 무작정 달려갔다. 덩달아 동생도 내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나는 발을 헛디뎌 얼음 위로 꽝하고 넘어졌다. 머리에 별이 번쩍이면서 아름다운 은하수가 보였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머리는 아팠지만 멀리 은하수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가까이 왔다. 동생이 걱정스러워하는 말도 희미하게 들렸다.
“언니, 눈떠요. 일어나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슬픈 것은 왜 애절하고 아름다울까? 나는 지구와 우주 사이 어디쯤에 있었다. 동생의 애타는 소리에 내 몽롱한 의식은 돌아왔다. 잠시 꿈속에 있었던 것 같다.
“언니, 우리 온천에 가서 에너지도 충전하고 몸 좀 녹여요. 게르마늄 온천은 자연 치유력이 높다고 하네요.”
“나 때문에 많이 놀랐지?”
“언니는 화통하여 속에 쌓인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요.”
“우주 어느 곳에 잠시 들렀다 왔지. 판소리의 아름다움에 더 취하고 싶었어. 도대체 어떤 고통이 이런 애달픈 노래를 만들었는지 잠시 푹 빠져 상상해 보고도 싶었어.”
“아, 그렇다면 제가 괜히 언니를 깼네요. 언니는 참 좋은 엉뚱한 언니!”
“그래서 남편도 나 죽으면 내 머릿속을 해부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어.”
“아니요. 엉뚱한 발상은 머리가 아니라 낭만적 가슴에서 나와요.”
겨울은 온천욕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노천에서 즐기는 겨울 온천욕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천정이 뿡 뚫린 것이 아니라 천정은 하늘이었고 은하수였다. 펑펑 내리는 눈은 온천물에 내려앉으면서 흔적도 없이 바로 사그라졌다. 잡히지 않는 눈은 더욱 아름다웠다. 우리의 몸은 상체는 차고 하체는 따뜻했다. 육체는 물 온도의 영향을 받아 둘로 나뉘고 화합하여 서로 웃고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쌓인 하얀 눈꽃 사이로 빨갛고도 주황색 노을이 서쪽 하늘로 서서히 지고 있었다. 노을과 나 사이 광활한 대지에는 공간도 세월도 없었다. 나는 자연 앞에 금방 사그라지는 작은 눈이었다. 눈은 진눈깨비가 되고 온천탕 물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오늘 하룻밤만 자면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상! 대단히 소중하면서도 가끔은 지겨운 시간도 포함된다. 가슴 뛰며 즐기고 살아야 하는데, 싫증이 안 나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자연이 가르쳐준 대로 좀 더 겸손하게 살면 감사가 나오고 일상을 사랑하게 된다. 일상을 어떻게 사랑하지? 마음을 비우고 남을 배려하고 이롭게 하는 일이지. 내가 또 다른 나한테 물었다. 홍익인간하라고? 그래야 사는 맛이 있지. 나만 위하는 삶은 맹탕이고 재미가 없어. 그래 인간의 덕목 중에 겸손과 연민이 최고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 연민은 곧 사랑이고.
“언니,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물이 많이 식었어요. 이제 숙식하러 갈 시간이에요.”
동생은 아마 내가 또 어떻게 될까 봐, 나는 감정이 좋으면 내 몸이 즉각 반응한다고 아까 했던 말이 걱정이 된 듯하였다.
“언니, 이 방으로 와요. 여기 조용하고 아무도 없네요.”
“따뜻하고 참 좋다. 어제 고인돌 선사체험 방에서 누구한테 그렇게 화냈어? 남편은 잊은 지 오래라고 했으니까 화낼 대상도 아니겠고, 도저히 상상이 안 돼서.”
“우리 엄마지요. 용서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안 했나 봐요.”
예상 밖으로 동생은 쿨하게 대답했다.
“엄마한테 투정이라도 부렸어?”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와 달랐어요. 우리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강한 자식을 좋아했죠. 앵무새 엄마는 아빠와 똑같았죠.”
“부모님 시절에는 자식을 강하게 키우고 싶어 했지. 부국강병을 못해서 일제강점기를 맛보고 고생했으니까. 쇄국정치에서 벗어나서 세상 돌아가는 정세를 알았더라면, 우리 것을 잃지 않았을 것이지.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필요했을 것이고, 가정도 지키려면 같은 공식이라고 생각했겠지.
“아우님은 몇 째 딸이야?”
“우리 동물의 왕국에는 호랑이 아빠, 앵무새 엄마, 강철 오빠, 울보 나, 여우 여동생 모두 다섯이에요.”
“별명만 들어도 재미있네.”
“나는 집에서 왕따였어요.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나중에는 교장으로 정년을 끝냈어요. 엄마 역시 아버지와 함께 초등학교 부부교사였어요. 같이 교사 생활하다가 내가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나 때문에 창피하서 엄마는 교사생활을 그만두었어요. 아버지는 나 보기가 싫다고 멀리 전근을 자주 갔었지요.”
“엄마가 집에 계시니까 더욱 잔소리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어요. 초등학생 다루듯이 나를 다루는 것이었어요. 엄마가 가르쳐야 되는 학생과 딸을 분간 못하면, 나는 엄마의 딸이 아니라 제자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몇 번 가출했어요.”
“동생이 엄마를 많이 힘들게 했네.”
“내가 처음 가출했을 때는 엄마는 나를 찾으러 이웃 동네까지 헤매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나를 덜 찾았고, 세 번째부터는 아예 찾지도 않더라고요.”
“그리고 가출은 끝났지?”
“네, 가출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어요. 엄마를 골탕 먹이려고 했는데 엄마가 먼저 선수 친 것이었죠.”
“왜 어머니가 유독 동생한테만 혹독했을까?”
“그 이유가 있지요. 엄마는 나를 무조건 강하게 키우려 했는데, 나는 왜? 하며 항상 이유를 물었고, 엄마의 방법이 틀렸다고 했으니까요.”
“강하다고 다 나쁜 것만은 아닐 텐데.”
“엄마는 불의를 해서라도 강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면 다른 일은 잘못해도 넘어가 준다,라는 뜻을 암시했어요. 저는 그것이 싫었어요.”
“불의에 항전한 정의의 사자였군요. 그 점도 나와 비슷하네.”
“비슷한 점이 무엇이 있었나요?”
“솔직한 점도 나와 비슷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