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황혼
단편소설 ‘아름다운 황혼’이 11회에 걸쳐 드디어 막을 내렸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이 소설이 사실인가요?”
“모두 사실은 아니고, 전부 창작도 아닙니다. 좀 섞어졌지요.”
“주인공이 너무 바보 같아 화도 났어요. 소설 도입 부분은 진실인 듯하네요.”
“네, 사건 발생은 사실입니다.”
“어쩜, 주인공이 뚱딴지같아서요. 후회하지는 않으세요?”
“주인공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실 이 소설이 태어난 이유는 그런 바보 같은 따뜻한 행위가 그리워서였어요.”
옆에 있는 그의 친구가 물었다.
“주인공이 얼마나 바보 같았으면 네가 화를 냈을까, 어떤 이야기야?”
“한 남편이 바람피운 이야기야.”
“흔하디 흔한 소재이구먼. 그런데 궁금하다. 듣고 싶네.”
“문제는 주인공이 남편과 바람피운 여인의 딸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결론만 이야기해.”
“Happy ending, 행복하게 끝났어.”
“딸이 어떻게 됐어?”
“궁금하면 on line, 브런치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보세요.”
나는 이런 소설이 좋다. 부족한 가운데 하나씩 조금씩 이루어 가는 주인공들 이야기이다. 그들이 불공평, 부조리, 탐욕, 권력, 거짓과 싸우면서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이야기는 우리들을 설레게 한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으로 폐허 된 땅에서 맨 주먹으로 시작하여 모든 일을 조금씩 이루어 가고 있다. 그 과정에 잡음도 소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이런 맥락에 맞는 현존하는 젊은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손흥민을 말하고 싶다.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던 독일 팀에서 시작하여 영국에서까지 인종차별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과 싸워 승리하려면 더 사나워야 할 텐데, 부드러운 태도와 따뜻한 인간성, 배려, 성실과 실력 등 반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반대들이 살아남아, 세계 모든 이들이 환호하고 기대하고 있다. 고난에서 희망을 만들기 위해 흥민은 얼마나 뛰고 또 뛰었는가. 그의 인내와 바른 생각에 경의를 표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찬란한 우리의 문화’는 그냥 공허한 말이 아니었고 원래 있었던 우리의 알맹이였다. 나는 이런 좋은 것들을 거저 가진 문화의 빚진 자이다. 이제 나이도 먹어 빚을 갚을 차례가 되었는데 쉽지가 않다. 흥민의 인내와 바른 생각을 따라 하고 싶다. 빚을 갚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