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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Oct 29. 2023

오늘도 저는 성실히 출근합니다.

회사는 제게 월급이란 것을 줍니다.


월급은 매우 달콤합니다.

고장 난 아이팟프로를 새것으로 구입할 수 있게 하고,

입고 싶은 옷을 살 수 있게 하며,

필라테스를 할 수 있게 수강료도 마련해 줍니다.


퇴근길 반찬가게에 들러 좋아하는 파김치를 살 수 있게 하고

좋아하는 치킨과 삼겹살

가끔은 호사스럽게 샤인머스켓도 먹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백수시절 제게 이유 없이 밥 사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밥을 살 수 있게도 하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십년지기 친구들과 푸꾸옥으로 여행을 갈 수 있게 경비도 마련해 줍니다.


이 모든 게 제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기 때문에 가능하단걸 압니다.

그래서 달콤함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가 작년 5월

10년을 넘게 근속한 회사에서 과감히 탈출했습니다.

물론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없이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계속해서 근무할 수 있었지만

휴식이 절실했습니다.

회사의 그 어떤 제안도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더욱 벗어나기가 어려울 거란 생각에 큰 마음먹고 뛰쳐나왔습니다.


퇴사를 하며 1년 동안 금전적으로 얼마를 쓸지 정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목표했던 금액보다 지출이 더 커져 버렸습니다.


달콤함은 이미 끊긴 지 오래고

통장잔고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달콤함을 안겨줄 곳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초조함이 가슴을 턱 하게 막히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초조함이 극에 달할 때쯤 저는 다시 제게 달콤함을 주는 회사로 들어갔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는 오랜만에 구직자의 입장이 되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들의 간절함을 느꼈습니다.

또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적응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기도 했습니다


친한 친구는 제가 쉬고 있을 때 시간을 너무 헛되어 보내는 게 아니냐며 질타했습니다.

다 너를 아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며.. 물론 친구의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큰 결심을 하고 맞이한 휴식의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활동, 소위 자기계발을 마음껏 할 수 도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당시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지나고 나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육체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생각이란 것을 전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숨만 쉬며 지냈습니다.

소위 말하는 번아웃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어느덧 스스로 정한 1년의 휴식시간이 끝나갈 때쯤 극도의 초조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취업은 할 수 있을까? 나를 받아 주는 곳이 없으면 어쩌지?

받아 준다 해도 새로운 조직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 재입사가 정답일까?


하루에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감에 난생처음 불면증이란 것도 잠시 경험했습니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기절하는 저인데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잠이 들어도 중간중간 계속 깼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저는 다시 달콤한 월급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준 회사에 감사해하며 성실히 출근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없는 생활을 겪어 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끔찍한 미래도 같이 그려보았죠.

이 경험은 앞으로 제가 살아갈 날들에 대한 준비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불행인지 축복인지 어쩌면 저는 100살까지 살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내일이 없을 수도 있죠.

게다가 100살은 한참 멀고 멉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오늘만 바라보며 살기에는 평균수명이 무섭게 길어졌습니다.

다행히 아직 달콤한 월급이 끊겼을 때의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기에 저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출근합니다.


하지만 이 회사가 나의 평생직장이라는 마인드가 아니라 또 다른 자기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줄 곳으로 이용하기 위해 출근합니다.

회사가 나를 조직의 부품으로 이용하듯  나 역시 회사를 이용하러 갑니다.

그 이용이 누군가는 업무적인 배움의 성장일 수 도 있고, 저처럼 다른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경제적 도구로서 이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회사를 이용하기 위해 출근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용을 위해 출근하는 회사가 아닌 주체적으로 저의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방향이 이어질 수 있도록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성실히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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