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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희 May 21. 2023

About being alone, Gdansk

12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Main Town Hall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홀로 여행을 그단스크에서 끝마치게 되었다. 런던에서 처음 시작해 본 홀로 여행은 오롯이 혼자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나가는 설렘과 뿌듯함이 있었다면 이제 그단스크로 끝맺는 홀로 여행은 잔잔한 공허함이 남는 것 같다. 매일이 다채로웠던 지난 5개월간의 시간들도 휑한 겨울을 맞이하는 듯 잔잔한 마무리로 다가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너무나 빨리 지나간 시간이 야속하기도 하고 한 명씩 떠나보내고 나조차 곧 떠나야 하는 이별의 시간이 슬픔을 안겨주었다. 

Neptune's Fountain

 그단스크는 이런 겨울의 포근함과 공허함을 동시에 수채화로 슥슥 스케치한 것만 같은 도시였다. 크리스마스 당일 바로 다음날에 가게 되었는데, 이 도시도 마치 떠들썩하고 즐거운 시간들과 방금 작별 인사를 한 듯 몸통만 남은 크리스마스 마켓과 홀로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트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큰 트리와 넵튠 분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광장은 알록달록 몽글몽글 동유럽 특유의 색감을 느낄 수 있어서 많은 시간을 보낸 곳 중 하나였다. 그단스크는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와 멀리 떨어져 북쪽 해안가에 위치해있어, 아마 교환학생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 같은 도시이다. 

DEO Plaza

 도시 자체는 크지 않아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 계속 지나다니는 길이 있다. 그린 브리지가 그런 길 중 하나였는데 지나갈 때마다 다리의 양옆으로 예쁜 건물들과 햇빛이 비쳐 반짝이는 윤슬 탓에 한없이 천천히 지나갔다. 왼편에는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봤던 건물 중 가장 현대적이면서 독특한 건축물이 있었는데, 나는 그 건물들을 현대화가 잘 된 유럽식 건물의 예시라고 일컬었다. 유럽풍 건축양식을 잃지 않으면서 전면 통유리를 사용한 것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리고 대성당 또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하얀색 내부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없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과 구름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Pier in Sopot

 소폿(Sopot)이라는 근교 휴양 도시에서 보았던 너른 바다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처음으로 바다를 보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옛 시절 일직선으로 보이는 바다 끝을 직접 가보기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생각해 보았다. 거짓말처럼 판판해 보이고 저 끝에 걸려있는 배들이 어디쯤에 위치한지도 가늠이 안 갈 정도로 수평선에서 나란히 꼬리 물며 가고 있었다. 새삼 항해를 시도한 그들의 도전 정신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Mariacka

날씨가 추워지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제한이 있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고민은 커지기 마련이다. 에스토니아를 홀로 여행했을 때도 느꼈지만 내가 여행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는 음식에 대한 경험과 만족감인 것 같다. 그단스크에서 꼭 가보고 싶은 맛집을 리스트로 정리해서 도장 깨기를 하는 재미로 돌아다녔다. 스웨덴에 비해 물가가 저렴했던 폴란드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나머지 굴 6조각을 5만 원에 먹기도 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기도 했지만 음식을 향한 나의 열정은 멈출 줄 몰랐다. 

Mariacka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그 나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보면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을 알 수 있고, 같은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전통적인 요리 방식이 다르면 확연히 다른 맛을 낸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든 여행을 할 때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유명한 음식들은 모두 맛보려고 노력한다. 그 모든 한 입들은 항상 나에게 사소한 행복과 기쁨을 준다. 

Bazylika Mariacka Wniebowzięcia Najświętszej Maryi Panny w Gdańsku

  그리고 항상 '느낌이 쎄 하거나 긴가민가하면 질문하자!'라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얻었던 사건이 있었다. 마지막 날에 늦은 밤 비행기라서 체크아웃하고 배낭을 맡겨둘 곳이 없었다. 내가 머물렀던 호스텔은 무인 운영이라서 비밀번호만 알면 방문 도어록을 잠금 해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이틀 동안 거의 혼자 6인실을 쓰다시피 했고 마지막 날에도 잔머리를 굴려서 배낭을 방 안에 있는 사물함에 넣고 잠그고 이따 밤에 찾아가자는 짧은 생각으로 배낭을 두고 삼십분 거리에 있는 소폿에 도착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바로 호스텔 주인분께 연락이 와서 하필 오늘 그 방에 프라이빗 단체 예약 손님이 있다고 배낭을 당장 찾아가라고 타이르셨다. 결국 다시 삼십분 기차를 타고 와서 배낭을 찾아간 어리석은 이야기였다. 아직까지 무경험에서 비롯된 부족함이 있고 매번 여행을 하면서 많이 느끼고 배워가는 것 같다.

Skwer Kuracyjny im. M. Jakszta

어찌어찌 마무리한 마지막 여행은 이별의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평소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잔잔한 느낌의 여행이었다. 언제 또 유럽을 혼자 방황하며 걸어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홀로 여행을 도전하는 그날에는 더 성장해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동심과 초심은 잃지 않기를!

Gdańsk Carou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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