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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es Blog Dec 28. 2022

당신은 가짜입니까?

가면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

나의 별명은 팔방미인이다.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Renaissance man이라고 한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다.


아이비리그 박사에 교수까지 지냈으니 공부는 잘할 테고

당연히 영어도 잘하겠지만 발음이 원어민 수준이다.

살림을 못할 것 같은데 요리, 베이킹, 뜨개질, 재봉도 잘한다.

자식교육도 잘해서 미국 명문대와 대학원을 골라가는 딸아이가 있다.

그래픽 디자인도 잘해서 웹사이트도 워드프레스로 척척 만들고 동영상도 뚝딱이다.

가방이나 옷에 디자인을 넣어 팔기도 한다.

최근엔 브런치에 글도 올린다.


그러나 난 한 번도 내가 뭘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공부? 연구실적은 항상 부끄럽고 영어로 글쓰기는 아직도 두렵다.

요리는 요리책을 보고 겨우 따라 하는 수준이고

베이킹은 맛은 있지만 어디다 내놓기엔 볼품이 없다.

육아와 자녀교육은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딸 아이가 다 했고 (딸이 뭘 하는지 모른지 오래되었다)

뜨개질과 바느질은 항상 마무리가 엉터리다. 뒤집어보면 처참한 꼴이다.

죽기 전에 정복하고 싶은 피아노는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는 등반가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브런치와 인스타는 손가락질받지 않을까 좌불안석이다.


나의 이런 자신 없음은 가면증후군이라고 한다.

내가 가진 재능과 재주가 대단하지 않은 것 같고, 수준 미달이라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나의 '후지고 별 볼 일 없음'을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산다.


학술적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지성, 자신감, 능력에 의구심을 품으며, 자신이 이룬 성취나 업적을 '운'이 좋아서라던가 '타인의 덕'으로 돌리는 심리 (Clance & Imes, 1978)라고 정의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주로 겪는다는 가면증후군은 많은 정치인, 연예인, 작가, 교수, 과학자들도 이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유명해진 증상이다.


이 증상은 전형적인 Self-Doubt이다. 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한다. 그것도 끊임없이 말이다.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아니라, 잘한 일, 놀라운 성취에 대한 의심과 부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해 냈을 때도, 내가 잘해서가 아닌 '운이 좋아서'라든가 '도움을 받아서 겨우'라고 생각한다. 


이는 주위의 지나친 기대가 원인이라고 한다.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거나 강요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해야 하는 압박 때문이다.


나의 가면증후군은 원인이 있다.

바로 나의 어머니.


1930년대 생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여고와 여대를 나오시고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신여성.

자를 대지 않고 줄을 그어도 똑바른 손재주와 눈썰미

책을 많이 읽고 유식한 분이라 누구와 대화를 해도 막힘이 없는 달변가

그림과 글에 재주가 많은 분이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칭찬에 인색하셨다.


나의 그림에는 혹평을 하는 엄마가, 동생의 그림에 환호하는 것을 보고, 난 일찌감치 그림을 접었다.

초등학교 4학년 글짓기 대회 출품작은 엄마가 뜯어고쳐야만 했다(덕분에 나는 상을 탔지만, 그 이후로는 글짓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가사시간에 배운 목도리 뜨기는 들쭉날쭉 엉터리였음을 지적받았다.


내가 기억나는 우리엄마의 말버릇은

"발로 했니?"이다


사춘기시절 "엄마는 내가 공부를 못했다면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라는 나의 반항에 

보통의 부모라면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엄마는 무조건 너를 사랑해."라고 했을 테지만

우리 엄마는

"네가 공부를 그렇게 [이 부분 매우 강조] 잘한 것도 아니잖니?"라는 쿨한 답변으로 내 입을 막았다.

 

전교 1등 (나는 전교 1등도 아니었고)이 아니라 전국 1등을 하는 엄마 친구 아들 딸들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들의 클래스는 남달랐다. 신문 기사로 만나보는 그들의 업적. 학력고사 수석, 학력고사 차석, 어쩌고저쩌고 국무총리 상, 풀브라이트 장학생, 최연소 어쩌고저쩌고..


엄마 승!

나 KO패!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나는 씩씩하지만 칭찬과 인정에 목이 마르다 못해 갈구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다행히도' 좋은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 '운 좋게' 좋은 대학의 교수가 된 나는 엄마의 기준에 맞는 딸이 된걸까?


아마 아닐걸.


새로 배운 곡을 녹음해 보내드렸다.

"엄마, 슈베르트 즉흥곡 946이예요. 슈베르트가 죽고 나서, 브람스가 편곡하여 세상에 나온 곡인데, 슈베르트 음악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요. 들어보세요."


카톡 답장이 왔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피아노 연습을 하는 딸이 자랑스럽다고 하신다. 콩쿨에 나가서 상을 타자, 음대 교수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전화가 많이 왔지만, 딸이 셋이나 있는 처지에 돈이 많이 드는 피아노를 시킬 수 없어서 거절했다며 미안하다고 하신다.


연습이 덜 되었구나라는 말씀과 함께...


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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