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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es Blog Dec 21. 2022

검사가 법을 모름 일월비 지음

웹소설 리뷰

제목이 성의 없어 보여 망설여졌지만 검사물을 좋아하는지라 도전해보기로 했다.

(스포 있습니다)


어둠의 세계를 주름잡던 건달 임태산은 자동차 사고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다 병원에서 눈을 뜨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괴롭히던 젊은 검사, 강바른의 몸에 빙의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들리는 소문에는 이 검사가 고층건물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그의 몸에 빙의한 태산.

얼마 안 가 태산의 몸은 사망하게 되고, 태산은 문상을 온 자신의 심복에게 자신이 검사의 몸에 빙의한 사실을 털어놓는다. 

심복과 함께 자신의 죽음의 배후를 캐던 임태산은 강바른 또한 살해당함을 알게 되어, 두 살인사건의 배후를 함께 밝힌다. 그의 수사에 걸림돌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검사가 법을 모른다는 것.


그러나 현판(현대 판타지) 답게 임태산은 알코올 중독자 변호사에게 1:1 과외를 받고, 과외를 받으며 범죄자로 살았던 자신의 경험과 사고가 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기본 토양임을 알게 된다. 얼마 안 가, 보통의 검사 수준의 법 지식을 갖추게 된 임태산.


결국 그는 자신의 살인을 사주한 큰 형님과 강바른 검사를 살해한 국회의원을 모두 체포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범죄와의 전쟁, 불의와의 전면전, 불도그같이 물면 놓지 않는 집념, 온갖 회유와 압박에도 굴하지 않은 대쪽 같음으로 초대형 사건들을 해결하여,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대통령에 선출된다. 


이 리뷰를 하는 이유는 작가 일월비가 여성을 보는 시각 때문이다.


법을 모르는 검사, 임태산/강바른 옆에는 몇몇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죽은 임태산의 옛 연인인 선화와, 안검사와 황 계장이다. 


선화는 임태산을 잊지 못하고 그와의 옛정을 생각해서 임태산의 죽음을 밝히는데 강 검사에게 협조한다. 미인계를 써서 임무를 완성하는 타입인데, 일월비는 그녀의 외모를 그다지 육감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젊었을 땐 굉장한 미인이었을, 지금도 꽤 멋진, 매력적인 여자로 표현한다. [영혼을 보는 회사원]에서 잘록한 허리, 앵두 같은 입술, 풍만한 가슴으로 표현한 미인의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웹소설에선 이런 표현 때문에 괴로워하는 독자들도 있었다. 댓글 창에는 제발~~ 그런 표현은~~ 이라는 고통스러운 부탁이 등장하기도 한다.


일월비가 여성관을 한 눈에 보여주는 등장인물은 안검사다. 안검사는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검사이다. 바르고, 원칙을 중요시하며, 사명감을 가진,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참 검사'상이다. 안검사는 강 검사 (임태산이 빙의한)와 함께 성범죄자를 수사하던 중, 강 검사가 피해자의 양말을 가해자의 자동차 뒷자리에 심어놓은 것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안검사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강 검사의 증거조작을 덮어준다. 


그러나, 이때부터 강 검사를 의심과 감시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정의구현을 위해서라면 위법과 범법을 서슴지 않는 그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성이 아닌 검사로서의 직업의식이 발현되는 등장인물이다. 작가는 주인공이 아닌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과 아이덴티티를 챙겼으며, 이것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안검사라는 캐릭터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 


작가 일월비는 여성 등장인물이 남자 주인공의 성공에 조력자나 도구로 이용되는 남성향 현판 웹소설에 매우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다른 현판 웹소설을 보자. [재벌집 막내아들]의 여성 등장인물은 그에게 대한민국 최고 법조계 가문을 가져다줄 여자 친구 (서 판사)이거나, 미라클 인베스트먼트를 잘 운영할 경영자(레이철) 일뿐이다. 심지어 재벌집 막내아들의 여자 친구는 몇 번 등장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런 청혼을 하여 결혼한다. [영혼을 보는 회사원]의 연희도 재벌가의 딸로 회사 경영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도구일 뿐이다. [상남자]에 여자가 나왔던가?


그러나 법을 모르는 검사 옆의 안검사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검사이다. 여자라서 마약단속팀에 못 들어가나? 아니다. 체포조에서 빠져야 하나? 아니다. 자신이 있을 곳은 자신이 정한다. 독립적인 직업인이다.

안검사의 성별을 남성으로 바꿔도 줄거리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검사가 검사인 거지 여검사, 남검사가 중요한가?


일월비는 안검사가 여성 검사로서 겪는 고충과 그에 대응하는 그녀의 자세도 다룬다. 

회식자리에선 "여검사가 부장님 술 좀 따라드리지". "여검사라 술을 따라주니 술맛이 더 나네." "여검사라서 싹싹할 거라고 생각했더니 어디서 둔탱이를 갖다 놨구먼."이라는 성차별적 발언이 오고 간다.

술자리에서 예고 없이 들어오는 허벅지 쓰다듬기, 몸 밀착하기의 성범죄가 저질러진다. 


다 엎고 나가자니 후폭풍이 두렵기도 하다. 참자니 강도와 빈도는 점점 더 할 것이다.

망설이던 그녀는 

"왜 제가 술을 따라드려야 하나요. 다들 손이 없으십니까?"라며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한 사람의 검사입니다. 접대하러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라는 항변을 한다.

아까부터 자신의 몸을 더듬는 부부장에게는, 대검 감찰부에 정식으로 보고하겠다는 엄포를 날리며 회식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저희 부서 회식자리가 있었는데 분위기가 영 불편해서요." 안검사가 말한다.

"알만하네요." 강검사가 대답한다.

하지만 안검사는 정말 이들이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웹소설에서 주인공이 아닌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을 그린 작품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여성 등장인물을 독립된 주체로 다루는 일을 더욱 드물다. 웹소설은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구도이며 주변인들은 소모품처럼 다뤄진다. 특히 남성향의 현판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가 법을 모름]의 안검사는 반갑다. 


작가는 안검사를 대통령이 된 임태산 옆에 붙여놓는다 (로맨스는 아니다). 큰 비중은 아니더라도 주인공이 아닌 여성 등장인물의 의미 있는 결말이다. 


작가 일월비의 다른 작품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검사가 법을 모름]에서의 그/그녀의 시각과 접근은 매우 칭찬받아 마땅하며, 더 많은 작품으로 현판 웹소설을 21세기에 어울리는 문화로 이끌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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