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벙어리 삼룡이의 줄거리이다.
연화봉 마을에 오 생원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인심이 후하고, 존경을 받는 지역 유지였다. 이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이 살고 있었는데, 외모도 볼품없고, 말도 못 하는 벙어리지만, 오 생원에게는 진심으로 충성하고, 부지런하고 일도 잘하여 아낌을 받았다. 오 생원에게는 오 생원의 부인까지도 지적할 정도의 오 생원의 비뚤어진 사랑 탓에 버릇없고 안하무인인 망나니 아들이 있었는데, 삼룡이를 이유도 없이 괴롭히나 삼룡이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서 참고 참았다.
집안의 며느리를 이름난 학자 집안에서 데리고 와 명성을 드높이고 싶었던 오 생원은 몰락한 양반가의 무남독녀를 돈을 주고 데려온다. 오 생원은 아들은 매사에 훌륭하고 배운 아내와 비교되고 어른들이 철들라고 하는 말에 자격지심이 들어 아내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삼룡이는 본인의 처지는 맞을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린 새아씨가 맞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주인 아들을 업어 집에 데려온 것을 본 새아씨가 삼룡이에게 비단으로 쌈지를 만들어 주고, 그것을 본 주인 아들은 삼룡을 심하게 매질하고 안채 출입을 금하게 된다.
집안 하녀로부터 어리숙한 수화로 새아씨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삼룡은 걱정 끝에 새아씨 방에 들어가서 목을 매려던 새아씨를 말리고, 이때 주인 아들로부터 새아씨를 탐한다는 누명을 쓰고 매를 맞고 그 집에서 쫓겨난다. 동네 사람들은 삼룡이와 오 생원의 며느리를 뒤에서 수군거린다.
그날 밤, 오 생원의 집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고, 삼룡은 문밖에서 불길을 뚫고 오 생원을 구해내고, 다시 불길로 들어가 살려달라는 오 생원 아들을 뿌리치고는, 타 죽을 작정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새아씨를 찾아내어 안고 밖으로 나오는 중에 무너지는 서까래에 맞고 불이 붙어 화상을 입으며 불길을 헤치고 밖으로 나온다. 삼룡이는 새아씨를 자기 가슴에 안았을 때 처음으로 살아있는 듯,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운 쾌감을 자기의 가슴에 새기고 바깥에 새아씨를 내려놓을 때에는 이미 숨이 끊어졌다. 벙어리는 새아씨 무릎에 누워있었다. 그의 울분은 불과 함께 사라졌을는지!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을 띤 채 죽음을 맞이한다.
등장인물
삼룡(三龍): 23살의 노총각. 말 못 하는 벙어리이며 얼굴이 얽고 목이 짧은 두꺼비 상을 한 추남이지만 성실하고 심성이 곱다. 새아씨를 연민하다가 오해를 받아 집에서 매를 맞고 쫓겨난다.
오 생원(吳生員): 마을 주민에게 존경받지만 자식을 잘못 키워 부인과 동네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명예욕으로 학식 있는 며느리를 얻고자 양반가에서 돈 주고 참한 며느리를 데려오지만, 아들의 자격지심으로 며느리는 학대를 받는다.
오 생원(吳生員)의 아들(광식):17살. 포악한 성격의 망나니. 새아씨와 삼룡이를 비인간적으로 대하고 괴롭히는 인물로 불타는 집에서 삼룡이의 구함을 받지 못한다.
새아씨:19살. 몰락한 양반의 무남독녀로 돈에 팔려 시집을 와서 남편에게 학대를 받는 인물.
감상평
벙어리 삼룡이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벙어리 삼룡이는
'…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하고 세차다. 눈치로만 지내가는 벙어리지만 말하고 듣는 사람보다 슬기로운 적이 있고 평생 조심성이 있어서 결코 실수한 적이 없다.'
벙어리 삼룡이를 묘사한 부분에서 보면, 외모와 벙어리란 점을 빼면 이 집 주인인 오 생원이 바랄만한 이상적인 아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삼대독자 이 집 아들은
'.. 너무 귀엽게 기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버릇이 없고 어리광을 부리며 사람에게나 짐승에게 잔인 포악한 짓을 많이 한다.'라고 하며 동네에서 후레자식이란 욕을 듣기도 한다.
벙어리는 온 동네 사람에게 괴상한 손짓과 몸짓으로 놀림을 받는데, 거의 인간 이하의 괴물 취급을 받는다. 작가가 그려놓은 삼룡이와 그 주변 인물들은 너무나 담백하고 사실적이어서 혐오스럽기 \까지 하다. 그러나 벙어리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작가가 묘사한 벙어리 삼룡이의 정욕을 느끼는 뜨거운 피나, 그것을 체념하는 찍어 누른 단념은 가슴속에 쌓이고 쌓여 분출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큰 불은 벙어리 삼룡이의 이런 억압된 분노의 표출이다. 3인칭 전지적 시점인 작가도 모르는 이 불은 삼룡이의 분노 일지는 모르지만 어찌 보면 새아씨의 탈출구일 수도 있다.
불을 보고 놀라 집안으로 뛰어들어 화상을 입고 팔이 부러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오 생원을 구하는 삼룡의 모습은 절대로 불을 지른 자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삼룡이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불과 함께 타 죽으려는 각오를 한 듯한 새아씨의 모습이 지난번 목을 매려던 시도의 실패 후에 다른 방법의 자살을 시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주인 아들이 불길에서 구해달라 매달릴 때 뿌리치고 나오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흡족했다.
원작을 영화한 작품에서는 삼룡이가 주인 아들까지도 구한다고 하는데, 이는 절대로 작가의 의도에 맞지 않는 것이다. 삼룡이가 벙어리 일지라도, 모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을 똑같이 느낀다는 것을, 작가는 알려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벙어리의 뜨거운 피, 정욕에 대해서는 충분한 지면을 할애했고, 자신의 은인이자 아버지 같은 오 생원도 불이 나자마자 제일 먼저 구하러 뛰어 들어갔으며, 자신의 원수이자 새아씨의 원수인 주인 아들은 매몰차게 뿌리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래야만 비로소 삼룡이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새아씨를 불길에서 구하고 나오자마자 새아씨의 무릎을 베고 숨을 거둠으로써 그는 우리보다 나은 인간이 된다. 불쌍하고 안타까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슴 벅차고 먹먹하지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울분을 승화시킨 아름다운 자만 남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