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이 와중에 스무 살] 최지연 장편소설 / 창비
주인공은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남자친구를 수시로 바꾸며 팔자에 없는 '갑'의 권력을 누리고, 카페에서 알바를 한다. 진로상담차 찾아간 상담소에서 얼떨결에 심리상담을 시작하는데....
그녀의 문제는 정상적인 사랑을 주고받고를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이유의 한가운데에는, 20대 같은 동안과 미모의 엄마가 있다. 주인공은 엄마와 아빠가 주인공인 사랑과 전쟁의 피해자인데, 상담사와의 면담으로 피해의 상처가 하나둘씩 수면으로 드러난다.
엄마는 생활력이 만 갑이시다. 숨 쉬는 동안은 일을 한다. 말 한마디 지는 법이 없고, 모든 일에 판단과 결단이 급송 택배급으로 빠르다. 소설은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고 손가방만 들고 주인공의 자취방으로 순간이동을 하면서 급전개를 맞는다. 남자 친구와의 몸과 마음의 교류가 끊어지고, 방청소에서 진로문제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간섭을 받으며 주인공의 기억은 새순처럼 돋아난다. 아픈 기억은 막말과 급발진으로 이어지고, 견디지 못한 남자 친구는 입대를 하고, 마음을 나누던 선배가 자퇴하면서 주인공은 외톨이가 된다.
계속 마음에 진동을 주는 것은 이 선배의 조언이다.
"그냥 건너가는 거야. 익숙하지 않은 쪽으로."
"어디로 건너갈 건데요?"
"그걸 알면 인생이 쉽게."
이 선배는 인생 2회 차인가? 철학도 답게 선문답이다.
그리고 이 외톨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와 엄마를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가 사랑과 전쟁을 찍었고 나와 내 동생은 피해자였구나.
아빠는 사랑 채무자였지 사랑 공장 공장장은 아니었어.
그리고 엄마.....
감정과 공감이 없는 엄마. 임무완수만이 지상 최대 과제였던 엄마. 그런데 그 엄마는
수시로 집을 나가는 남편과 어린아이들을 위해 자신만의 최선을 택했던 20대의 어린 엄마였다.
이혼 후 갈비탕집에서 알바를 하며 역시나 억척스럽게 사는 엄마가 부담스러워 돈 많은 남자 친구를 사귀라는 딸의 제안을 한칼에 잘라내는 대쪽엄마이다. 그러나 엄마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딸과의 대화는 막장드라마의 대본처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티카티카로 흘러간다.
주인공의 공허함과 불안은 엄마의 부재에서 기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고 뜰 준비가 되어있는 엄마가 주는 공포. 버려질 수 있다. 아니 버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라는 시한폭탄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겉으로만 멀쩡하고 속은 한과처럼 텅 비고 건조한 20대가 된 것이다. 엄마는 주인공에게 유사시를 대비시킨다. 살림과 동생을 건사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한마디로 비 무장지대에 살고 있는 주인공.
(억지로 폈던 책에 빠져들어간다.
유머가 섞인, 진솔하고 직관적인 묘사를 읽다 보니 정신없이 읽고 있다.)
엄마가 아빠의 목을 발로 누르는 장면은 행동과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사랑과 전쟁의 헤게모니가 이동하는 순간임이 느껴진다. 폭소가 터지는 묘사가 곳곳에 숨어있다.
엄마에 대한 이해, 여자로서의 엄마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주인공은 자신을 재조명하고 재발견한다. 주변에 사람도 보이기 시작한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본인의 아빠처럼 사랑갈구쟁이가 아니라 사랑 나눔이가 될 자질도 보인다. 주인공은 신호등 앞에서 길을 건널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다.
성장소설이라는 부제는 없어도 좋을 것 같다. 20대가 아니어도 이런 순간은 누구에게 닥친다. 아니 필요하다.
'나'를 영화 보듯이 관람하고
'엄마'를 등장인물 보듯 바라보는 일
모두에게 꼭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총평: 공감과 재미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소외와 결핍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읽으며 좋을 듯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좋은 책을 선물해 주신 창비 출판사(@changbi_insta)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