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집
“서야 이리 와. 이제 출발할거야”
“저기 내려서 샌드위치 사가자. 과일은 내가 깍았어.”
타요버스 미끄럼틀 아래에서 분주하게 놀이를 하는 아이들. 첫째는 운전석 의자에 앉아 핸들을 돌리고, 둘째는 나무 블록 조각을 통에 담아 타고는 좁은 운전석에 비집고 들어가 앉는다. 도시락을 싸서 바다에 가자고 하는 걸 보니 캠핑 놀이를 하는가 보다.
“자, 여기에 텐트 치자. 짐은 저 쪽에다가 둬.”
아이들은 제법 엄마 아빠가 했던 말과 행동을 기억하고는 상상 속 캠핑놀이를 계속한다. 마음에 드는 일이 있으면 훗날 역할극으로 재연해보는 아이임을 알기에, 캠핑장 다녀오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해본다.
캠핑의 시작은 첫째 돌 즈음 공원에서 쓰려고 사놓은 원터치 텐트였다. 둘째가 돌이 되길 바라다가 드디어 지난 가을,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천왕산 가족캠핑장을 우연히 알게되었다. 친구네를 따라 한 번 방문해보니, 풀잎에 물을 주고, 돌을 주워 돗자리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옆 텐트가 피우는 불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고는 ‘이거다!‘ 싶었다. 텐트를 제외하고는 꼭 필요한 물품을 추리고 추려서 신랑에게 사보겠다고 동의를 구했다.
“캠핑 물품이 당근 마켓에 그렇게 많이 올라온데, 그것도 새 상태로.”
신랑은 떨떠름해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푸른 들판에서 뛰어놀다가 구운 고기 한 점 입에 넣고 맛있어 하는 아이들의 이미지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바쁜 일정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신랑의 걱정을 없애주려 나 혼자서도 타프 치고 테이블과 의자를 싣고 펼칠 수 있도록 연습해보고 아이들과 나들이를 갈때도 몇가지 캠핑 용품을 챙겨 사용해 봤다. 그렇게 몇 번의 연습 끝에 조금은 익숙해진 캠핑 용품을 챙겨, 올 여름에는 대부도의 한 캠핑장에 도전해봤다.
기다리던 캠핑 가는 날. 캠핑장 안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듯, 울창한 나무 가지가 이색적으로 피어있었다. 짐을 사이트에 풀고 아이들과 숲놀이터 그물망에서 놀았다. 첫째는 도시 남자가 다 된건지 커다란 솔잎이 그물망에 떨어지자 바들 바들 저리 치우라고 짜증을 냈다.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고 수영을 하며 신나게 놀고 신랑과 나는 번갈아 텐트를 치거나 밥을 짓거나했다.
디저트로 포도 한 송이까지 먹고는 도보 5분 거리의 바닷가에 함께 가려던 찰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흐림이라는 날씨를 확인하고 출발한건데도 섬 날씨를 예측하기란 실패였다. 텐트에는 비가 후두둑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다.'
가파른 경사와 질은 흙 위에 세워둔 폴대 한쪽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부어서 아이들을 바로 옆 차로 옮기지도 못할지경이었다.
“어어! 조심해,”
타프에 균형이 무너졌다. 빗물로 내려앉은 타프 한 쪽을 들어올리면 반대쪽으로 빗물이 모이며 둥그렇게 내려앉았다. 신랑은 비를 맞으며 타프를 정비했고, 점점 세차게 들어붓는 비 때문에 타프 안쪽으로 짐을 바짝 모으고 서둘러 정리할 수 있는건 정리해봤다.
아늑한 집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4시간 같은 40분의 폭우가 쏟아지고 거짓말처럼 비는 뚝 그쳤다.
“하 이제야 그쳤네.”
스카우트 출신 신랑은 집 나가면 고생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안다. 중학생 시절, 동계 캠핑 때 땅을 파서 침낭과 텐트로 잠자리를 마련해본 적도 있다고 했다.
“부모님은 항상 일하느라 바쁘셨어. 우리 가족 다같이 석모도로 휴가를 간게 유일해.”
그렇게 부모님 대신 친구들과 선생님의 인솔하에 산과 들로 놀러다녔던 신랑은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유년시절을 아쉬워하곤한다.
반면, 친정 부모님은 여름이면 주말마다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관악산을 찾으셨다. 엄마가 집 반찬으로 싸주신 특별할 것 없는 도시락도 산에서 먹으면 꿀맛이었고, 산 속 명당 자리를 찾아두고는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한여름 뙤약볕을 잊을 수 있었다. 신랑을 설득해 캠핑을 시작한 이유는 내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기억을 아이들도 느꼈으면 해서이다.
이미 캠핑의 낭만은 없는 신랑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해주자며, 내가 캠핑 계획을 세우면 아이들을 위해 발걸음을 떼주는 것이다.
“우야, 괜찮니? 놀랐어?”
“엄마, 그런데 비가 왜이렇게 많이 와?”
첫째와 캠핑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눠보니,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비를 막느라 분주한 엄마 아빠를 가만히 지켜보던 첫째는 타프 아래서 신나게 비 구경을 했나보다. 폭우가 내려서 타프가 내려앉을뻔했던 아찔한 그 순간을 첫째는 나중에 어떻게 기억할까?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우리 친정집에는 차도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버스에 도시락과 돗자리 등 짐을 이고지고 우리와 관악산에 갔던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즐거운 기억은 부모님이 쳐 주신 지붕 아래서 만들어진 셈이었다.
“우리 이제 수영장 가자, 너 튜브 챙겼어?”
“응. 튜브 여기. 가자.”
타요버스 미끄럼틀에서 동생과 함께 짐을 나르고, 싸온 도시락을 꺼내먹고, 수영을 하러 간다며 옷을 갈아입고 튜브를 챙기라는 걸 보니, 첫째의 기억 속에는 그날의 모습이 즐거움으로 가득한가보다.
올 겨울이 지나면 우리 부부는 조금 더 큰 아이들과 함께 다시 캠핑을 떠날 것이다. 다음번 캠핑 때는 조금 더 단단히 타프를 치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