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점심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다.
급하게 매실엑기스를 한잔 마셨는데도 평소랑 다른 몸상태에 당황했다.
주변 지인들은 나에게 무슨 매실엑기스가 만병통치약이냐며 할머니 같다고 나를 놀리지만
평소 약을 잘 먹지 않는 나는 매실엑기스가 만병통치약이다.
평소에 매실엑기스 한잔이면 체하거나 배가 아파도 잘 지나갔었는데 웬일인지 식은땀까지 나기 시작했다. 너무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아서 잠시 엎드렸는데 잠이 들었고 눈떠보니 30분 정도가 지난 거 같았다.
자고 일어나니 어지러운 건 조금 없어졌지만 속이 계속 메슥거려서 이른 퇴근을 결심했다.
웬만하면 평일에 절대 가게를 일찍 마치지 않지만 대충 가게를 정리하고 개인사정으로 이른 퇴근을 한다고 이번주는 토, 일 쉰다는 문구를 적고 퇴근을 했다.
운전할 힘도 없었지만 택시를 타면 혹시 오바이트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 마지못해 운전대를 잡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과에 전화해서 내일 아침 첫 번째 내시경을 예약하고 쓰러지다시피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지던 몸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도 속이 좋지 않았다.
진짜 어디가 병이 난 건가? 조금두려워졌다.
3주 전부터 소화가 잘 안 되었었다.
머리를 말리는 나에게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엄마가 따라갈까?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
"엄마.. 나 말할 힘도 없어.. 어지러우니까 그만 말 시켜.."
늘 씩씩하고 건강했던 나였기에 엄마도 살짝 당황한 눈치다.
엄마의 걱정스러운 눈빛 때문인지 머리를 말리는데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인지 눈물인지 구별이 안 갔다.
"마취 없이 비수면으로 하신다고요? 그냥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하시는 거예요!"
간호사의 눈이 동그래져서 몇 번이고 되묻는다.
나는 내시경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수면으로 내시경을 해본 적이 없다.
그냥 뭔가 마취되는 느낌이 싫고 최근 '나 혼자 산다'에 팜유패밀리가 내시경 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보고 나는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났다.
그런 해프닝이 싫어서라고 해두자!
20~30대까지만 해도 비수면 내시경이 별로 두렵지 않았었는데 막상 침대에 누워서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아파서 마음이 약해진 건지 오늘따라 살짝 긴장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자~지민 씨! 긴장하지 말고 잘해 봅시다."
나는 눈을 꾹 감고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약간 웃기는 얘기지만 나는 두려운 순간에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주사를 맞을 땐 '아 지금 간호사 언니가 장난감 주사기를 내 팔에 갖다 되는 거야..'
오늘 내시경 실에서는 '실보다 더 가는 실이 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아무 느낌도 없ㄷ.. 욱 욱 욱..'
내 다리를 잡아주는 간호사의 손이 위로가 되었다.
"지민 씨.. 너무 잘 참고 잘하던데 평소에도 뭐든 잘참죠..(웃음)?"
"네.."
"위는 깨끗한데 아래쪽에 담즙이 많이 나와 있고 위장이 잘 안 움직여요.. 원래 담즙이 이렇게 나와있으면 안 되는 건데.. 일단 약을 먹어보고도 호전이 없으면 담낭에 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초음파를 찍어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민해서 그래요. 마음을 편하게 먹고 푹 쉬고.. 커피랑 술은 안 돼요"
나는 평소에도조금 예민한 편이긴 했지만 카페를 하면서 조금 더 예민해졌다.
생두를 볶고 맛을 보고 또 볶고 맛을 보고 맛이 내 맘 같지 않으면 속상하고 화가 나고.. 그러면서 조금씩 더 예민해졌고 늘 피곤한 게 문제가 되었었던 거 같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집에 가서 쉬고 싶었지만 어제 머신 청소를 하지 못하고 나왔고 다음 주에 쓸 생두를 볶아놔야만 했다.
'아.. 몰라 집에 가서 자고 일요일에 괜찮아지면 가게에 나오자!'
"딸랑"
가게 입구 종소리가 들린다. 내 의지와 다르게 몸은 가게에 도착해 있었다.
힘겹게 머신 청소를 끝내고 행주를 빨고 로스터기에 예열을 시켜놓고 디펙트빈을 고르다가 갑자기 뭔가 복받쳐서 진짜 오랜만에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서 울어버렸다. 덕분에 조금 시원해졌다.
'아픈데 이게 뭐야.. 나는 뭘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인데 나는 지금 진짜 행복한 건가..'
나는 워커홀릭이다. 일요일 하루 쉬지만 하루를 온전히 쉬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뭔가 불안하고 하루를 그냥 날리는 게 너무 아깝고 죄책감이 든다.
많은 미디어에서 남들만큼 자고 남들만큼 하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에게 늘 더 열심히 살라고 채찍질을 해댄다.
생각해 보니 가게를 오픈하고 온전히 쉰 날이 하루라도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저녁 내일 출근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에 잠이 들었고 다음날도 계속 속이 불편했지만 출근을 했다.
출근하면서 잠시 속도제한 표시판 앞에정차를 했는데 '인생에도 속도제한표지판이 있다면 나는 아프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들었다.
"띠링~띠링~(내비게이션 속도 알림음) 지금 몸 상태에 비해 너무 달리고 있네.. 조금 천천히 가시게.. 속도를 낮추시게!!"
그래도 가차 없이 달리면 벌금 딱지를 날려주는 인생 속도계 말이다.
단골고객님이 오셔서 "사장님 이제 좀 괜찮으세요?" 하는데 또 눈치 없이 눈물이 핑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