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집착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음대를 나오신 젊은 남자선생님 이셨다. 성악을 전공하셨는지 중저음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고 나이가 좀 있으신 선생님들이 많았었던 초등학교 시절에 젊은 남자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된 게 내심 좋았다.

젊은 선생님 이셔서 그런지 반장을 뽑는 일도 다른 선생님들과 조금 남달랐다.

보통 반장 1명 부반장 2명을 뽑아서 한 학기나 아님 1년 동안 했었던 거 같은데 공부와 놀기를 적당히 했었던(?)10명의 아이들을 운영위원으로 뽑아 반장 부반장을 한 달씩 번갈아 가면서 하게 하셨다.

나는 6월의 반장이 되었고 10명의 운영위원들에게 독서부장, 체육부장, 미화부장 등등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 지원하게 하셨다.

어렸을 때 나는 아빠가 신문을 읽을 때면 옆에서 "이 한자는 뭐야?" 하면서 묻는 것이 나의 놀이 중 하나였고 그 덕분에 어설펐지만 꽤 많은 한자를 알고 있었다.

나는 미화부장이 라고 해서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아름다울 '美'에 꽃 '花'자를 써 화단에 물을 주고 꽃을 가꾸는 일이라 생각하고 망설임 없이 미화부장에 지원했다.

햇살 좋은 날 화단에 나가서 물을 주고 그 물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꽃들을 상상하면서..

그런데 이 무슨 일인가.. 미화부장의 미화는 예쁜 꽃을 가꾸는 美花가 아닌..美化였던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의무적으로(?)우유를 급식했었는데 미화부장이 하는 일은 친구들이 먹은 우유갑을 씻어서 펴서 배출하는 일이었다.

뭐든 어설프게 아는 게 무섭다고 했었나?나는 너무나 황당하고 슬펐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부원들과 함께 1년 내내 추운 겨울이 오건 더운 여름이 오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유갑을 씻고 펴서 배출하는 벌칙 같은 일을 해냈다.

아.. 생각해 보니 이건 아동학대가 아니었던가?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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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 재활용을 진짜 열심히 하시네요 요즘 우유갑 씻어서 펴서 그렇게 배출하는 사람 잘 못 봤는데 대단하세요~"

카페에 오는 고객님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어렸을 때 미화부장의 경력 덕분(?)인지 현재 나는 우유갑뿐만이 아니라 모든 재활용에 집착하는 재활용 집착녀가 되어 버렸다.

재활용을 버리러 갈 때마다 재활용해놓은 모습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곤 한다. '스트레스받지 말자.. 강요하지 말자.. 나만 잘하자' 하고 혼자 마음을 다스린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별나다"

"하고마 답답다 니같이 재활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노.." "적당히 해라"

"병적이다.."

등등 긍정적인 반응을 듣기는 어렵다.

"재활용 잘하는 사람이 이상형이지?" 하며 나를 놀리기도 한다.

참다못한 나는 "착한 일 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 하는데 왜 다들 칭찬은 못해줄 망정 부정적인 말들만 쏟아 내는 거야.." 하고 약간의 정색을 하면 그제야 입을 쏙 넣고 만다.

하물며 우리 엄마는 병에 붙은 스티커를 힘겹게 떼고 있는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나라에서 알았으면 상을 줄 낀데.." 하신다.

몇몇의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까지 재활용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냐고 묻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살았으면 해서..라고 대답한다.(웃기지만 진심이다.)

위에 이유도 있지만 사실 진짜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가 외출하고 돌아와서 손발을 씻는 거처럼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런 사소한 습관들처럼 재활용도 하지 않으면 뭔가 찜찜한 나의 작은 습관이 되어 버린 거 같다.

요즘은 플라스틱 줄이기, 생수 비닐 없애기, 병에 스티커 잘 떼지게 만들기 내가 재활용하면서 겪은 불편하고 개선되었으면 하는 일들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런 놀라운 변화가 생긴 건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지구가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소리가 모여서 생긴 변화들이 아니겠는가..

현재 나는 꽃이 좋아 美花 부장이 되고 싶었던 소녀에서 재활용에 소질이 생긴 으른이 되었다.

-인생은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