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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Aug 07. 2023

이치넨자카 一念坂(一年坂)

길 위의 사람 - 나를 향해 걷는 길

내 열정 유효기간은 2년이다. 취미든 물건이든 집착하면 딱 2년간 열정을 불사른다. 몰입하는 2년 동안 팔 수 있는 한 깊~게 파내려 간다. 초등학교시절 프로야구에 미쳤을 때 당대 최고 투수의 숙소까지 쫓아들어간 극성 꼬마팬이었고, 전자오락에 꽂혔을 때는 오락실에 살다시피 하며 주인아저씨 집에서 밥도 얻어먹고 낮잠도 자면서 아저씨와 친구처럼 지냈다. 두 경우 모두 2년이 지나서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보통은 서서히 사그라들지만 등 돌리고 바로 멀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일념(一念)이란 단어가 친숙하다. 적어도 2년 동안은 하나의 생각으로 골몰하기 때문이다. 

교토를 가기 전 걸을 만한 길을 물색할 때 ‘일념’이란 이름을 가진 길이 있어 꼭 한 번 가봐야겠다 마음먹었다. 언덕의 이름은 이치넨자카(一念坂). 직역하면 ‘일념 언덕’이다. 하지만 실상 이치넨자카는 언덕이 아니다. 언덕(坂 | 자카)이란 글자가 붙지 않았다면 일반적인 평지길로 기억될 만한 길이다. 

명패가 있는 입구에서 길은 휘어져 들어가며 길 끝을 감춘다. 안 보이면 궁금하기도 하고 숨겨져 있어 신비한 느낌마저 든다. 발걸음을 재촉해 꺾어 들어가면 길 끝이 보이는 짧은 직선길이 나온다. 그것이 이치넨자카의 전부이다.




이름에 비해 단조로운 길에서 실망감과 아쉬움이 뒤섞여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물론 기록에 남아있는 편린 중에는 기요미즈데라(清水寺)로 가는 유명한 언덕 니넨자카(二寧坂)와 이어지는 첫 번째 길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다른 의미도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일념은 ‘한결같은 마음. 또는 오직 한 가지 생각’이라는 뜻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한 순간(찰나)의 생각’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다. 짧지만 순간의 생각이 인생을 즐겁게 만들기도 하고 불행하게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윤회(輪廻)까지 생각해 보면 일념은 현재의 삶뿐만 아니라 다음 생도 결정할 수 있는 필연적이고 중요한 생각인 거다.

언덕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 평지인 들 평지 같겠는가. 짧지만 무거운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기에 평지이지만 언덕이라 불렸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해봤다.  


길을 걷는 짧은 순간 결정한 일념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시간의 장단과 상관없이 내가 품은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습관이 되어 정체성이 되기 때문에 인생자체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길 하나만 잘 걸어도 유한한 삶이 유의미한 삶이 될 수도 있을진대 긴 세월 생각 없이 막 산 거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그래도 길 끝에 길의 시작이 있으니
바른 일념으로 살아간다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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