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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Jul 20. 2023

기리토오시 切り通し

길 위의 사람 - 의지의 문제

바위를 불로 달군 다음 물을 뿌려 약해진 부분을 깎아내 만든 길을 기리토오시(切り通し)라 한다. 이름 그대로 바위를 칼로 자르듯 절단해서 만든 길이다. 길을 내기 어려운 조건의 지형일 때 절단한 것처럼 몇 사람 정도만 지날 수 있도록 낸 좁은 길을 통칭해 부르기도 한다. 

길을 내고자 하는 이의 의지(意志)가 엿보인다.  


교토의 도심에도 기리토오시란 이름을 가진 길이 있다. 1661~1673년에 기온 지역은 관의 허가를 받아 유곽이 만들어졌는데 유곽들을 쉽게 횡단해 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필요에 의해 건물을 헐어 만든 길도 기리토오시라 불렸다 하니 아마도 유곽 공사 당시에 손님이 드나들기 쉽게 마을의 기존에 있던 마치야 등을 헐고 공사되어 그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교토의 기리토오시에는 두 가지 다른 풍경이 공존한다. 하나는 2차 대전 후 폐업한 찻집터를 개축해 마치야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처럼 나있는 좁은 길이고 또 다른 길은 새로운 시류로 지어진 현대적 건물이 들어선 다소 너른 길이다. 

기온시라가와 위에 놓인 다리 타츠미바시(巽橋)에서 바라보면 오랫동안 버틴 것만 같은 나무로 지어진 마치야들 사이로 저 멀리 어지러이 늘어진 전선아래 회색빛 콘크리트 빌딩이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기까지 하다. 좁은 틈으로 보이는 베일에 싸인 세상처럼. 

막상 좁은 길을 빠져나와 큰길에 접어드니 그냥 일반적으로 차도가 있는 거리여서 살짝 실망했더랬다. 


좁은 길과 큰길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니 옛것을 지키려 했던 의지와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두 의지는 각자의 모습으로 엇박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기에 특별하고 가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다르다는 것만으로 다른 이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면 서로의 다름이 다양성이 되어 조화롭고 풍성하게 잘 살아갈 듯한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 또한 사람의 의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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