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교감하는 브랜드텔링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 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민음사.
출시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는 제품이나 사람들이 몰리는 서비스 상품들을 보면서 한 번이라도 자신의 사업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아 저걸 왜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지?’ 하며 한탄하곤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가 놓치는 것은 어쩌면 단순하고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상이 되는 그들은 바로 우리 자신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에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필요와 욕구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자서전을 위한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직접 보여 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아직 적히지 않은 것을 읽어 내는 게 우리의 일이다.’라는 말을 한다. 잡스가 말한 ‘우리의 일’. 이 일을 어떻게 했느냐가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낸다.
누구나 알고 있고 드러나 있는 필요와 요구를 채우는 것보다 ‘나’에게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는 ‘나’의 잠재된 필요와 요구를 누군가가 채워준다면 그 순간 ‘나’와 누군가의 사이엔 끈끈한 감정적 연결고리가 생긴다. 그것은 어쩌면 차이라기보다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숨겨진 부분을 브랜드가 말을 하고 소통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현대카드의 지난 17년(2001년~2017년 현재)이 그 예이다.
각종 신용카드가 난무하던 2001년 현대카드는 조금은 뒤늦게 창립을 했다. 그리고 2003년 특별한 카드를 출시한다. 카드 전면에 커다란 알파벳 글자가 새겨진 카드의 각 알파벳은 라이프 스타일을 표현한 것이었다.
2006년 신용카드는 화폐의 대체역할로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현대카드는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딸 : 아빠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해요?
아빠 : 세계에서 1, 2 등 하는 스포츠 선수를 한국에서 대결시키지.
딸 : 카드회사라며…
아빠 :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가이드 북도 내고
딸 : 카드회사라며…
아빠 : 미국에 있는 미술관도 내 집 드나들 듯 가고
딸 : 카드회사라며…
아빠 : 헬기도 몰고, 캠핑카도 몰고, 요트도 몰고
딸 : 카드회사라며…
아빠 : 허허 이걸 어쩌나.. 얼마 전엔 콘서트도 열었는데?
딸 : 카드회사라며… 아빠! 카드회사 다니는 거 맞아? 아빠 : 글쎄다 아빠도 가끔 헛갈려서
현대카드 광고 대사 중
그 후 현대카드는 타 카드와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 슈퍼~라는 이름을 가진 경기, 공연, 토론회를 개최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불러오기 시작한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지만 한국엔 오지 않을 것 같은 유명인들이 한국에서 경기(슈퍼메치), 콘서트(슈퍼콘서트)를 열고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국에 모여 토론(슈퍼토크)의 장을 펼친다. 세계 3대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레드카펫) 국내 최초로 열기도 한다. ‘컬처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괄목할 만한 건축가와 영화감독, 영화까지 전시하기도 한다.
돈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것이 카드가 아니라 가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카드라 말하듯 거장들을 혹은 대작들을 국내로 초대하여 ‘나’의 가슴을 쳐대며 ‘나’의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는 것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내가 동경하던 사람과의 조우, 책으로만 보던 대작의 향연, 현대카드의 초대는 ‘나’의 안에 그들과 함께 만나고자 했던 잠재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런 느낌이 생긴 찰나의 시간은 ‘나’를 가치 있는 문화의 소비자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문화콘텐츠를 통해 잠자던 ‘나’에게 속삭이며 문화에 대한 잠재욕구를 깨워주었던 현대카드는 ‘나’를 위한 공간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문화공연을 개최할 수 있는 공연장(언더스테이지), 분야별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도서관(라이브러리) 공간에 사람을 불러들이고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리고 공간에서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낀다.
현대카드의 언더스테이지는 ‘한국 대중문화를 이끄는 큐레이터들이 제한도 한계도 없이 영역을 넘나들며 큐레이션’ 하는 컬처 큐레이션이라는 시도를 한다. 컬처 큐레이션에 의해 기획된 새롭고 다양한 공연들은 슈퍼 콘서트와 컬처 프로젝트와 연결되며 브랜드만의 음악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다양함과 새로움이 펼쳐지는 공간이 언더스테이지라면 각 분야 라이브러리들은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책’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현대카드는 라이브러리에 라이프 스타일을 더한 뮤직 라이브러리, 트래블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라이브러리 공간에는 오직 현대카드를 가진 ‘나’와 지인 둘 만을 초대한다.
2001년 설립한 현대카드가 2006년 어느 날 들려주었던 카드사 다니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냥 그렇게 끝나는 일회성 구호가 아닌 브랜드가 지속해서 지켜갈 수 있도록 탄탄히 설계된 현대카드의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때 무심히 바라보며 귀담아듣지 않았던 ‘나’는 나도 모르는 ‘나’를 깨우는 브랜드의 말을 유심히 바라보며 귀 기울이고 있다.
브랜드와 긴밀한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흔히 가지 않았던 곳을 가기 위해 지도를 찾아보곤 한다. 지도는 위치 정보를 찾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다. 하지만 데니스 우드 (Denis Wood)라는 지도 제작자는‘모든 것은 노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도에 감춰진 삶의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도에 기능적으로 기재해 넣은 방위, 축적, 길을 없앴다. 다음으로 다른 것들을 그려 넣어서 각각의 지도를 제작한다. 다 걷어내고 다른 관점의 것들을 넣으니 그 지도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선이나 TV선 등을 그려 넣으니 그 지도는 다람쥐 길이 되었다. 다람쥐들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전선들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지도에서 인간과 자연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한다. 각 집마다 울타리 만을 넣어보니 그 지역이 따뜻하게 열려있음을 알았다. 풍경(wind chime)이 있는 집들에 파문을 넣어 그려보니 동네는 풍경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악단과도 같았다.
사람들의 삶 속엔 잠재된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지금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혹은 누구나 알았지만 소소했던 것을 알 때가 있다.
귀 기울여 들었을 때 모든 것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