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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Mar 18. 2024

‘나’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

공간으로 브랜드텔링

We shape our buildings and they shape us.
우리는 건물을 짓고, 건물은 우리를 짓는다.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공간은 시간을 간직한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깃들어 있는 시간이 공간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에 그곳에 가보면 지난 시간을 간직한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곳에 머물렀던 ‘나’를 오롯이 되돌아보며 회상하고 ‘나’의 정체성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공간이 ‘나’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 1932~ )는 TheGreat Good Place.(1989)에서 시민사회의 제3의 공간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좌) The Grea Good Place (우) 레이 올든버그


제1의 공간에 대한 개념은 19세기에 정립되었다. 삶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며 휴식을 제공해 주는 곳으로 각자의 집이 제1의 공간이다. 직장은 제2의 공간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1960년대에 등장한다. 직장은 근로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거주 공간으로 정의된다. 레이 올든버그는 제1의 공간과 제2의 공간의 중간에 위치하고 대중이 모이는 공간이지만 ‘나’의 공간인 것처럼 편안하고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는 제3의 공간을 추가한다. 제3의 공간에서 ‘나’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즐거움이 있고 편안하면 새롭고 독특한 생각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한국의 건축가 김수근 님도 1970년대 생활공간과 작업 공간 외에 궁극의 공간이 필요하며 이곳은 사람들이 명상과 더불어 창작을 하는 ‘자궁공간’이라 했다 한다. (발췌. 현대인에게 갈수록 필요한 제3의 공간, 김민주, 모터스라인, 2004년)


맹렬히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냅킨 위에 아이디어를 끼적이는 그들 중 한 명이
제2의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혹은 멋진 소설이나 음악을 재탄생시킬지도 모른다.
 
 ‘온 워드’에서 , 하워드 슐츠 Howard Schultz



예로부터 유럽에서 카페는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이야기하고 시민계층 부르주아지가 성숙해졌으며 혁명으로 나라를 뒤집는 교두보가 되었던 장소이다. 정신을 깨우고 대화를 끌어내는 마력을 지닌 커피로 깨인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과 창의를 소통하며 시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카페는 청년 하워드 슐츠도 눈뜨게 한다. 1983년 29세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아담한 카페에서의 기억을 간직한다. 4년 후 1987년 스타벅스를 인수한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 변화의 중심에 ‘제3의 공간’을 둔다. 정제된 분위기지만 그 중심에는 활력이 느껴졌던 밀라노 카페들에 대한 기억과 제3의 공간의 개념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에 특유의 정서와 의미를 불어넣어
그 의미를 재탄생시켜야 한다. 한마디로 상품에 영혼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상품만의 이야기가
계속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온 워드’에서 , 하워드 슐츠 Howard Schultz


스타벅스의 매장과 제품에 영혼을 담아야 공간이 ‘나’와 대화를 나누고 교감할 수 있고 그때야 비로소 그 공간은 ‘제3의 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간에 영혼을 담기 위해선 그곳을 채워줄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스타벅스는 마이스타벅스 아이디어 닷컴 Mystarbucksidea.com 이란 사이트를 통해 ‘나’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사이트에는 제품(Product), 겪었던 경험(Experience), 관련된 주변 사항(Involvement)으로 항목 화하여 아이디어를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에 사람들이 공유(SHARE)하고, 투표(VOTE)하고, 토론(DISCUSS)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내용은 실제로 반영되는 것(SEE)까지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온라인으로 선물하여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한 정책도 사이트 속 ‘나’의 이야기를 반영한 결과라고 한다.

‘나’의 이야기를 경청한 스타벅스는 ‘나’의 공간인 것처럼 살아난다.  
커피는 ‘나’의 마음대로 만들어진다. 에스프레소 샷, 우유, 시럽 등의 조절을 통해 내 입맛대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 커피만이 아니다. 앉은자리에서 편하게 주문도 할 수 있다.

'사이렌 오더'는 줄을 서지 않아도, 스타벅스 밖에서도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주문할 수 있다.

커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줄을 서 있을 필요 없이 마음대로 주문하는 것도 ‘나’이다.  
 

사이렌 오더


주문을 맘대로 하는 편리함에 더해 편안함까지 갖춰져야 제3의 공간이다. 편리함은 하려는 일에 대해 효율적인 도움을 주지만 ‘나’의 창의적 발상이 나오려면 편안함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휴식 속에서 공간이야 말로 ‘자궁 공간’이 된다.
스타벅스의 편안함은 바리스타와의 교감이 시작점이다.
스타벅스는 바리스타와 ‘나’와의 대화를 위해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교체한다.
베리스모 801이란 기종의 반자동 기계는 바리스타에게는 수동 머신보다 빠르고 편한 기계였지만 기계가 높아 바리스타가 ‘나’와 대화 나누기가 불가능했다. 스타벅스는 터모플랜 Thermoplan 사와 제휴하여 높이가 10Cm가 낮은 마스트레나(mastrena)라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한다. 낮은 기계 덕분에 바리스타와 ‘나’의 대화가 가능해졌다.
대화가 가능해졌기에 바리스타는 ‘나’를 기억한다. 내가 주로 주문하는 메뉴를 기억하고 주로 하는 행동에 대해서 기억한다. 눈으로 ‘나’를 보고 모습과 행동, 습관을 기억한다.


마스트레나 에스프레소 머신


스타벅스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피 회사’가 아니라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 중심의 회사’다.
 
‘온 워드’에서 , 하워드 슐츠 Howard Schultz


‘나’의 말을 경청하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 있다. 그곳은 잔소리보다는 음악이 흐른다. 누군가 나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일을 시킨다. 시끌벅적한 대화가 오가도 한쪽에 앉아서 노트북이나 공책을 열면 ‘나’는 사색에 빠지고 주변 소음은 백색소음이 된다. 다시 눈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 낯설었던 사람들이 친근해진다. 누구도 날 건드리지 않지만, 누구나 나를 건드리는 그곳에선 ‘나’를 알아보기가 더 쉬워진다.
아마도 제3의 공간은 그런 곳일 것이다. 공간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날 그 공간은 거기서 날 부르고 있다.


1941년 5월 10일, 영국 의회가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궁전(Palace of Westminster)이 독일군의 폭격을 받아 파괴되었다. 이는 11세기 만들어진 유서 깊은 궁 하나가 파괴된 것뿐만이 아니라 국민대의의 전당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이 파괴된 치욕으로 기록된다.
전쟁이 끝난 후 국민을 대변하고 삶이 결정되는 궁전의 재건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웅변가 처칠은 사람들의 마음에 재건의 의지를 굳건히 다질 수 있는 말을 한다.

We shape our buildings and they shape us.
우리는 건물을 짓고, 건물은 우리를 짓는다.


공간은 우리를 짓는다. 우리의 삶을 짓는다.
공간은 삶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공간에 깃든 신념이 삶을 결정짓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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