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 blanc | 몽블랑
브랜드의 구성원은 브랜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실체이다. 브랜드의 신념에 기반을 둔 그들의 지속적인 행동은 한 브랜드가 스스로의 체질과 문화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과 자신감은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여 브랜드의 DNA가 된다. 그리고 그 DNA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해진
다.
1786년 8월 악마가 살고 있다는 금기의 산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 정상에 두 사람이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공은 인간의 의지로 두려움을 극복한 모험이었고, 이후 등산 Alpinism이라는 말은 알프스를 품고 만들어진다. 몽블랑의 높이 해발 4810m는 인간의 도전과 성공을 품고 있다. 숫자 4810을 펜촉에 새겨 글을 쓰는 사람의 시선 끝에 두는 몽블랑 만년필은 각 공정 장인들에 의해 6주 간 250가지 섬세한 공정을 거쳐 100% 수공으로 만들어진다.
새로운 개념의 필기구
기록을 남기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동굴 벽화, 아라시아 점토판, 그리고 로마 납판 등 곳곳에 남아있다. 인류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뾰족한 도구로 점토판과 납판을 긁어댔다. 잉크가 발명된 후에는 속이 비어있는 갈대 줄기나 조류 깃털에 잉크를 찍어 기록했다. 이는 기록하는 행위를 보다 더 연장하기 위함이었다. 1748년 영국의 요한 얀센이 금속펜을 발명했다. 펜촉의 모습은 갈대 줄기나 조류 깃털 펜을 닮았으나 금속은 보다 더 세밀한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1830년 영국의 죠수와 메이슨은 금속 펜촉에 구멍을 내어 현대 펜촉의 기본형태를 만들었고, 1852년엔 영국의 아이작 호킨스가 펜촉 끄트머리에 펠릿 형태의 이리듐을 붙여 내구성과 부드러움을 더하여 펜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 펜촉의 기본적인 형태가 만들어진 곳이 영국이었다면 신개념의 펜이 완성된 곳은 미국이다. 1884년 미국 뉴욕의 루이스 애드슨 워터맨 이 만든 ‘아이디얼 ideal’은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서 잉크를 담아두었다가 제공하는 피드를 개발하고 적용한 펜이었다. 잉크가 멈추지 않고 솟는 자연의 샘물 같아 ‘만년필 Fountain pen’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신개념 펜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미국에서 완성된 만년필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필기구로 다가왔고 이후 기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날개돋
힌 듯 팔려나갔다.
알프스의 최고봉을 닮은 만년필
함부르크의 은행가 알프레드 네헤미아스 Alfred Nehemias와 베를린 태생의 엔지니어 아우구스트 에버스타인 August Eberstein은 1906년 휴가를 이용해 미국을 방문했다. 두 명의 독일인들은 한 번 충전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만년필에 매료됐다. 이후 그들은 최고의 만년필을 생산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베를린 지역에 '짐플리치시무스 만년필 Simpliciss imus Fullhalter'이라는 작은 만년필 제조 공방을 열었다. 1908년 함부르크 사업가 요하네스 포스가 합류하면서 ‘심플로 필러 펜 컴퍼니’라는 사명으로 함부르크에 본사를 설립했다.
세 명의 동업 가는 1년 후 1909년 작가 스탕달의 책에서 따온 ‘적과 흑 Rouge and Noir’라는 이름으로 잉크가 새지 않는 만년필을 최초로 시장에 출시했다. 그들은 1910년 유럽인들에게 최고의 명산이자 최고 수준의 제품을 대표할 ‘몽블랑’을 사명으로 정했다. 그리고 만년필 캡 정상에 몽블랑에 만년설 덮인 봉우리를 형상화 한 ‘화이트 스타’를 두었다. 20여 년이 흘러 몽블랑은 ‘걸작’이란 의미를 가진 ‘마이스터스튁’을 선보인다. 1929년에 마이스터스튁 펜촉 위에는 몽블랑 높이 4810이 새겨진 이후로 100여 년간 마이스터스튁은 몽블랑 브랜드의 핵심 원형이며 상징이자 대표 역할을 하는 제품이 됐다.
정상을 향한 끊임없는 행보
모든 브랜드가 그렇듯, 몽블랑의 처음도 순탄하지 않았다. 만년필 분야의 후발 주자였던 몽블랑은 세계 2차 대전의 폐허 속에서도 최고 품질의 만년필이라는 목표를 놓지 않았다. 생산 시설이 파괴되고, 몽블랑 역시 군수물자를 생산해야 했지만 동시에 덴마크에서 만년필 생산을 이어갔다. 힘을 잃고 모든 것을 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순간에도 그들은 신념을 위해 매진했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나고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52년 몽블랑은 걸작 중에 걸작 ‘마이스터스튁 149’를 시장에 출시한다. 펜촉의 너비 ‘149’를 제품의 이름에 담았다는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낸 장인들의 정신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디자인과 기능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마이스터스튁 149’는 몽블랑의 시그니쳐가 된다.
몽블랑은 가성비 볼펜과의 싸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19세기말 발명된 볼펜은 1950년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면서 사용이 편리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볼펜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필기구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만년필 제조 브랜드들은 위기감을 느꼈고 만년 필에서 볼펜 생산 중심으로 공장라인을 수정했다. 심지어 만년필 생산을 아예 중지하고 볼펜으로 방향을 튼 공장도 많았다. 만년필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도 몽블랑은 만년필 생산과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몽블랑의 시그니처 마이스터스튁 149의 영광도 전쟁과 이 시기를 둘 다 딛고 일어나 빛을 발했다.
만년필에서 후발 주자였던 몽블랑은 경쟁 브랜드가 여러 이유로 생산을 주저했을 때 일관성 있게 만년필을 생산했고 장인들의 연구개발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 행보는 최고의 만년필 제품으로 이어졌다. 현대에 들어 만년필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다시 시작했을 때 몽블랑은 이미 다른 만년필보다 훨씬 앞서있었고 경쟁사는 이런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펜촉 끝 4810이란 거리를 걸어 미지의 몽블랑 정상을 향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등반한 사람들처럼 몽블랑의 과정도 순탄치 만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몽블랑 정상을 정복한 이들이 받았던 것처럼 몽블랑도 이름을 극복하고 이름에 걸맞은 최정상 만년필의 영광을 얻었다.
최고의 자리에 어울리는 브랜드
오랜 시간 버티며 최고의 품질을 지향했던 몽블랑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했다. 시대마다 앞선 생각과 업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던 문화계 위대한 인물을 모티브로 한 한정판 만년필을 선보였다. 작가 한정판은 1992년 헤밍웨이를 시작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버지니아 울프 등 문학사에 길이 남은 작가들의 상징적인 모습
을 담았다.
2009년부터 시작된 위대한 인물 한정판은 마일스 데이비스, 앤디 워홀, 존 F. 케네디, 알버트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알프레드 히치콕 등 국가와 분야에 무관하게 전 세계를 변화시킨 인물들의 개성을 담았다. 뮤즈 한정판은 20세기를 주름잡던 세기의 여왕 그레이스 켈리를 시작으로 잉그리드 버그만, 마를 게나 디트리히, 그레타 가보 등 모든 이의 뮤즈가 된 여배우들이 주인공이었다. 장인 한정판에서는 문화적, 역사적 이정표를 세운 파블로 피카소, 마르코 폴로 등의 업적을 담고 있다. 인물들의 한정판은 이들을 흠모하는 사람들에게 금액과 관계없이 큰 사랑을 받는다.
몽블랑은 백 년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일관성 있게 최고가 되길 꿈꿔왔고 최고의 만년필을 만들어왔다. 그들이 만든 만년필 하나하나에 장인들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나의 필체를 기억하며 사각거리는 금촉펜의 촉감을 느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몽블랑 같은 ‘최고인 사람’이라 믿게 된다.
1945년 분할된 이후 45년 만에 독일 통일을 이룬 1990년 10월 3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와 동독의 로타어 데 메지에르 총리가 통일조약에 서명한다. 그때 그들의 손에는 몽블랑의 대표 모델 마이스터스튁 149가 쥐어져 있었다. 그 순간에 몽블랑이 있었던 것은 필연이었다. 최고의 순간, 최고의 장소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해야 할 펜이 있다면 그 펜은 무엇을 지녀야 할까. 바로 어려운 시간을 버티고 견디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펜이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높은 자리, 최고의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