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남동생,외할아버지와 결혼해야했던, 이집트 왕녀 '안케세나멘'
어느날,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서 투탕카멘 황금 의자를 보았다
다들 (딱 봐도 치질 걸리게 생긴)의자에 앉았을 어린 소년 왕을 불쌍히 여겼다만,
나는 황금의자에 박제된
투탕카멘의 정비이자 여자 파랄오였던
'안케세나멘'에 눈길이 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남자 파라오, 여자 파라오(보통 왕의 정비 위치)가 있는데
여자 파라오가 잠깐 됐을 정도면
그또한 신분이 아주 높았을지언데
그런 그는 투탕카멘 사후 어떻게 살아갔을까?
궁금증을 이고 인터넷서핑을 시작했다.
몇번의 검색만으로 그의 기구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안케세나멘.
그는 총 세번의 결혼 하게 되는데
첫번째 결혼 : 아버지 (= 선왕 아케나텐, =투탕카멘 아버지)
두번째 결혼 : 이복동생 (= 투탕카멘)
세번째 결혼 : 외할아버지 (= 투탕카멘 살해용의자, = 투탕카멘 사후 차기 파라오 아이)
고대 이집트 왕족들은 근친혼 성애자 집단이여서,
이렇게 돌려돌려 사발통문 개족보를 탄생시킨 것일까?
현대인의 관점이 아닌, 과거 고대인의 관점으로 짚어본다면
크게 두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왕권신수설 관점
이집트는 '오시리스'신을 기반으로 한 신화를 주력으로
왕권 신수설을 펼치는데
이 신화관에서 주신은 크게 두 명이다
남신 오시리스 (= 여기저기 씨뿌리지 않는 제우스 ver)
여신 이시스 (=여자 안패고 사는 헤라 ver)
그리고 이 둘은 남매이자 부부이다.
파라오를 계승하는 왕조(왕가)는
정통성을 위해 왕권신수설을 부르짖으며
그들이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현신임을 주장하는데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남매사이이기도 하기에
같은 가족 내에서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선별되어
파라오가 된다.
둘째, 왕위계승권 문제
고고학에 문외한인 나의 순전한 생각인데,
왕위계승권 문제도 크다고 본다.
통일신라에서 선덕여왕이 유일한 성골이라는 이유로
왕위를 물려받았던 것처럼
여성에게도 왕위 계승권이 어느정도 주어지기에
(남자 파라오를 할 수 있는 직계가 없으면,
'왕의 정비'가 아닌 '진정한 파라오'로서 여성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왕위 계승권이 높은 여성이
라이벌 관계에 있는 제국이나(예 .히타이트 제국)
권세 가문에 시집을 가게 되면
나일강을 둔 피튀기는 전쟁이 생길 수 있다
안케세나멘은,
그의 아버지이자 첫 번째 남편인 '아케나텐'의 셋째 딸이다.
그리고 아케나텐의 자식들 중에는 '투탕카멘'과 '안케세나멘'을 제외하고는
이름 외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투탕카멘도 정보가 별로 없는데)
동서고금하고 보통 나이 순으로 왕위 계승권 순위가 결정되는데
안케세나멘이 돌려돌려 근친혼의 재물이 되었던 것은
장녀와 차녀가 어린 나이에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어린 소년이었던 투탕카멘이
아버지 사후 왕이 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아케나텐의 자식들은 명이 그렇게 좋지 않고
살아남은 자식들의 왕위계승권 하나하나가 매우 치명타를 날릴 만한 게 아니었을까?
안케세나멘이 아버지에게 시집가게 된 1차적인 원인은
그가 직계 왕족 외로 외부 유출 되면 안되는 강력한 왕위계승권의 소유자라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정상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파라오(아케나텐) 입장에서,
왕위계승 1순위가 유일무이한 막내아들
2순위가 셋째딸 정도라고 한다면
이 셋째딸을 어디 시집보내면 진짜 불안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1) 딸로 장사를 할 만큼, 왕권이 매우 약한 편이 아니다
(2) 명색이 파라오의 딸인데, 어디 한미한 집안에 시집 보낼 수도 없다
(3) 그렇다고 좀 갖춘 집안에 보내자니 ,그 집안에서 셋째딸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며
파라오좀 되겠다고 내 목치러 온다고 생각해보자
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이 왕권을 자신의 가문에 그대로 무사히 인양해야하는
의무를 가진 파라오(아케나텐)입장에서는
그냥 혼기가 찬 딸과 결혼하고
나중에 막내아들이랑 결혼시키자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역사상으로 아케나텐의 입지는
왕권이 아주 강력한 것도 아니고
휘둘릴 정도로 아주 약한 것이 아닌 애매한 입장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정조' 의 입지로 보면 된다.
아케나텐의 아버지(아멘호테프 3세)는
18왕조 번영의 절정기를 만들 정도로 왕국의 부흥을 이끌었고
이를 적장자인 아케나텐이 왕위를 정상적으로 물려받았지만
아버지 친구분들(권신, 신관)의 힘이 같이 너무 강력해져서
왕권(아케나텐) VS 권신/신관 의 힘겨루기 기싸움이 매우 심한 상황이었기에
딸을 다른 가문으로 시집보내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진짜 이 이유가 아니면 고고학 문외한인 나는
아케나텐 할배 뇌에 21세기 총알이 박힌 것밖에
설명을 할 수 없다..
다시 이 이야기의 본 주인공
'안케세나멘'으로 돌아가보자.
안케세나멘 입장에서보면
왕조(가문)의 번영이고 유지고 뭐시고
신경쇠약 걸리기 딱 좋은 환경 아닌가 싶다
이 여자의 성정과 정치적 야심은 잘 모르겠다만
맘 편하게 이 여자가 권력 욕심이 끝내줘서
자발적으로 세 번 파라오와 결혼했다고 치자..
아니!! 근데
아무리 사람이 권력 욕심이 있다고해도
어리고 탱탱한 먼 친척 왕족으로 남편감 찾아내서 파라오 앉히지
늙어터진 외할아버지와 결혼하고자 하는
멘델의 유전법칙과 직면하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안케세나멘은 외할아버지 아이에게
(= 투탕카멘 살해 용의자 + 투탕카멘 사후 파라오)
시집을 가지 않기 위해 히타이트 제국에
'헤이~ 수필룰리우마 1세~ 나 너네 아들(왕자)에게 시집갈래.
이 할배랑 도저히 결혼 못하겠다' 하고 SOS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안케세나멘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청혼을 보냈던 당사자인, 히타이트의 잔난자 왕자가 긴가민가하며
이집트로 오는 도중에 암살을 당하고
그가 SOS를 쳤던 히타이트를 다스리던 수필룰리우마1세가
아들의 죽음에 화가나서 이집트의 영토를 빼앗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안케세나멘은 늙어터진 할배 아이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 뒤로 기록된 사항은 없다.
안케세나멘.
그 어떤 이집트 여성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생계에 대한 고민은 단 한톨도 없이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딱딱하게 굳어버린 활자기록들과
차갑게 빛나는 황금의자 속에
투탕카멘과 함께 박제된 그의 초상을 보면
그의 생애 동안 겪은 행복의 총량은
그가 누렸던 물질적 풍요에 비해
한없이 적었을 것같다.
또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혼해서 적극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히타이트 제국에 요청한 SOS신호가 발단이 되어
그 제국이 조국의 영토를 차지했다는 사실도
많이 괴로웠을 것이다.
아버지
이복동생
이복동생 살해 용의자 겸 외할아버지와
결혼해야 했던 안케세나멘.
이집트 18왕조의 피를 잇기위한
종마로서의 삶이 아닐까 싶다.
내 코사 석자지만
이미 기원전 천삼백년전에 죽어버린 그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참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