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나는 오늘과 다를 수 있을까
오늘의 일기는 조금 특별하다. 일 년을 꼬박 내리 기다린 한 해의 휴가가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달라진 직장 상황 덕에 자잘한 쉼의 날이 있었지만, 원래대로라면 일 년에 9일이 휴가의 전부이다. 자잘한 무급 휴가가 생기기 전, 유일한 휴가인 오늘이 정해진, 작년 11월에는 올해의 휴가지로 뉴욕을 골랐다. 우선 50명 남짓한 부서원이 차례대로 날짜를 선점하는 순서 뽑기에서 운도 지지리도 없었는지 뒤 순서에 걸렸기 때문이었고, 남은 날짜가 대부분 겨울이었기에 겨울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불행 중 유일한 다행인 것은 같은 부서의 동기이자 친구인 S가 여행의 동반자로 함께 한다는 것이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마주한 여행은 어쩐지 평소의 여행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여행지를 고르고 비행기 표를 사는 초반의 설렘은 긴 시간을 거치며 조금씩 해졌고, 준비해야 하는 여러 장의 서류와 무거운 짐 가방에 마음의 무게는 계속해서 더해졌다. 아마도 아메리카라는 광활한 대륙에서, 짧지 않은 긴 기간을 친구와 지내야 한다는 것이 가장 묵직한 것이었을 테다. 아무리 우리가 그동안 곳곳으로 함께 떠났다 돌아왔다지만, 해외로는 처음이니까.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온 하루를 붙어 있어야 하는 여행에서는 꼭 얼굴 붉힐 일이 생긴다고, 설령 그 대상이 가족이더라도 마찬가지라며 숱한 걱정을 보내는 많은 목소리들에 노파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혹시나 여행을 계획하던 기간 중 나의 미숙함으로 S의 마음이 불편한 적은 없었을까, 여행 동안 S가 서운함을 느끼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자꾸만 위로 얹혀갔다.
물에 젖은 솜 같은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이윽고 거대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 어둠 사이로 날아올랐을 때, 나란히 앉은 S와 멀어지는 불빛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무사히, 재미있게 놀다 오자”
S에게 건넨 말이기도 하면서 스스로 선언하는 말이기도 했다. ‘무사히’라는 단어에는 무수한 의미가, ‘싸우지 않고’, ‘다치지 않고’, ‘즐겁게’, ‘후회 없이’라는 뜻이 ‘무사히’ 뒤에 숨었다. 아마 나는 그때, 멀어져 가는 지면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채 어둑한 하늘 위로 둥실 떠올랐던 것 같다.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불안으로 다가올 행복의 자리를 빼앗을 필요는 없다.
암, 그렇고 말고. 그리고 나는 나와 S를, 우리가 보내왔던 짧고도 긴 시간들을 믿는다. 적지 않은 시간을 서로 가까이 붙잡고, 또 가만히 내버려 두기도 하던 안전거리의 시간을 다시금 믿어보기로 한다.
새벽녘, 조용한 침묵으로 잠든 기내에서는 짧은 편지를 썼다. 배려하기 위해 숨기기보다 드러냄으로써 한 발 가까운 사이로 나아가자고, 8시간 후에 도착할 이국의 땅에서 비록 다투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마음속에 꽁꽁 감추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솔직한 우리를 마주할 용기를 내자고 생각하면서 종이를 꾹꾹 접었다. 11월 22일에는 불안과 작별을 했고, 곧 있으면 또다시 22일이 시작된다. 어제와 같으면서 또 다를 오늘, 우리는 어떤 하루를 만나게 될까.
어제는 굿바이, 오늘은 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