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근한 토마토 스튜의 맛
“어, 저 사람 되게 멋지다.”
“그러게. 꼭 토마토 같네. 멋쟁이 토마토”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기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토마토.
목소리는 거기서 끝났지만 입 안에서는 어린 시절 부르던 노랫말이 빙그르르 맴돌았다. 어찌나 신나게 그리고 목청 높여 불렀는지. 아직도 가사를 온전히 기억하는 거의 유일한 토마토 노래 덕분에 삶의 태도가 멋져 보이는 사람을 볼 때면 남몰래 토마토 같다는 칭찬말을 덧붙이고는 한다.
가사에는 스스로 멋지다고 말하는 자아도취형 나르시시스트 토마토가 가득했지만 글쎄, 내게 토마토는 그리 멋진 과채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같은 음식도 더 맛있게 먹고 싶은 미식가적 마음과 눈부신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스테비아 토마토, 샤인마토, 토망고 등과 같은 달콤한 개량 품종이 생겼지만, 동요를 부르던 어릴 때만 하더라도 토마토는 그저 방울토마토 혹은 완숙 토마토뿐이었으니까.
방울토마토는 그나마 조금 더 달기라도 했지만,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완숙 토마토는 무슨 맛인가 싶을 정도로 맹맹하게 느껴져서 커다란 토마토를 먹을 때에는 꼭 잘게 잘라 찬란한 금빛 설탕 가루를 듬뿍 뿌려 먹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오죽하면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국가대표에도 토마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까. 미국으로 입양을 간 주인공은 아주 어릴 적 먹었던 설탕 토마토로 자신의 친부모를 기억하고, 한국에서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되고, 결국 친어머니를 찾아 오래된 추억 속 설탕 토마토를 먹게 된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에서 토마토가 꽤 멋진 과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첫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설탕 몇 숟갈로 금세 달아지는, 그저 한 입 먹고 마는 과일이 아니라 그리운 사람까지도 찾게 만드는 과일이라니!
이후 감귤이나 복숭아처럼 떠올리기만 해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이는 과즙형 과일들에 밀려 과일과 야채에 모두 속한다는 특수성의 힘도 쓰지 못하던 토마토는 내가 어른이 되던 어느 시점부터 다시 제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달기만 한 다른 과일들과 달리 깔끔한 맛에 야채의 특성을 가진 토마토는 단지 식사 후 후식으로 먹는 개념의 과일이 아니었다. 밥을 지어먹기도 버거운 날에는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는 간편한 한 끼 대용이 되어주었고, 체중감량이 간절하던 어느 날에는 높은 수분함량과 낮은 당 지수로 마음 편히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이 되었으며, 별다른 재료 없이도 토마토 하나만 추가한다면 마법을 부린 듯 특별하고 근사한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케첩과 주스가 될 수 있어 뽐냈던 토마토는 이제 케첩과 주스를 넘어 파스타, 솥밥, 샐러드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진짜 멋쟁이가 된 것이다. 문득 어떤 날이 떠오른다.
이유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평소보다 늦은 퇴근을 했던 날이었다. 해의 길이가 짧은 계절 탓에 해뜨기 전 출근을 하고, 해가 진 뒤 퇴근을 하는 당시의 패턴은 실상은 그렇지도 않은 사람의 기분까지 어둑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미 땅거미가 질 대로 져 버려 깜깜한 하늘에 하얀 입김을 불며 들어온 집은 역시 깜깜했다. 정신없이 헤집고 나간 흔적만이 가득한 그 조용하고, 쓸쓸하고, 어두운 집에 하얗던 입김은 새까만 한숨이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배까지 고팠다.
‘우선 밥부터 먹고 보자’ 냉장고에서 언제 샀는지 가물가물한 토마토를 꺼냈다. 토마토는 이럴 때 힘을 발한다. 쉽게 무르지 않는 특성은 제때마다 냉장고를 들여다보기 힘든 현대인에게 잠시의 느긋한 여유를 건네니까. 호박과 양파가 맛깔스러운 갈색빛을 낼 때까지 볶다가 깨끗이 씻은 토마토를 숭덩숭덩 잘라 넣는다. 단단하지만 잘 보면 속에 수분이 가득하여 시간이 지나면 물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원래의 형태는 사라진다.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냉동실에 보관하던 닭고기나 소고기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무심하게 간을 한다. 여기서 고형 카레를 한 덩어리 넣으면 토마토 카레가 된다. 남은 것은 시간의 힘. 어떤 음식이든 좋은 재료와 시간이 만나면 맛이 깊어진다. 뚜껑을 덮고 뭉근하게 끓인 스튜가 점점 걸쭉해지면 다 되었다는 뜻이다. 하얗고 우묵한 그릇에 담아 식빵이나 바게트를 곁들인다. 빵을 더해도 좋고 파스타 면을 넣어도 좋다.
끓는 동안 부지런히 씻고, 제쳐둔 옷가지를 치운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식탁에 앉아 완성된 스튜를 후룩후룩 떠먹었다. 겨울에 먹는 따뜻한 음식의 좋은 점은 음식의 온기가 몸에 전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코에 닿는 김이 입으로 들어가서 혀에 닿고, 꿀꺽 삼키는 것과 동시에 식도를 타고 내려가 가슴 언저리에 닿는 가만한 감각. 내가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는 말을 이처럼 또렷하고 생생히 알게 되는 순간이 또 있을까.
냉장고에 토마토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냉장고를 이리저리 보다 결국 배달 앱을 켰을 테지. 종류는 다르지만 먹고 나면 꼭 기분만은 같아지는,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한 김 식은 채로 도착한 배달 음식을 먹으면 배는 불렀지만 저 깊은 곳, 속은 메슥거리는 것 같았다. 일률적인 조리법과 대량의 재료를 한데 모아 만든, 공장에서 갓 나온 듯한 음식들은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 듯했다. 그에 반해 시간을 들여 물렁물렁해진 토마토는 간단한 맛의 음식이었지만 배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꼭 가슴이 아닌 마음이 데워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암만 더워도 가슴이랑 배에는 꼭 이불 덮고 자야 해”
엄마는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꼭 얇은 이불을 덮고 자라고 했다. 특히 여자라면 더욱 배를 따뜻하게 덮어야 한다고. 그래야 찬 기운이 들지 않는다면서 여름에는 홑이불을 겨울에는 두툼한 솜이불을 챙기던 엄마에게서 자란 나는 계절마다 이불을 바꾸고, 계절마다 따뜻한 음식을 챙겨 먹는 어른이 되었다. 그것도 토마토로. 아무도 모르는 새에 더운 공기가 가득할 때에는 바질과 토마토로 시원한 파스타로 텁텁한 마음을 환기하고, 건조한 쌀쌀함이 가득할 때에는 뭉근한 토마토 카레로 포근함을 껴안는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정겨운 옛 노래 속 토마토처럼 과일도 될 수 있고 야채도 될 수 있는 토마토. 어떤 모양도 어떤 음식도 될 수 있어 때마다 나를 보살피게 하는 토마토.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자칫 춤추게까지도 할 수 있는 멋쟁이 토마토로 이번엔 무엇을 만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