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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하는 천재들

저는 ‘고독한 천재’들이 왠지 멋있어 보입니다. 닫힌 서재에서 홀로 고뇌하며 완벽한 해답을 들고나오는 영웅적 인물. 하지만 협업의 기량과 사회적 지능으로 성과를 극대화하는 천재들도 있습니다.


<티모시 가우어스>의 혁명


2009년 1월,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자이자 필즈상 수상자인 티모시 가우어스(Timothy Gowers)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Timothy Gowers - Wikipedia


“수학에서 대규모 공동연구가 가능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조합론의 난제라고 하는 ‘헤일스- 주잇 정리(Hales-Jewett theorem)’의 새로운 증명을 찾는 문제를 공개하고, 전 세계 수학자들에게 불완전한 아이디어라도 좋으니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시도는 ‘폴리매스 프로젝트’라 명명되었습니다. 다학제적 천재를 의미하는 ‘폴리매스’를 이번엔 수학자들의 협업을 의미하기 위해(poly + math) 사용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가우어스는 몇 가지 협업 원칙을 제시했는데, ‘엉뚱한 의견도 환영한다’, ‘글을 최대한 쉽게 쓸 것’, ‘불완전한 아이디어를 특히 환영한다’ 등이었습니다. 완벽주의와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집단 지성의 힘을 믿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40명 이상의 수학자들이 협력하여 증명의 얼개를 2개월 내에 만들고, 원래의 목표보다 훨씬 더 큰 결과를 증명해냈습니다. 이후 폴리매스 프로젝트는 15개 이상의 공식 프로젝트로 확장되었고, 275명 이상의 기여자들이 5,000개 이상의 댓글을 남기며 ‘D.H.J. Polymath’라는 공동 필명으로 여러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사회성: 지성의 핵심 구성 요소>

가우어스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이제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사회성이 지성의 핵심 구성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소통 능력, 불완전함에 대한 관용, 단순한 꾸준함이 아닌 학습과 협업의 리듬이 포함됩니다.


1. 지식 소통과 의미 정렬

이는 복잡한 아이디어를 타인이 따라올 수 있는 명확한 문장, 도표, 예시로 번역하는 능력, 그리고 ‘무엇이 빠졌는가’, ‘어디서부터 합의할 수 있는가’를 묻는 메타 질문을 통해 집단의 인지 프레임을 맞추는 능력입니다.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교육학적 감각을 요구하는 이 능력이 지식 협업의 출발점입니다. 폴리매스 프로젝트에서 ‘글을 최대한 쉽게 쓸 것’이라는 원칙과 짧고 명료한 댓글 문화가 바로 이런 것을 구현한 사례로 보입니다.


2. 불완전함의 전략적 활용

막다른 길, 실패한 시도, 반쯤 생각난 스케치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단위로 축적하며, 로그와 출처를 투명하게 남기는 능력입니다. 미완의 아이디어가 또 다른 사람 생각의 발판이 되려면 추적이 가능해야 하니까요.


3. 협업의 리듬

사람마다 가능한 때 깊이 기여하도록 페이스를 설계하고, 기여 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협업은 출석이 아니라 에너지의 합임을 인정해야 지속될 수 있고 결정적 통찰이 제때 등장합니다.


폴리매스 프로젝트에서 어떤 사람은 3일간 집중적으로 30개의 댓글을 남겼고, 어떤 사람은 3주 후에 단 하나의 결정적 통찰을 던진 것처럼, 다양한 강도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효율과 리듬보다 출퇴근 시간을 강조하는 집단에서 천재들의 협업은 이루어질 수 없을 듯합니다.


오픈 소스 생태계가 ‘완벽한 릴리스’보다 ‘작게, 자주, 투명하게’를 미덕으로 삼는 것처럼, 가우어스는 이런 사회적 문법이 수학처럼 가장 ‘밀실에서’ 이루어질 것 같은 분야에서마저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고독이 깊이를 주고 혼자만의 집중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합주가 필요한 장면이 분명 있는 듯합니다.



언어정보학 박사 Dr. James 엄태경


한국미래교육경영원 대표

AI 디지털 융합 교육 전문가

"기술보다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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