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마주하는 순간
얼굴
의자 그림책
책고래 출판사
타인 감정의 투영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 변화를 귀신같이 캐치했다.
착각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 맞았다.
나와 특별히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감정의 변화도 금방 흡수해 버리는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내 감정도 좌지우지되는 일이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이 또 하나가 있다면, 이제 감정변화의 캐치는 여전하지만, 적당히 무시하며 살 줄 알게 됐다는 점이다.
내 담장 속에 들이지 않은 사람들의 감정 변화는 어느 정도 눈을 감아버릴 수 있게 되어 그나마 살아냄에 보탬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샘 힘들게 사시는데요?"
"맞아요. 저 그래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감정 변화도 이렇게 빨리 캐치하는데, 하물며 내 담장에 들인 이들에게는 어떻겠는가!
적당히 무시도 하지만, 왠지 그 감정 변화가 혹여 '나'에게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면 나의 하루는 엉망이 되기 일쑤다.
"미움받기 싫어요."의 마음이 마음 깊숙이 들어앉아 나를 갉아먹는다.
불안하고 가난했던 기억들이 깊은 곳 안에 똬리를 틀고, 삶의 곳곳에 영향을 준다.
조금만 잘못하거나 어긋나도 모두가 나를 향해 비난의 눈동자를 퍼붓는 듯했다.
그렇게 눈치를 살피며 살아왔었다.
어릴 때 만났던 사람이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넌 나의 페르소나야."
그때는 몰랐던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사람 역시 가면이 필요했으리라.
내가 쓴 가면은 보지 못한 채, 밝아 보이는 겉모습만을 보고 '나'라는 가면을 쓰고 싶었구나...
의자 작가님의 [얼굴] 그림책을 보면,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주인공이 보인다.
가면을 쓰기 전과 상반된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 가면을 쓰고 산 삶은 거짓인가?
나에게 묻는다면,
"아니!"
라고 말 하겠다.
가면이 거짓이라면, 그토록 오래 얼굴에 붙어있지 못하지 않을까?
가면도 결국 내 속의 일부였던 부분이라 생각한다.
주인공이 가면을 벗었을 때 본래의 얼굴은 텅 비어있다.
너무 오래 쓴 탓에 진정한 '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여기에서 또다시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앞서 말했듯이 가면이 거짓은 아니라고 말하는 나에게는 도통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거다!
이러면 나도 받아들일 수 있지!
결국 가면은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였던 것이고, 무수한 상처 속에서 살아남은 '나'인 것이다.
"상담을 하면 정말 잘 맞을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었다.
"욱이 어머니랑 이야기하면 마음이 정리가 되고 편해져요."
감정을 잘 캐치하기에 잘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 부분 때문에 꺼려지기도 한다.
너무 깊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기도 쉽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부분 대문에 상담사들이 정기적으로 비움의 시간을 갖는 것 일깨다.
그리고, 내담자와의 친밀도의 선을 지키는 일도 나에겐 버거운 일이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오래전부터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 글을 쓰기에는 나의 시간적 여유와 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현재 나의 삶과 관련이 있는 것들로 시작을 했다.
난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지망생이고, 그림책작가이다.
실제로 저작권등록을 한 그림책이 두권 있으니 작가인 건 맞으나, 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란 것을 알기에 작가지망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끄적거렸던 것들로 시작을 했고, 나의 이 많은 생각들을 토해 낼 곳이 필요해서 일기장을 만들었다
토해내듯 글을 쓰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쓰자.
이 과정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