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제목부터 나에게 다가 온 그림책 <담쌓는 사람>
글/ 아리안나 스퀼로니
그림/ 데쿠르
킨더랜드 출판사
나는 담쌓는 사람이다.
언제부터 일까?
스물을 넘어 서른이 되고,
마흔을 넘어 노안이 왔구나를 느끼는 요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몇 달 전인가.
아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 알게 된 분과 오랜만에 아주 오랫동안 통화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깊어지며 나를 돌아보고, 그러면서 내가 타인을 대하는 시선이 실로 척박하는구나를 깨달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만나는 사람들.
그 속에 나는 저 담쌓는 사람처럼, 겹겹이 사방에 담을 두르고 있다.
관찰하며 어떤 사람인지 살피고,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살핀다.
좋은 사람이어도 나와 결이 맞지 않는다면 그건 나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생각들의 밑바닥에는 ‘나는 상처받기 싫어요.’가 짙게 깔려있을 뿐이다.
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좋은 사람 이군요.’와 ‘왠지 저런 사람 싫어.’
어제 만난 분이 물어보시길.
날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요?
예민한 편인 나는 대번에 누가 날 싫어하는지 느껴지는 편이다.
날 싫어하는 사람은 나도 싫다.
그렇지 않은가!
날 싫어하는데 나만 좋아할 필요가...
날 왜 싫어하는지 굳이 생각하며 머리 싸매고 우울함에 빠져들기도 했었지만,
나이가 드는 게 좋다고 느끼는 지점이 바로 이런 거 같다.
이제 그런 무의미한 일에 내 감정낭비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연습을 필요로 하고, 때로 생각이 쌓이고 쌓여 동굴 속에 숨어버리기도 하지만...
결국 배움과 깨달음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나는 담쌓는 사람이다.
나의 높다란 담이 허물기 시작하면 좁고 깊은 인간관계 속에 누군가를 들이는 일이 되고,
그러고 나면 난 나의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 한다.
사실 나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항상 좋기만 한건 아니지 않은가!
이미 나에겐 그것마저 한계에 부딪힐 때가 종종 있기에 더 이상 늘리는 거 자체가 꺼려지기도 한다.
아마도 이런 모습들의 응집된 나의 모습을 보고,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빼고도 내가 가식적이라 느낄 수 있으리라.
때때로 나도 내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으니 말이다.
말이 많아지면 실수가 잦다.
최근 들어 더 깨닫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드물어지고 그마만큼 대화를 할 일이 없어지다 보니,
어쩌다 '입 터졌다' 하는 날은 꼭 실수가 뒤따라오는 거 같다.
집에 와서 이불킥도 해보고 자책도 해 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가 중요할 뿐이다.
가끔은 나도 나처럼 생각 속에서 허우적 대지 않고 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렇지만, 부럽다고 다 따라 하다가는 아마도 내 속에 '나'는 남아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의 에너지는 딱 이만큼이니까.
'나서서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라고들 말한다.
안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알아주지 않으면 또 어떻겠는가!
나도 그네들의 속을 다 알 수 없는 것을.
그저 보여진 모습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추측할 뿐이지.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사람.
나의 담은 이미 오래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꽤나 견고한 벽돌집이다.
나는 그저 천천히 담을 허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