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복잡할 때, 자연과의 교감
19일 아침 거하게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꿈에서 평소보다 머리를 쓰는 바람에 깨어났을 때에도 정신이 없었다. 꿈의 내용은 급하게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놓고, 잠시 바디스캔 명상을 했다.
[ 몸이 안 좋을 때마다 꾸준히 하고 있는 명상법인데, 말 그대로 몸을 스캔하는 명상법이다.]
명상이 끝난 뒤 아침을 영양식으로 차려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는데 두통이 점점 심해져 왔다. 뭔가 머릿속에 꽉 찬 느낌이었다. 가끔 생각이 많아져 견디기 힘들 때는 언제나 자연을 찾는다.
[어릴 적,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주변 대학 풀 숲에서 놀거나 주말엔 뒷 산에 올라 자연인 흉내를 내고는 했었다.]
자연을 찾고, 휴식을 하고 머리를 비워냈다.
자연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언제나 옆에 있으니까. 영원한 동반자다.
내가 먼저 죽겠지만 그래서 더더 더욱 든든하다.
미리 작성해 놓은 글을 도저히 정리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머리는 아파오고 해야 할 것들은 많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하기로 결정했다.
사진 찍고 응원글 쓰기.
난 이렇게 하는 과정이 참 행복하다. 그날의 습도나 바람 그리고 냄새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행복했던 날이 오마주 되면, 가슴속 깊이 감동받기도 한다.
그렇게 하염없이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하염없지 않았다. 대략 30분을] 걷다 보니, 예쁜 잉어가 보였다.
이 날 또 하나의 선물인 셈이다.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응원했다.
처음에는 화가 난 듯이 수풀 사이로 머리를 비집고 넣어서는 막 흔들어댔다. 그러곤 이내 움직임이 멈췄다. 곧 다시 수풀로 머리를 집어넣고 아래로 빠져나가더니 또 한 번 수풀에 가로막힌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게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정말 아름답게 헤엄쳐 가더라. 무슨 인어인 줄 알았다.
오라가 보일 뻔했다.
[내가 살면서 오라 비슷한 걸 딱 한 번 봤었는데 착각인지 진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람이 살다 보면 미칠 것 같은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온다. [아니라면 그냥 춤이나 추자!]
말할 곳도 없고, 엉엉 울 수도 없을 때... 돌덩이가 가슴에 콱 박혀 허우적거릴 때 말이다.
그때 나는 멈춰서 감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느껴본다. 그러다 보면 오래 지나지 않아 이내 잠잠해지고, 나 또한 아름다운 잉어처럼 아름답게 춤을 추며 다시 삶에 열중하게 된다.
명상 중 내가 좋아하는 명상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차크라 명상이란 것이 있다. 바디스캔 명상을 함께 하면서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자연에서 치유를 받을 수도 있다. 때에 따라 밖으로 나갈 수 없을 때나, 계절 중 가장 색이 없는 무채색의 겨울엔 사진으로 달래기도 한다. 꼼꼼히 만져보고 느끼다 보면 그때의 추억이 깊어진다.
미워하지 않으려 해도 사람들에게 실망할 때가 있다. 순간에는 미워하고 원망을 한다. 어떤 날은 그런 감정이 너무 싫어, 하루 종일 절을 한 적도 있었다. 서러움과 울음을 참으려 애써도 눈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된 그날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까지 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지금은 안다. 순간의 감정으로 나 자신을 외면한 게 나였다는 걸.
상대가 하는 말과 행동은 막을 수가 없고 찰나였다.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의심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했다. 이미 따뜻한 사람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는 걸 잊고 더 나은 사람, 더 착한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강요했다. 그렇게 나를 잃어갔고 어느 날 나를 또렷이 보았을 때 숨소리조차 울먹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면, 숨을 쉴 때도 울먹이는 소리가 나온다.]
그때의 인연들은 마치 떠나갈 구실을 찾듯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맞춰 주길 바랐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종국에는 시종 대하듯 하대하던, 그날을 뒤로 내 삶 속에 영원히 사라진 인물들이 되었다.
학창 시절, 보살이란 별명을 갖고 있던 내가, 그들을 그렇게 떠나보낸 건 내 삶의 엄청난 사건이었다. 더 이상 전처럼 볼 수 없다는 사실에도 전혀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꽉 움켜쥐고 놓지 않았던 그 미련들을 전부 놓아주었다.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 착취당한 사람들이 깨달았을 때 겪는 변화들이라고 한다. 자존감이 낮아져 있던 내가 타깃이 된 거였고, 잘못된 관계임을 눈치채지 못했던 이유는 민감한 가정사에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그 작은 행동 하나를 나 자신에게 해주지 못했고, 그런 감정들이 올라오는 것을 허용해 주지도 않았다.
주변에 아름다운 말들을 실어 나르고, 그들의 자존감 만을 생각했던 내가 서서히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면서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어쩌면 상대가 나와 같이 행동해 주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상대가 어떻게 날 대하든 그건 그들의 삶이니까. 나는 그 손을 놓고 내 갈길 가면 그만이었다. 삶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당황하고 울며불며 붙잡던 사람도 있었고, 오히려 내로남불 식으로 꼬투리를 잡아 마치 경고하듯 했던 사람도 있었고, 더 이상 예의를 갖추기 싫었던 사람의 연락은 받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모습에 몇몇의 인연들은 그러한 반응들을 보인 걸까? 그 물음에 나 스스로 답 해주기로 했다. 여러 권의 심리 서적을 읽고, 치유 영상을 접했고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심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의 최종 진단은 친절과 배려가 너무도 간절했던, 다양한 나르시시스트들의 욕구 충족 대상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적고 있는 하루 전날, 꿈을 꾸었는데 이제는 그들로부터 날 지켜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나르시시트에 관한 미묘한 심리를 보여준다.
치유과정에 나는 나와 있을 때 가장 많은 날을 웃을 수 있다고 했고, 나와의 대화는 성공적이었으며, 지금도 매일 대화중이다. 어떤 사람은 지속적으로 좋지 않은 관계에 끌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고, 그걸 알아차리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 사람도 있다.
잘 생각하고, 잘 봐야 한다. 날 잘 돌봐야 그 상황이 더 선명히 보인다. 상대의 불편한 점이 아닌, 내가 불편해하는 상황을 살펴보고 의견을 들어주다 보니, 어느새 나에게로 돌아와 있었다.
나의 리소스인 사진과 자연 그리고 글, 날 붙잡아 준 땅과 뿌리들이 없었다면 아직도 그러한 대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미움이 올라올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변화시킬 마음은 없다.
누군가는 냉소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문장이지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상대를 향했던 시각에서 나를 향한 관심으로 아기 걸음마 하듯 옮겨 가고 있는 중이다.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는 감정 자체를 놓아버렸다. 그리고 내가 날 위해 변화할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브런치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천천히 해도 된다. 오랜 세월을 이겨냈을 당신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럽지 않도록 천천히 다독이며,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한 친절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수 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처럼 대해줘."
나는 이 말을 어린 조카에게 들었다.
조카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모는 이모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 것 같아. 다시 나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음에 1초의 고민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처럼 대해주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울컥하며, 감동했다. 그날 그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러닝을 할 때 빠르게 뛰면 시야가 대부분 차단된다. 도파민이 분비돼서 기분은 좋을 수 있지만, 지형지물이 좋지 않을 때는 걷기도 해야 한다. 어쩌면 삶도 그런 것 같다.
삶의 주기를 그리듯 나는 이걸 춤에 비유하고 싶다. 춤은 잘 못 추지만 마치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때로는 양 옆으로 흔들어보고 약간씩 흔들면서 걷기도 하고 경치 구경도 하고 말이다. 껄렁껄렁 걸어도 보고 당당하게 어깨도 펴보고 고릴라처럼 "내가 최고다!" 하며 걸어도 보고 [진심반 농담반] 아침에 거울 앞에서 “이야! 오늘 더 이뻐졌네! 하고 두 뺨을 어루만지기도 해 보는 거다.”
자,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해보자!! [내키는 사람만 하는 거다. 강요는 절대 절대 아니다.]
“와!!! 이런 아름다운 사람이 또 어디에 있어?! 꽃구경 안 가도 되겠어. 매일 보니까!!” 웃음이 나면 더 좋다. 좋은 신호다. 당신과 나는 이미 훌륭한 자질을 품고 있으니, 치유에 박차를 가하자! 아니 아니, 각자의 속도에 맞게!!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가자.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 주세요.
“수고했어 우산을 쓴 소녀야!”
“수고했어 _______야!” 적어도 보세요.
저는 가끔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 자책하고 있는 제 자신을 그대로 두어요. 그리고 말해요. "이제 다 끝났어? 욕도 하고 미워하느라 수고 많았네. 자, 그럼 이제 내가 욕먹을 만한 짓을 한 건지 따져 볼까?" 이렇게 말하고 나면 갑자기 조용해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미안해. 아까는 내가 너무 급하고 조바심이 나서 무례하게 굴었어. 정중히 사과할게." 그리고 그동안 돈 아끼느라 먹지 못했던 음식도 먹고 나와 데이트도 하러 나가요. 남들에게 하는 만큼만 했더니, 글쎄 제가 여왕이 된 기분이었어요. 이건 분명 참신하고 신비한 경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