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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을 쓴 소녀 Nov 26. 2024

지구 한 바퀴 6

미움이 사라진 자리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렸는지 모른다. 오랜 시간 기록을 통해 미움이 자리할 곳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리라 다짐했다. 산책의 경우,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동시에 아픔의 감정들을 서서히 녹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주고 있고, 그와 동시에 놓았던 꿈의 영역으로 한 발 자국 걸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아직도 슬픔이 자리한 가운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걷기를 해본다. 떠오른 장소는 남산이었다. 

왜 이곳이 떠오른 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부름이 있어서인지, 기억이 추억하려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자리하고 싶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날이 싸늘했다. 구름 뒤 맑은 하늘을 고대해 보았지만,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걸어본다. 높이 솟은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내가 가려는 목적지가 맞는지 확인해 본다. 과거에는 걷지 않았던 초행의 길이라, 익숙지 않은 느낌이더라도 과거 보단 조금 더 수월하게 오르는 중이다. 회복의 여정에 이 정도 극복된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성곽의 뚫려있는 네모난 구멍 사이로 시선을 맞추어 본다. 양피지 같은 모양이라 마음에 들었다. 

이 프레임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작게 난 구멍을 들여다본다. 

그리 맑지 않은 하늘이라 바람과 함께 쌀쌀함이 느껴지지만, 내내 계단을 오르고 쉬 고를 반복하며,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양볼에 열이 오르고, 몸에 깊고 따뜻한 열감이 올라오면, 안정감이 든다. 


미움이 사라진 자리, 어느새 따스함이 깃든다. 형용할 수 없는 감사함이다. 애써 잊으려 노력했던 긴긴밤의 시간들이 다시금 스쳐 지나가고, 그 길을 따라 순간순간 많이도 아팠고, 울었고, 그러한 기억의 프레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시작의 끝은 애초에 없었다. 


삶이 서툰 탓이다. 그뿐이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미움이 자리할 공간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사랑, 그 어렵지만 진정한 방법. 


사랑이란 진리. 무엇이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말 대신 좋아함을 선택해 보았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이 든다. 황홀한 경지의 쾌락은 없더라도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에너지와도 같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 기대어 잠이 들면, 어느새 꿈의 세상에서도 강한 메시지를 받게 되는데, 은은한 촛불 영역의 경우, 수많은 마음 가짐을 선언하고,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무엇을 깨우쳤는지 보다는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에

전부를 두고 은은히 좋아함을 느껴본다. 




솔직함, 성격적 결함이라 여겼던 그것은 삶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유한의 삶은 애처롭게 보이지만, 시작의 끝은 

맺을 수 없는 법. 끝이란 존재는 어디에도 없지만, 당연시 여겨지는 무한한 것들에 취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삶의 가치들을 바라본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


끝맺음의 끝이란 대체 어떠한 형태로 맺어지는 것인가?




보이지 않은 것들에 에너지를 쏟고 쫒으며 배운 점은 무엇인가? 


"그대, 열 일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대의 짐이 아닌 것들은 그동안 그대를 너무 고단하게 하였다. 수많은 조언들에 휩쓸려 본성을 잊은 지 오래되었지, 그 본성은 순수한 마음들이다."


남산을 내려오는 길에 사진을 찍어주고, 유튜브에서 봤던 젊은 청년을 보았다. 요즘따라 스쳐갈 인연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곳이 산 속이든 어디든...


집착을 내려놓고, 인연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진 한 장에 담긴, 특별한 시간을 만끽해 본다. 

이내 적막한 가운데 당신을 바라보면, 얼마나 감사한 인연인지. 그동안 나는 무얼 떠올리며 살아왔는가. 미움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극적인 감정이 녹아내린 자리에 여전히 그대들이 있다.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대의 무게로 삶을 살아가는 자. 용맹한 사람들이 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떠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모두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 최선이란 것에 정의는 누구도 헤아리지 못한다. 


그렇게 인연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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