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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을 쓴 소녀 Dec 19. 2024

지구 한 바퀴 7

목적지

곳곳이 흔적이다. 수 없이 흐르던 시간들 그곳에 너와 내가 있었지. 산속은 마음과 정신의 정화 작용을 돕는다. 비록 공상에 가까운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하여도 그저 말없이 바라볼 수 있는 가을 낙엽도 있고, 차가운 바람 따라 흐르는 물줄기도 꽉 막힌 마음을 어느 정도 느슨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고거 참 잘 익었네, 사과 하나를 등산객이 떨구고 간 모양이다. 불그스름한 것이 잘 익은 사과 같기도 하고 복숭아 같기도 하다. 맑은 물에 씻겨 더 청량해진 색채가 잊었던 열망을 떠오르게 한다. 오래 묵은 감정의 덩어리는 비 온 뒤 산속의 맑은 공기와 흐르는 물 덕분에 청량해진다. 한숨이 사이다 한 모금 같은 느낌이랄까? 얼마 전부터 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능숙하게 익힌 사람이라면, 이러한 변화에 따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한 동안 놓치고 혼란해하며, 감정을 찾아다니고 있다. 과거에도 여러 번 겪었던 상황에 대한 감정일 거다. 가슴이 답답하고 말을 할 때마다 억지로 힘을 짜내야만 말이 나오는 상태.

 

물가에 앉아 생각해 본다. 고요한 풍경과 익숙한 정취. 딸랑이던 방울 소리들, 저벅저벅 흙먼지를 날리던 등산화 소리, 어느 이름 모를 화가의 인수봉 풍경화 그리고 거리의 예술인 그들의 색소폰 소리와 달달한 초콜릿의 달콤과 고소함도 느껴진다. 좋아했던 곳. 이제는 그곳에 가기를 꺼려하는 영혼이 있다. 누군가와 추억을 나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들을 상당 부분 주고받는 의식(儀式)이다. 어린 왕자가 떠올랐다. 길들여진다는 것. 길들이는 것들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 그날따라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오래전 내려 나무에 촉촉하게 스며 있던 수분들이 나뭇잎을 타고, 물가로 똑똑 떨어진다. 한 참을 바라보니, 둥근 파장들이 생각을 멎게 한다. 고요함과 적막함이란 참으로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외부의 평화를 느끼고 그것이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었었는데, 덕분인지 그날의 습기가 딱히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북한산들은 내 영혼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장소들이므로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은 그저 그 자체로 감사함이었는데, 말이라는 것이 본질을 수 없이 가려버렸다. 방어적 태도는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그 안에서 수 없이 많은 감정들로 싸우다 지쳐버린 일들.


상대의 방어적 태도 역시, 자신을 지키려는 안간힘이었겠지?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란 기억의 조각들이 잘못된 퍼즐 조각들을 생성해 내고, 끼워 맞추고 2차적 추측으로 서로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든다. “일어남과 사라짐. 이 또한 지나간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마치 마음의 주문처럼 외치고 또 외쳐 보았지만, 평정심이란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야 찾아지고, 그러한 과정이 썩 웃음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겸허히 인내함이 다시 저항을 만들기 전에 물가를 찾아 흘려보내야지.



사람은 사람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것은 자신 또한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상대를 보듬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 나눌 사랑이 한 주먹뿐인데, 그러한 귀한 마음 그 마저도 떼어주면, 강한 바람이 불 적에 어찌 자신을 사랑할 마음이 남아있을까? 사랑의 방식은 정의할 수 없지만, 그 한 주먹은 자신을 위해 쓰길 바란다. 그렇게 다시 사랑을 채우고,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할 자신, 사랑을 가득 채운 뒤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채워진 사람들이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당신을 사랑해 주는 곳으로 가 길 바란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의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는다. 존재로써도 이미 귀한 인연이며, 상대의 영원하지 않을 시간 또한 헤아리기 때문이다. 그 문이 닫혀 아집으로 치닫는 사람도 결국에는 자신의 모습을 볼 날이 올 테니, 그 시간을 주고 그들도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면, 더 이상 그 어떠한 미움도 사라질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인연은 왔다가 서로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자연의 섭리처럼 이내 일어났다가도 사라짐을 반복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니, 감당해야 할 감정은 그저 자신에게 쏟아냈던 비난들을 거두고, 감정을 보듬어 주고, 건강해지고 있는지 틈틈이 확인해 주는 소소하지만 작은 움직임일 것이다.


-도봉산의 세차게 흐르는 물속에 묶은 감정을 흘려보내고, 너와 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감정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주고 공감해 줬을 때야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을 이해한 후에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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