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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북스 Oct 05. 2023

난청아이의 노래실력

와우를 통해 듣는 음악

인공와우는 사람의 목소리 듣기에 최적화된 청각보조기기이기 때문에 정확한 음을 들을 수 있는 것을 기대한다는 건 부모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나도 인공와우가 어떻게 우리 아이에게 소리를 들려주는지 그 소리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항상 그것이 궁금한데, 성인 와우 착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와우로 음악을 듣는 건 청량한 오케스트라 음악도 헤비메탈로 만들어 버린다. 잘 들리던 라디오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면 치지직 거리는 것처럼 인공와우는 안개가 낀듯해 정확한 음을 들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부모로서 걱정이 되는 건 음악 감상보다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 상황이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와우를 착용한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 앞에서 가창시험을 보는 건 체육 시간에 지체장애인에게 달리기를 평가하는 것과 같다고들 표현한다. 고학년이 되어서도 아이가 장애에 대한 주눅이 들지 않는다면 친구들 앞에서 과감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난청 아이들은 가창시험 대신 다른 악기로 시험을 대체한다고 선배 엄마들한테 들은 적이 있다.

초2 우리 집 녀석은 자신이 심각한 음치인데도 전혀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노래 부르기를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 파라다이스 복지재단이라는 곳에서 난청 아이들 합창단을 만들어 매년 공연을 하고 있고 3년 전에 우리 아이도 그 합창단의 단원이 되었다. 노래를 워낙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합창단에 들어간 이후 아는 노래가 더 많아지고 자신감까지 더해지니 덕분에 자주 고성방가를 듣게 된다. 단원이 되고 처음 지휘자님을 뵈었을 때 지휘자님은 대뜸 “난청 친구들은 악보를 못 봐요.”라고 하시길래, ‘도윤이는 악보 볼 수 있는데?’라고 속으로 화가 났었는데, 그 의미는 사실 ‘악보를 봐도 그 음을 정확히 낼 수 없다는 뜻’ 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한 번도 그 음을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으니 그 음을 부를 때마다 음이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도’ 음이 어느 날은 미로 나오고 어느 날은 파로 운이 좋으면 도가 되어 나온다. 그러니 노래는 어떻겠는가? 합창이라고 해도 난청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화음을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재작년 아이소리 앙상블이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준비도 많이 했고 훌륭한 영상팀에 유명한 연주자들 까지… 굉장한 공연이었는데, 나중에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니 그런 불협화음이 없었고 노래는 차마 들어줄 수 없는 정도의 소음에 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난청 아이들이 노래를 한다고 감동을 받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1분도 채 듣지 않고 내 아이 노래 부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 당장 유튜브를 꺼버렸다. 내 아이가 무수히 연습해 온 노래, 자다가도 절로 나왔던 그 노래가 들어줄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인정하기 어려웠다. ’ 난청 아이들의 노래의 한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구나.‘ 하며 절망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11월에 공연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공연에서 빠질까?!’ 생각도 했지만 아이소리 앙상블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해체된다고 하니 유종의 미를 거두기로 했다. 이번에는 지휘자님의 큰 포부로 귀빈들을 모시겠다고 단언하셨고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열심히 연습 중이다. 우리 아이는 또 공연이 기대되어 집에서도 흥얼거리고 노래를 틀고 한창 신이 났다. 그렇게 즐기는 아이를 보면서 재작년 노랫소리에 진심으로 평가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한심해졌다. 난청아이가 노래를 즐기게 됐으면 그것만으로도 눈물 나도록 감사해할 일을 내가 너무 결과에 연연했나 싶었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 보니 노래 실력은 난청 아이들의 한계가 아니라 착용하고 있는 와우 기기 기술의 한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의 한계를 두지 말자고 매번 다짐해도 내 안의 생각의 한계는 여전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둘째 육아에서 초등 때 목표는 ‘6학년 때까지 친구들에게 자신의 와우나 장애를 스스럼없이 커밍아웃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인데, 그 목표에 비해 내 생각이 고정되어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깨 닫고 나니 나는 아이와 공연에서 부를 노래를 더 자주 함께 부르게 되었고 공연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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