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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북스 Mar 07. 2024

회장선거

못할 건 없지!

매해 새 학년 회장선거는 개학 첫째 주에 치뤄진다. 개학식 하고 딱 4일 만이다. 서로의 존재도 이름도 다 외우지 못했는데, 반 친구를 회장으로 만든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나도 싶다. 둘째는 반에서 아직 말을 섞어보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이름을 물어보면 성도 헷갈려했다. "걔가 김 씨였나? 이 씨였나?" 나는 그런 회장선거라도 이번에 둘째가 꼭 출마해 주길 바랐다. 첫째가 매년 회장선거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마음속으로 '둘째도 3학년이 되면 꼭 회장선거에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둘째 6살 때는 아이가 발음도 다 뭉개지고, 말할 수 있는 문장도 몇 개 없었다. 목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어서 감히 상상도 못 할 때였는데도 나는 그때부터 마음속 야욕이 있었다. 회장이 되면 우선 담임선생님께서 회장에게 심부름을 시키실 테니 더 신경 써서 들어야 하는 것부터가 좋았다. 주변에 관심도 별로 없고, 잘 듣지 못하는 둘째에게 안성맞춤한 자리였다. 마음도 없는 아이에게 올해 초부터 가스라이팅으로 꼭 회장을 해야 함을 설득하고, 드디어 오늘 반에서 회장선거가 있었다. 웃으면서 재미있는 제스처를 알려주었는데도 절대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회장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를 쥐어짜서 만든 연설문은 아주 진진했다 (지루했다). '이러면 좀 곤란한데?!'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어제 하루종일 오며 가며 연습을 하였고, 오늘 아침에는 연설문의 90프로는 외울 수 있게 되었다. 하루종일 결과가 너무 궁금했다. 하교할 때까지 기다리는 내내 더디기만 했다. '하필 오늘은 일주일 중 하루 6교시가 있는 날일까?' 2:35이 되니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 나 부회장 됐어." 회장직 따위는 관심 없는 척하더니, 부회장 된 것이 너무 기쁘다고 한껏 격양된 목소리였다. 회장은 서진이라는 친구가 되었는데, 그 친구의 연설이 기가 막히게 재미있어서 그 친구를 이길 수는 없었다고 했다. 역시 3학년은 재미가 있어야 회장이 될 수 있다. 6살 때 어렴풋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둘째가 용기 있게 해내주어 감사하다. 떨어져도 괜찮다고 울지 말라고 하고는 아침에 등교시켰는데, 이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떨어졌으면 반에서 아무도 몰래 눈물 한 방울 흘렸겠다. 김도윤아! 학급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담임선생님의 심부름도 빠릿빠릿하게 해내는 멋진 3학년 2반의 부회장이 되길 바란다.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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