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 방문교사라는 직업
독서지도사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올여름 장마는 끔찍이도 길었다.
낮에도 비의 알갱이는 몽글몽글 우리 주위에 피워 올랐다. 힘을 기른 검은 구름은 어김없이 양동이로 쏟아붓듯 악의에 찬 빗줄기를 내려놓았다.
우산을 쓰고 발아래 철벅이는 소리를 들으며 내 작은 차로 숨듯이 몸을 던져도 꼭 어깨 언저리와 머리 한쪽은 젖어 버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이런 악천우를 뚫고 학교에 다녀와 독서논술수업을 준비하고 있겠지?
이런 날은 내가 학원선생님이 아니라 방문수업교사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은 아이들이 직접 와서 수업을 하지만 방문교사는 아이집으로 가서 수업을 한다.
비를 맞으며 움직이는 쪽이 아이들이 아니라 나라는 게 훨씬 좋았다
회사는 아카데미학원이나 교습소나 공부방을 지원하고 있고, 교사들은 방문수업에서 교습소나 학원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독서지도사로 살아남으려면 방문수업에서 학원을 임대하여 회원을 키워 나가는 방법이 대세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독서논술회사의 방향을 감지하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학원을 얻을 만한 돈이 없다.
신입교사들은 입사하자마자 학원을 얻어 예쁘게 꾸미고 네이버나 카페에 홍보로 시작한다. 회사에서는 적극 밀어주고 신입교사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패기와 열정으로 시작하는 나이 어린 후배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열정을 쏟아붓고, 회사입장에서는 그런 교사야말로 회사에서 키워주고 끌어줘야 할 회사의 미래가 되는 거니까
둘째, 나는 교육을 사업으로 삼고 싶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 나의 모토일지 모른다.
교육사업이라고 버젓이 대놓고 말하는 세상이다. 누가 모르는가? 사교육현장은 고객이 두 분이라는 것을.
먼저는 피교육자 학생이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고객은 주머니에서 돈 나오는 학부모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사업으로 뛰어들기 싫어하는 내 마음이 끝까지 방문수업을 고집하게 한다.
학생을, 학부모님을 고객으로 인지하는 순간 나의 교육을 위한 열정이 왠지 빛바랜 열정이 되고 말 거란 두려움 때문이다.
셋째, 나는 수완이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뭔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없다. 특출 나게 말주변이 뛰어나지도 못하고, 현대 트렌드도 잘 읽을 줄 모른다.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진심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하고 돕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뿐이다. 나는 동시로 등단하고 경남아동문학회에 그 이름을 올려놓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학부모나 아이들에게 해보지도 못했다. 나는 포장을 그럴싸하게 하여 나의 상품을 만드는 것을 꺼린다. 까보면 다 거기서 거긴데 포장지로 승승장구하는 삶은 부끄럽다고 여긴다.
나는 어쩌면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한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독서지도사이다. 독서지도사로서 아이들의 삶이 책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을 원한다. 그러면서 책이 내 주위에 있고, 언제든지 독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나 자신을 대견해하고 있다.
방문수업교사 중 한 분이 교습소로 전환신청했다고 하니 우리 사무실에서는 나 혼자 방문교사로 남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이 더 이상 내 일이 되지 못할까 봐 문득 두려워진다. 그렇다 해도 나는 방문수업교사로서 오늘 재미나게 수업할 것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지라도, 얼음으로 빙판가도를 달릴지라도 그것은 나의 길이다.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