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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아래 Aug 09. 2023

선생님, 사인 부탁드립니다

이거  실화냐?

브런치 시작한 지  달이 지났다. 요즘은 책 읽는 양보다 브런치를 읽는 양이 더 많다. 브런치라는 망망대해에 수많은 크고 작은 배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여 항해하는 도중 서로 손을 흔들어 주며 격려하기도 하고 "어이~~ 뭐 좀 낚았나요?"하고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읽다 보니 좋은 점이 있다. 시대정신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찾을 수 있다는 듯이 TV앞에서 서성거리던 나는 이제는 유튜브나 브런치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있다.

고전이 될 만큼 시간을 견디고 내 두 손에 떨어진 문학작품을 즐겨 읽는 편이다. 그렇지 않은 대중소설이나 에세이는 뭔가 가볍고 쉽게 기억에서 잊혀서 시간을 들여 읽을 이유가 없는 듯했다.

그러다 브런치를 접하고 <죽고 싶은데 떡볶이는 먹고 싶다>를 필두로 화신작가의 책, <젊은 ADHD의 슬픔>등을 구매해 읽으면서 내 생각이 변했다.

디킨스의 작품에서 나오는 빅토리아시대의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처절한 삶의 몸부림과 마찬가지로 동시대사람들의 고뇌와 삶의 의지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음을.

동일한 감동과 깨달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나도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글을 써보고 싶다. 브런치작가로 선정되기만 하면 맹렬하게 글을 써보리라.

이런 당찬 결심도 하면서.


두어 달 동안 열일곱 편의 글을 썼으니 사나흘동안 한 편의 글을 썼다는 건데, 이건 '맹렬한' 수준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작전을 바꾼다.

'꾸준히'써서 책을 내야겠어.(미래로 책임을 전가시키는 전략)


그런데 무엇을 써야 하지?

그러면서 브런치 글을 또 읽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책을 낸다는 것은  전문가라는 것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소설을 쓰면 작가라 부르며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작가란 소설가쯤 돼야 부를 수 있는 호칭이라고 내 멋대로 규정하곤 했다.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정도의 가치가 부여된 호칭이었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호칭을 나에게도 해주는 게 아닌가.

머쓱하고 두렵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가지만

글을 쓰는 사람.

이제 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야겠다.


고려 왕들의 행적을 얼마나 기억하는가?

태조왕건, 정종, 광종, 혜종, 의종, 명종, 충렬왕. 공민왕, 우왕, 공양왕ᆢ

각자의 삶 속에 나라의 존망에 관여된 것만 몇 줄 남는 게 왕들의 삶이다.

그렇다면 나의 행적은 무엇을 기록하고 남겨야 하는가?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런 물음들이 '작가'라는 호칭 앞에서 튀어나온다.


이런 정체성의 고민이 생길 때면 카프카의 책을 펼쳐 본다.

몇 번을 봐도 뭔 말인지 어려운 책.

러시아 문호 카프카. 체코태생. 유대인이면서 독일어를 모국어로 쓴 사람.

낮에는 보험회사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쓰는 일에 방해가 될까 봐 결혼도 못한 사람.

도대체 정체성이 모호한 이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남이다.

'법 앞에서'라는 짧은 글은 무릎을 탁 치게 한다.


'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허락하지 않는다.

시골사람은 기다린다. 드디어 죽어 가는 마당에 한마디 한다. 여러 해동안 나 말고 아무도 들여보내 달라고 하지 않으니 어쩐 일이오?

문지기는 소리친다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가서 문을 닫겠소."


어렵게만 생각했던 법의 문이 자신만을 위한 문지기가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엔 법의 문이 높아서 시골사람들에게 커다란 관문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인생사도 이와  같다.

평생을 두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산이 각자에게 한 가지 정도는 있을 것이다.

두려워 쳐다보지만 말고 시도를 해보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말처럼.

"임자, 해보기는 했어?"


어제 수업하던 5학년 P가 내 동시집 <하늘 도화지에 쓴 편지>를 들이밀며 "선생님, 사인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어떤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우선 부끄럽고, 자랑스럽고, 놀랍고, 행복한 마음이 복합되어 나왔다.

'어떻게 알고 책을 구입했지?'

이런 생각도 들면서 '더 잘 만들고 더 고심했어야 했어'라는 후회와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린다.

두렵지만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딱 사인하는 3분간의 체험은 독서논술선생님이 아닌 시인으로서의 행위였다.



멋지다.

그런데 딸이 나한테 얘기해 준다.

"에이, 독서논술 선생님이라 하면 안 되지.

시인이라 했어야지.

작가가 될 준비가 아직 안 됐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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