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올여름에는 비가 무서워졌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지구재앙이 시작되었나 싶을 정도로 양동이로 퍼붓듯이 내리는 비를 보며 속절없이 비가 그치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올여름의 폭염 또한 사람을 지치게 했다. 대기권에 구멍이 나서 자외선, 적외선이 여과 없이 내 정수리에 쏟아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아무튼 올여름이 가장 시원했을 거라는 웃지 못할 얘기들이 말 그대로 진실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인명피해까지 낸 지독한 장맛비도 물러가고, 살인더위도 한 풀 꺾어졌다.
하지만 내 마음은 도무지 젊었을 때의 쾌청한 밝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친구가 예쁜 카페로 초대를 했다.
볼거리가 많은 카페라 살짝 얼굴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버섯, 차종류뿐 아니라 호미, 낫, 톱까지 파는 특이한 카페였다.
재밌게 구경을 한 후 친구는 감정카드를 섞더니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골라 보란다.
나를 잘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데 카드가 워낙 앙증맞고 예뻐서 재밌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쩌나.
내가 고른 카드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낭패감이 들었다.
슬프다 우울하다 괴롭다 낙심하다 힘들다 설렌다
답답하다 불안하다 등등
왜 이러지?
의식하며 약간의 희망카드를 잡기도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현재 힘든 감정들을 '글'로 대면해 보니 내가 힘들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친구라 해도 웬만해선 나에게 힘들다는 고백을 받아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친구가 그걸 알고 카드를 준비해 온 것이다.
쓸데없는 자존심.
에고이즘.
카드 덕분에 친구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마 내 인생을 통틀어 친구 앞에서 눈물을 보인건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괜찮은 척.
쿨한 척.
센 척.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치부를 좀 드러내야겠다. 글은 정직하다고 하니 내 감정도 정직하게 드러내는 연습이 될 것이다. 아무튼 친구에게 눈물을 보이고. 친구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경험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부끄럽지도 않았다.
나의 약함을
나의 덜된 것을
나의 치부를
인정하는 대화들.
그리 익숙하진 않지만 하나씩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해 가야겠다.
나는 지금 읽는 책을 바꾸었다.
소설에서 전공책으로.
맹렬히 공부하며 시름을 달래는 중이다.
감정은 감정이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