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절대 쉬운 게 아닌데 왜 다들 만만하게 보는지
일단 사전적 의미는 지적/비실물 재산이다. 사실 여기서 모든 설명이 끝난다 실체가 없는 자산이라는 건데, 이를 활용하는 가장 대표적이자 대중적인 것이 캐릭터 산업이고, 전반적으로는 게임, 음악, 애니메이션, 영화 등 소위 컨텐츠Contents를 다루는 산업군을 말한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소프트웨어나 플랫폼, 솔루션도 포함되지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분야는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지금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하고 오라클Oracle 무시함?
왜 이 이야기를 꺼냈냐 하면, 피상적으로 볼 때 모두가 부러워하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 가장 가까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문외한이 보면 그냥 캐릭터 하나 만들어 놨을 뿐인데 이걸로 인형도 만들고 게임도 만들고 영화도 나오고, 아무튼 뭐만 하면 돈을 벌어온다.
이게 돈이 된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 들어 발 담그려 시도하는 회사들이 부쩍 많아지긴 했다. 굽네치킨은 구울레옹 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운 시리즈 광고를 기획했고, 풀무원은 풀무원더랜드라는 뭘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One Source Multi Use(이하 OSMU)를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삼양식품도 꼬꼬면과 불닭볶음면에서 사용한 캐릭터들을 재활용해 호치라는 캐릭터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그간 사람들이 말로만 외치던 이야기의 중요성을 드디어 깨닫는 것인가 하는 고무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 기업계에서 스토리 텔링의 힘 어쩌고 하는 것이 거론된 것이 2000년대 초반이니, 거의 20년이나 흘러 가시적인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IP에 기반한 산업들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화수분이 아니며 단순히 만들면 모두에게 인기가 있어 스스로 돈을 벌어 오는 그런 신박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 이를 간과한다
대체 규모가 어떻길래 다들 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는지 그렇게 매력을 느끼는지 대략적으로 훑어보자. 자료는 위키 백과의 미디어 프랜차이즈 수입 순위 항목을 참고했다.
여기서는 제가 심혈을 기울여 덕질하는 인상깊게 보고 있는 IP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보도록 하겠다. 이 프랜차이즈들의 공통점은 모두 본래 시작 매체나 형태 외에도 실물 상품은 물론 미디어나 컨텐츠 등 타 분야로 확장된 OSMU가 활발하며, 시작점이 언제든 아직도 진짜 ‘아직도’ 다 계속 신작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최고봉은 단연 포켓 몬스터다. 사방 팔방 쏘다니며 동그란 공 같은 걸로 활보하는 괴물들을 불법 포획 잡아 수하로 삼는다는 내용의 이 게임은 1996년 2월 말에 출시되어 전 세계를 정ㅋ벅ㅋ 사로잡았으며, 닌텐도가 게임은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게임기는 소비세 포함 2만 5천엔 미만이어야 한다 라는 신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일등공신이 다. 2위인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Mickey Mouse&Friends와 무려 30%가 넘는 격차를 지닌 명실상부한 세계 1위로, 2019년 5월 기준 약 1,185억 달러의 추정수익을 올렸다. 그 중 본가인 게임은 모든 시리즈 누계로 프랜차이즈 총 추정수익의 23%인 271억 달러이며, 놀랍게도 라이선싱으로만 총 추정수익의 77%인 91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차트에서 독주하던 포켓 몬스터는 욕 먹을까봐 수줍게도 2019년 이후로 더 이상 총 수익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가히 IP산업의 희망 고문 같은 존재라 하겠다.
트렉Trek과 헷갈리면 전쟁이다 1977년 조지 루카스George Lucas라는 야망 큰 아저씨에 의해 탄생한 이 영화는 1,1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었고 77,500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혹시 몰라 말하지만, 시리즈가 아닌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New Hope 이야기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0억 달러 정도? 그 뒤로 당시 투자를 거부한 투자사들에 따르면 시대 착오적인 이 우주를 무대로 한 서부시대 활극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으며, 2012년 디즈니Disney이 세계 최강의 독립 영화사였던 루카스필름Lucasfilm을 인수한 뒤에도 현재까지 계속 시리즈를 내고 있다. 2022년 9월 기준, 스타 워즈 프랜차이즈의 총 추정수익은 694억 달러이며, 이 중 본업인 영화의 경우 프리퀄-본편-시퀄과 현재까지 개봉한 외전들을 더해 총 10편이 약 15%인 103억 달러, 그리고 피규어 등 실물 라이선스 제품으로 약 61%인 422억 달러의 수익을 봤다. 이 라이선스 제품에는 게임, 도서 등 기타 매체와 애니메이션, TV시리즈 등 영상화 작품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그리고 전 세계에 오타쿠를 양성했다
힘세고 강해 보이는 이름을 고민하다가 총Gun과 댐Dam을 합쳐 만들었다는 거짓말 같지만 진짜다 허접한 명명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2족 보행 로봇이 등장하는 전쟁 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라는, 그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품이다. 완구 회사가 스폰서로 붙은 어린이 대상 애니메이션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PTSD를 다루는 것이 적절한가는 차치하고, 물론 몹시 부적절하다 건담은 방영 직후의 부진했던 실적을 뒤로 한 채 빛의 속도로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목표 시청자 층이었던 애들보다 성인들이 더 좋아하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목표 고객층 설정 실책
건담 시리즈의 경우 주 스폰서이자 저작권자가 반다이 남코Bandai Namco라는 점에서 건프라ガンプラGUNPLA라는 엄청나게 특이한 파생 사업이 발생했는데, 이로 말미암아 얻은 수익은 건담 프랜차이즈 총 추정수익의 99%에 달하는 275억 달러 가량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반프레스토Banprosto가 그간 게임에 쏟아 부은 노력은…
글 작성 시점에서는 이미 완결된 지 30년에 가까워져 가는 오래된 틀딱 만화지만 오리지널의 캐릭터들이 아직 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희한한 작품이다. 1984년 닥터 슬럼프의 후속 개그 만화로 시작한 이 작품은 편집자들이 멱살을 잡고 이끌어 12년 간의 연재 끝에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鳥山 明를 은퇴 시켜버린 세계구급 성공작이다. 아, 혹시나 싶어 얘기하지만 작가가 은퇴한 이유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재산이 증식하기 때문이다. 진심 부럽다
애니메이션, 라디오 드라마, 일러스트, 게임, 음악, 카드 게임, 상품화 그리고 작가 공인 흑역사인 영화 까지 OSMU의 모든 것을 이루어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2022년 기준 총 추정 수익은 300억 달러이며, 그 중 본가인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7%인 20억 달러 가량이고, 프랜차이즈 상품 80억 달러, 게임 60억 달러, 애니메이션 23억 달러 등 상품 비중이 높긴 하나 몹시 다양한 매출 포트폴리오를 이루고 있다.
이 외에도 IP 산업의 눈부신 성공을 상징하는 것들은 많다. 애초에 팬시용 캐릭터 출신인 헬로 키티ハローキティHello Kitty(산리오サンリオSanrio, 1960), 안 좋은 의미에서 점점 조지 루카스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조앤 K. 롤링Joanne Kathleen Rowling의 마법사 세계Wizarding World a.k.a. 해리 포터Harry Potter 시리즈(1997), 본편을 완결내고 팬들의 살해 협박에 못이겨 10년 뒤 극장판으로 깨워 또 15년간 울궈 먹으며 컨텐츠는 죽지 않고 동면할 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해낸 중2병 전파 와드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 エヴァンゲリオンNeon Genesis Evangelion(1995), 현대의 판타지라 불리는 장르를 혼자서 정립해버리고 던전 앤 드래곤즈Dungeon&Dragons(1974)나 로도스도 전기ロードス島戦記Record of Lodoss War(1988)같은 것들이 탄생할 수 있게 밑밥을 깔아준 세계 최강의 언어 학자인 J.R.R. 톨킨Tolkein의 심심풀이 땅콩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gns(1954) 등등 말하자면 끝도 없다. 나열하다 보니 문득 이것들이 없었으면 제 삶이 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다른 걸 파내서 마찬가지의 길을 답습하지 않았을까
흔히들 IP의 성공 이유를 복잡한 관점에서 분석하려 하는데, 컨텐츠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를 아주 짧고 간단 명료하게 말해줄 수 있다. 재미있고, 파고 들어 확장할 거리가 많으며, 그 생명력을 지속하는 원동력이자 끊임 없이 소비해주는 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공했다고 보는 IP들도 시작이 있는데, 스타 워즈의 경우 영화(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New Hope), 포켓 몬스터는 게임(포켓 몬스터 레드&그린),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는 소설(시리즈의 기반은 호빗The Hobbit, 본편은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The Fellowships of the Ring/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에반게리온은 TV 애니메이션(신세기 에반게리온), 곰탱이 새끼 곰돌이 푸는 동화책(곰돌이 푸Winnie the Pooh), 드래곤 볼은 만화책(드래곤 볼, 드래곤 볼 Z) 등 각기 다양한 포맷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IP들은 모두 자신의 첫 작품이 각각의 업계에서 대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상적인 업적을 이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수준이 업계에서 길이길이 회자되고 분야별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성공이라는 게 문제지
이런 작품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사용자에게 제공할 내용의 배경이 되는 세계의 구성, 그 세계의 구성원이자 사용자에게 세계를 비춰주는 창인 인물, 그리고 그 세계에서 인물들이 겪는 일이자 기획자가 사용자에게 세계의 매력을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해 치밀하게 구성한 서사가 존재하고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인물이 부실하면 서사에 몰입하기 힘들고, 서사가 부실하면 세계가 전달되기 힘들며, 세계가 매력적이지 못하면 사용자가 참지 못하고 때려 치므로 인물과 서사가 지속될 수 없다.
세계의 전달 매체가 텍스트를 벗어나 미술, 음향, 영상, 조작감 등이 추가되며 수용자와 다차원적으로 상호작용 하게 되는 경우 작품 외적 요소의 완성도 또한 중요하다. 아무리 내용이 훌륭하고 시나리오가 흥미진진해도 점토판에 라틴어로 새겨서야 현대인에게 전혀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품성에 비해 미흡한 상호작용력으로 몰락한 작품은 없다시피 한데, 그 이유는 애초에 작품성이 뛰어난 경우에는 이런 부분도 당연히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조작감 탓 하기엔 작품 자체가 너무 절망적인 경우가 대부분
예컨대 포켓 몬스터가 정립한 게임 방식은 ‘포켓몬을 잡아라ポケモンゲットだぜGotta Catch'em All’라는 그 캐치 프레이즈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최초 작품으로부터 30년이 넘도록 시리즈가 지속되면서도 그 큰 방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재미있고 완성된 시스템이라는 반증이다.
컨텐츠도 실체만 없을 뿐 구매욕을 자극하고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수요 및 소비의 기본 원칙은 그대로 적용 되는지라 단순히 거짓말 마케팅을 살포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최근의 예시로 위쳐Witcher 시리즈로 절정의 주가를 올리던 CD프로젝트 레드Projekt RED 의 사이버펑크Cyberpunk 2077(2020)이 있는데 몇 년간 마케팅에 쏟아 부은 비용과 노력의 결과로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폭발 직전까지 부풀게 했으나 결과물이 영 신통찮아 비평이 바닥을 치고 환불이 쇄도했던 이력이 있다. 마약을 하는게 확실한 돌고래유괴단을 섭외한 여러 모로 엄청난 광고로 뭇 플레이어들을 설레게 했으나 막상 뚜껑을 따보니 제작비의 대부분이 광고비가 아니었나 싶었던 그랑 사가Gran Saga(엔픽셀Npixel, 2021)도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게임이 생소하다면 현재 진행형인 송파의 가든 파이브 미분양 사태(2010)나 심형래의 디 워(2007), 라스트 갓파더(2010) 같은 블록 버스터 영화들을 생각하면 되겠다. 과거에도 마케팅의 규모와 정성에 비해 결과물이 몹시 미흡한 결과로써 사실상 태동기에 있던 게임 업계 자체를 거의 말아 먹을 뻔 한 아타리 쇼크Atari Shock같은 사태가 있었을진대, 인터넷과 커뮤니티, SNS 등으로 말미암아 거의 실시간으로 현황과 후기를 확인해볼 수 있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사기 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겠다.
애시당초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흥미를 가지게 할 만한 요소를 내포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며, 그 만큼의 시간을 들여 주목 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소비자는 생각만큼 심한 바보가 아니다.
경험에 의해 시청자들은 그 세계에서 본편을 통해 직접 제시된 것 외에 또 다른 무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을 은연중에 기대한다. 제가 소천해도 지구는 여전히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확장 세계관Extended Universe으로, 기획자나 작가가 의도한 서사로 제공된 부분=본편 외에 세계의 다른 일면을 다룬다. 보통은 설정Note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를 기반으로 해당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른 서사와 인물들을 다룬다면 세계관이 되는 식이다.
이런 가능성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팬과 사업자 모두에게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데, 팬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서사와 인물들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주며 사업자에게는 프랜차이즈의 생명력을 잘 관리하는 한 마르지 않는 돈주머니를 채워준다. 훌륭한 기획자라면 하나의 성공한 세계에서 뽑아낼 수 있는 수익 사업의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라고 봐야 한다. 우선 이미 전개된 본편을 중심으로 직접 활용하는 완구부터 라이센싱을 통한 콜라보레이션 상품 등의 물리적 요소부터 시작해서 본편의 스핀 오프, 영상이나 소설과 같은 매체의 다양화, 후속작 등의 소프트웨어적인 부분까지, 의지와 자금력만 있다면 무궁무진한 활용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세계와 그 세계를 최초로 제시하는 매체인 본편이 그 자체로서 완성도 높고 재미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블리자드Blizzard Entertainment의 워크래프트Warcraft 프랜차이즈를 한 번 보자. 블리자드 부흥의 일등공신 크리스 멧젠Christopher Vincent Metzen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하면서 세계관을 대폭 강화한 이 프랜차이즈는 태생인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eal-Time Strategic Simulation, RTS에서 벗어나 플레이어의 체험과 참여를 강화하기 위해 플레이어 자신이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직접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2004)라는 대규모 인원 온라인 역할극Massive-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MMORPG으로 그 장르를 다양화했으며, 동시에 상호교환 카드 게임Trading Card Game, TCG인 하스 스톤Hearthstone(2014)으로 세계에서 한 발짝 물러선 관념적 시각에서의 체험을 제공하고, 공인 소설 시리즈들로 세계의 전승 지식Lore을 접할 수 있도록 경험 방식을 다각화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본가가 RTS고, 그 세계를 기반으로 한 MMORPG와 TCG, 그리고 소설 까지 다양한 채널로 돈 들어올 프랜차이즈를 확장했다는 말이다. 캐릭터 산업은 블리자드의 주류가 아니지만 피규어는 꽤나 잘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잊고 있었는데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The Beginning(2016)도 나왔다가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리고 저는 그걸 극장 가서 피눈물을 흘리며 봤다
이처럼 세계관은 프랜차이즈의 생명과 수익을 결정 짓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 설정을 실체화 하는데 실패한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닌데, 세계관의 구성은 좋았으나 이를 풀어내는 역자의 기량 문제인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고 대부분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졸작이거나 절망적인 전달력으로 점철된 작가나 기획자의 자아도취에 그친다. 이런 경우는 설정충 놀음이라 하여 맹렬한 조롱의 대상이 되니 참고하자. 커그나 타입문넷 같은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또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로, 잘못된 방향으로의 확장은 프랜차이즈의 생명 자체를 끊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있다. 대개 투자자 혹은 의사 결정권자의 무리한 요구가 원인이 되는데, 이런 행보를 가장 잘 보여준 예시가 반지 닦이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Green Lantern(2011)을 위시한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의 원작 영화화 작품들이다. 극장가에서의 마블의 독주를 몹시 배 아파하던 DC 코믹스는 자신들이 지닌 동등한 재원인 캐릭터들을 활용하여 시네마틱 유니버스Cinematic Universe를 구축하고자 했으며, 계획대로라면 그린 랜턴은 아이언 맨Iron Man(2008)과 같이 그 초석이 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됐어야 했으나…. 대신 라이언 레이놀즈Ryan Reynolds의 트라우마가 됐다 나름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워너 브라더스이기에 시나리오에 감 놔라 배 놔라를 시전 했을 테지만, 존재하는 원작과 덕후인 감독을 존중하지 않은 댓가로 영화를 원작 모독 수준으로 말아 먹었으며, DC 확장 유니버스의 전개는 5년 뒤인 2013년에 들어서야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같은 기간동안 마블은 어벤져스Marvel’s The Avengers(2012) 까지 성공적으로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 1을 완결짓고 페이즈 2의 떡밥 살포까지 끝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게 얼마나 끔찍한 실책인지 대충이나마 느낌이 올 것이다. 그러고보니 좀 더 옛날엔 팀 버튼Tim Burton이 하드 캐리 일으켜 세운 배트맨 모던 에이지 시리즈(1989-1997)에 배트 젖꼭지와 배트 신용카드로 비슷한 짓을 하여 잘 나가던 시리즈를 말아먹은 전적이 있다. 배트맨 실사 영화 프랜차이즈 역시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이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2005)를 위시한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Dark Knight Trilogy로 예토전생 다시 일으켜 세우기 전까지는 그 처참한 실패에 아무도 영상화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 교훈을 외면하는 것인가, 워너….
성공한 IP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확고하고 두터운 팬 층인데, 이런 덕후 팬의 형성은 컨텐츠의 매력에서 기인한다. 보통은 기획자가 제공한 세계, 서사, 인물, 그리고 상호작용 인터페이스에 매료된 사람들이 팬이 되는 것이 정석이지만, 흔히 말하는 콘크리트 지지층 찐팬은 그 정도에서는 어림도 없다 형성되지 않는다. 이 탐욕스러운 무리들은 제공된 세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 편린=컨텐츠 본편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세계를 탐닉하기에 양질의 떡밥 후속작이나 스핀 오프 작품을 공급해준다면 그 수명이 연장되고 규모도 확장된다. 그리고 결국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팬의 형성을 논하는 데 있어 앞서 언급한 확장 세계관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기존의 세계관을 넓혀 더 많은 것을 보여줌으로써 나이가 들어가며 자금 동원력이 강화된 기존 팬들을 더 확고히 하고 신규 팬을 기존 세계로 유입 시키는데 중점을 두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세계관의 개념을 차용하고 재해석하여 별개의 세계로 분화Fork시킴으로써 연계성은 희박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스타 워즈 프랜차이즈는 전자를 대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프랜차이즈 라이센스의 소유자인 루카스필름을 디즈니가 인수하며 폭발적인 스핀오프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일단 조지 루카스가 영상화 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팬들을 절망 시켰던 시퀄 3부작은 물론, 로그 원Rogue One(2016), 솔로Solo(2018)와 같은 스핀오프 영화에 더해 디즈니 플러스Disney+에서 만달로리안The Mandalorian(2019), 북 오브 보바 펫The Book of Boba Fett(2021), 오비완 케노비Obi-Wan Kenobi(2022), 안도르Andor(2022) 등 엄청난 퀄리티를 가진 TV 시리즈를 선보이며 올드 팬들의 지갑을 밀어서 잠금 해제 복장을 뒤집어 놓으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스핀오프가 본편의 세계와 같은 시간대에서 벌어진 다른 서사와 인물을 다루고 있으며, 결국 새로 유입된 팬들을 본편(오리지널 영화 3부작-새로운 희망, 제국의 역습The Empire Strikes Back, 제다이의 귀환Return of the Jedi)으로 유도한다. 스타 워즈 세계에서 다뤄지는 모든 이야기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건담 프랜차이즈는 세계와 소재의 확장으로 새로운 세대의 팬을 유입 시킬 수 있다는 후자의 개념을 유의미한 규모와 횟수로 실증했다. 1979년 출시된 본편 TV 애니메이션에서 구성한 시대의 아픔에 휘말린 소년의 성장통과 비극이라는 플롯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여 G(1994), W(1995), X(1996), ∀(1999), SEED(2002), 00(2007), AGE(2011), G의 레콘기스타(2014), 철혈의 오펀스(2015), 수성의 마녀(2022)와 같이 플롯은 비슷하되 서사와 캐릭터를 새로운 세계에서 전개한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이들은 건담이라는 일종의 개념 하에 존재하는 독립된 세계들이며, 각 작품의 방영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그 코어 팬의 세대와 연령층이 모두 다르다. 그 부작용으로 각 작품 별 팬들이 서로 박 터지게 싸우는 신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본편이 리얼 로봇Real Robot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획기적인 작품이었던 만큼 본래의 세계관에 대한 신격화 관리도 소홀한 것은 아니어서 Z(1985), ZZ(1986), 역습의 샤아(1988), 제08MS소대(1996), 0080(1989), 0083(1991), V(1993), UC(2007), 섬광의 하사웨이(2021)와 같이 본편과 동일 세계의 다른 시간선을 다루는 작품들도 충실히 전개하며 올드 팬들을 만족시키고 새로운 기술과 세련된 작화로 새로운 세대를 코어 팬으로 합류 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퍼스트 건담부터 시작한 사람들이 부심을 부리는 부작용도 생겼다
이러한 수요층은 IP산업을 지속할 수 있는 핵심 원동력이며 소비자이고 부흥의 원천이자 네메시스이기도 하다. 만들고자 해도 억지로 만들 수 없으며 충실한 세계와 내용에 의해 비로소 탄생하는 이 팬들은, 유지하려 해도 쉬이 사라져버리거나 이젠 없겠거니 해도 어디선가 독버섯처럼 자라나서 유지되고 있기도 하고, 세계가 디즈니의 블랙 워싱처럼 진정 용납할 수 없는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가장 무서운 대적자가 되기도 한다. 팬의 조련 응대를 위해서는 컨텐츠를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물론 세계가 작가나 기획자에 의해 이미 완결된 닫힌 세계라 할지라도 그 자체의 매력으로써 얼마든지 팬을 확보할 수 있다. 명작은 영원하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며, 우리는 반지의 제왕과 같이 작가가 사망한 지 오래된 작품을 통해 이를 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세계에 양적/질적 확장의 여지가 있다면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팬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세계의 확장성과 팬의 확보는 어느 정도 불가분의 관계다.
위에서 다룬 예시와 요건은 일단 이 분야에서는 굉장히 정석에 해당하는 접근으로, 일반적인 각오와 규모로는 쉬이 행하기 힘든 규모와 방법들이다. 큰 규모의 업체들 조차 회사 그 자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프랜차이즈나 프로젝트의 사활을 걸어야 할 정도로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며, 이는 블록버스터나 미디어 믹스의 전개 양상과 같다. 아, 실패하면 회사의 신뢰성과 브랜드 가치를 말아 먹긴 한다. 파국이다 크크킄
물론 현재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거나 성공했다고 모두가 인식할 만한 것들은 이러한 대자본 투입의 결과가 맞다. 하지만 가끔 단발성으로 화제가 되는 것들이 없지는 않은데, 그런 경우엔 밈Meme이라는 생물학 용어에서 따온 단어로 지칭한다. 쓸데 없이 학술적이다
밈의 발생경로는 매우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그 중 대표적인 두 가지만 대충 살펴보도록 하자.
아마도 밈의 대부분이 포함되는 유형일 것이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명언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로, 본작의 출시 당시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는데 후일 정서적/맥락적/상황적 요소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거나 비로소 시대가 그 컨텐츠를 포용할 수 있는 배포를 갖추게 됐을 때 빛을 보는 경우다.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자다가 봉창 두들겨 맞은 느낌으로 과거의 망령 컨텐츠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형태로 되살아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예로 애니메이션 본편은 고유성의 부족으로 굉장히 미진한 성적을 보였으나 재능을 낭비한 천재들 덕에 음악과 움짤로 제로투 댄스 챌린지 라는 이름 하에 2020년부터 2년에 걸쳐 전 세계의 SNS를 휩쓸어버린 달링 인 더 프랑키스ダーリン・イン・ザ・フランキスDarling in the Franxx(2018), 군침싹 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재발견한 계기이자 미칠 듯한 기출 변형 활용성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뽀롱뽀롱 뽀로로(2003)의 루피, 영화에서는 좋은 연기였다 등의 호평 위주였지만 김윤석이 연기한 아귀의 포스에 밀려 페이크 최종보스 취급 당했으나 이후 기업인으로서의 면모를 분석한 뻘글을 등에 업고 갑자기 발굴되어 각종 커뮤니티를 휩쓸어 배우 본인도 어리둥절하게 만든 곽철용(김응수扮, 타짜, 2007) 등이 있다.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도를 가진 요소가 대중의 요구 및 저작권자의 의도로 확장된 경우다. 일단 모태가 되는 컨텐츠에 대한 대중의 인지와 선호가 높아야 하기에 천운이 따라야 하는 사전 준비의 난이도는 최상이나, 이미 모두에게 친숙한 것이므로 전파 속도와 인지도, 소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국내에서 여기에 해당하는 가장 유명한 예시는 카카오 프렌즈Kakao Friends(호조Hozo, 2012)일 것이다. 자국민의 90% 이상이 사용하는 독과점 메신저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카카오의 마스코트 캐릭터들을 이모티콘화 한 것으로… 아, 한국 사람들에게 설명하니 몹시 구차하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알고 있는 캐릭터들인데, 여기에 각별함이 더해진 것은 말 그대로 감정Emotion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아이콘Icon이라 사용자 본인의 감정을 절절히 담아 매일 사용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시험삼아 내놓은 캐릭터 봉제 인형이 엉겁결에 순삭 매진된 것을 시작으로 캐릭터 비즈니스 분야에 발을 들였다고 하는데 카카오프렌즈 주식회사 시절인 2015-2016년 경 캐릭터 라이센스와 상품 판매로 카카오 전체 매출의 8%에 달하는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냈다고 하니 이건 뭐…. 한국 캐릭터 산업의 꿈과 희망이라 불릴만 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태생으로 미루어 보아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기적이다 물론 실책이 없진 않았는데, 빈폴Bean Pole(삼성물산)과 출시한 가죽 토트백이나 지갑, 캘러웨이Callaway나 까스텔바작Castel Bajac과 출시한 골프백 등은 시장의 빈축을 사며 처참하게 실패했다. 아무래도 소비자들이 캐릭터의 귀여움을 고가품 반열까지 확대 적용하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캐릭터 팬시상품에 지갑을 열 수 있는 마지노선이 10만원임을 확인
다시금 말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기에 대표적인 예시라고 까진 할 수 없다. 하지만 각 분야에서 정말 가끔 일어나는 경우라 마냥 간과할 수도 없다.
이 외에도 애초에 밈화化를 노리고 만들었는데도 소정의 성공을 거둔 충주씨(충주시, 2019) 같은 엄청난 희귀 케이스가 존재하기도 한다. 보통 너무 대놓고 밈으로 만들고자 부추기는 경향이 보이면 수용자들이 불쾌한 나머지 아예 묻어버리곤 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뭐 충주씨는 애초에 풍자를 기반으로 한 기획 컨텐츠였으니….
아마 이걸 가장 궁금해 할 것 같은데, 결론만 빠르게 말하자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현상을 수익 모델로 전환하기 매우 어렵다. 뒤로 가기 누르지 마라
보통 예전에 이룩해 놓은 무언가가 갑자기 화제가 되어 온갖 군데서 보이면 기분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원작자나 기획자에게 있어 자신이 창조한 것의 일부가 밈이 된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9시 뉴스 사건 사고 세션에 주요 뉴스로서 보도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밈의 생성 목적은 대부분 웃음이기에 원본 컨텐츠가 고상함과 고급스러움을 추구할 수록 반향적 타격감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본과 패러디 결과물(밈)의 괴리가 심할 경우 O적O로 발전하여 스스로를 대적하게 됨으로써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기도 한다. 요컨대 원작자가 기획하지 않는 한 밈의 생성 맥락과 방향에 영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리스크가 있다. 대표적으로 품질 이상에 대한 늑장 대응과 자국 소비자 홀대의 인과응보로 돌아온 현대 자동차의 쏘나타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 광고(2013)가 있다. 물이 새는 싼타페(현대자동차) 사진에 자신들이 제창했던 캐치 프레이즈가 박혀 있는 걸 보고 홍보팀이 얼마나 놀랬을 지 상상해보자. 이처럼 밈화 된 컨텐츠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기에 활용하기 어렵다.
상품화 하기에는 정황이 부적절한 경우도 한몫 한다. 제로투 댄스 챌린지의 유행의 경우 우연의 일치가 더해진 결과물인데, 정작 밈의 모체 중 하나인 달링 인 더 프랑키스의 경우 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동작의 모태가 된 일본 에니(메이터) 견본시장 日本アニメ(ーター)見本市Japan Anima(tor)’s Exhibition(2014)의 에피소드인 Me!Me!Me!는 상품화와 조회수 1위라는 쾌거를 달성했고 브금 BGM인 Phào의 Hai Phút Hơn과 리믹스 한 DJ KAIZ도 반사 이익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중으로 사료 되지만, 정작 몸으로 구른 제로투002ゼロツーZero Two가 등장한 본작 애니메이션은 주의 환기 정도에 그쳤을 뿐이다. 저 모든 것의 버무려짐이 인기가 있었던 것이지 캐릭터 자체가 폭발적으로 부상한 것은 아니기 때문. 심지어 레딧에 움짤을 4K로 컨버전 해서 올린 양덕도 능력을 인정 받았는데 캐릭터 단독으로 상품을 전개한다 해도 데포르메 되어 팬시에 적합한 것도 아닌 등신대 캐릭터라 뭘 어떻게 활용하면 성공할지 의문인, 정말 애매한 상황인 것이다.
만약 다행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밈화가 진행됐고 모든 정황이 맞아 떨어져 수익 사업을 구상하려 한다 해도 예측할 수 없는 유행의 지속 기간이 장애가 될 수 있다. 특히나 생명 주기가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불규칙하고 빠르기도 한 온라인의, 게다가 일반적인 현상보다 훨씬 민감하고 변화가 빠른 유행성 요소 인지라 자칫하면 철 지난 상품 들고 와서 파는 모양이 될 위험이 있다.
분명 원본은 내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모로 이 기회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난항에도 불구하고 수익화를 이룩해낸 위대한 자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대인배의 속성을 갖췄으며, 유행의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속한 움직임을 보여주거나 원작자의 입장에서 되려 밈화를 부추기는 등 물 들어올 때 거의 핵융합 추진 수준의 퍼포먼스를 수행했다. 여기서는 밈화 된 것에 대한 원작자 자신의 의지로 상품화를 이룩한 것에 대해 알아보자.
글 작성 시점에서는 조금 시들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잔망루피를 보자. 뽀롱뽀롱 뽀로로 자체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IP이므로 컨텐츠의 이미지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자칫하면 보호자들이 보기에 자녀들에게 유해한 매체로 비칠 수 있기에 저작권자는 그 아이덴티티의 변형에 굉장히 경직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디즈니가 자신들의 캐릭터가 2차 창작에 활용되는 것을 매우 삼엄하게 제한하는 이유다. 물론 디즈니의 경우에는 성인물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긴 하다만.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저작권사인 아이코닉스는 루피가 고통 받는 모습을 되려 즐기며 더 즐겨보시라는 대인배의 입장을 취한 뒤 재빠르게 세계관을 분할하여 주요 생산/소비자층이 분포한 10-30대를 대상으로 잔망루피(2020)를 상품화했다. 시작은 밈을 직접 활용하고 빠른 상품화가 가능한 카카오톡 이모티콘이었으며, 그 이후 실물 상품을 오프라인 매장 등으로 전개하는 아주 훌륭한 행보를 보여줬다.
가수 비(정지훈)도 어느 정도 자신을 내려놓은 상황에서 비슷한 행보를 보여줬다. 2020년대에 비가 재기에 성공하게 된 계기로 단연 깡(2017)을 빼놓을 수 없다. 출시 시점에서는 자신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의 감성에 머물러 있는 시대착오적 곡이라는 평이 대다수였고, 그 이후 유튜브의 공식 업로드 게시물 댓글에서 조롱 대잔치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조롱이 그러하듯 사람들이 점점 심취하며 미쳐 돌아가기 시작하여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패러디 영상 등을 생산해내며 밈화를 이뤄낸다. 여기서 주목할 만 한건 비의 대응이었는데, 자전차왕 엄복동(2019) 때 보여줬던 나약한 모습 진지한 고뇌의 SNS 활동 대신 1일 n깡이나 식후깡, 화려한 조명은 참을 수 없다는 등의 밈에서 유래한 자멸성 개그를 공중파에서 시전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 대응은 여러모로 밈을 활용한 모범답안이라 할 만 하다. 공개적인 방송에서 밈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학성 개그로 활용함으로써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알림과 동시에 팬들의 의견에 대한 인정과 수용의 자세를 보여주며 호응까지 했으니, 팬의 관심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연예인으로서 취할 수 있었던 최상급 대응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결과, 광고, 섭외, 패러디 양산, 행사, 곡 재조명 등의 빛나는 미래를 맞이했다.
성공한 것의 이면에는 엄청난 노력이 존재하고, 하나의 성공작 뒤에 수많은 실패한 아류작들이 따르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아픈 현실이다. 지금까지 성공한 사례들을 알아봤으니 이번에는 실패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회적 현상, 시대적 유행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분석적 접근은 싫은/듣지 않으며 뭔가 보여줘야 겠다는 의지만 충만한 의사 결정권자, 배경과 맥락적 지식이 없는/알지만 의사결정권자를 설득할 자신이 없는 실무자, 부족한/이미 할당 되서 소진 해야만 하는 예산 등이 이루어내는 환장의 대서사시다. 이 경우 이미 시작 단계에서부터 모든 곳에서 몰락의 신호가 쏟아진다.
보통 투자의 경우 투자 했을 경우의 기대 수익과 결과물의 활용 방안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자원이 투입 되기에 냉혹한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그냥 있으면/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상적인 의도가 자리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 아무리 보수적인 지출 스탠스를 취하는 곳일지라도, 본업이 컨텐츠 산업이 아닌 경우 이상하게 이 쪽에 쓰는 비용을 너무 쉽고 허술하게 결정한다.
정부의 지방자치단체별 마스코트 사업을 보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본격적으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6년을 전후로 한바탕 붐이 일었음은 짐작 가능하다. 전국에는 이런 지자체의 캐릭터 혹은 마스코트가 2004년 기준 196개가 존재하며, 아마 글을 쓰는 현재 시점에서는 248개 지자체 모두 캐릭터 생성을 완료 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여러분의 세금이 이렇게 공중분해 됐다
대부분의 캐릭터는 상징적인 모티브를 데포르메로써 수용자에게 친근하게 느끼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며, 확실한 활용 로드맵이 구비되어 있다. 예컨대 헬로 키티는 스누피Snoopy(피너츠Peanuts, 찰스 M. 슐츠Charles Monroe Schulz, 1950)의 대항마로 기획된 캐릭터고 생성 초반부터 본연의 목적인 팬시용품 전개의 소재로써 열심히 굴려졌으며, 꿈돌이(김현, 1992)나 호돌이(김현, 1987)는 대회 그 자체의 상징물로서 마스코트 본연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호돌이의 경우엔 올림픽 헌장에 따라 저작권이 IOC로 귀속됐지만 꿈돌이의 경우는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애니메이션(MBC, 1992)까지 만들어질 정도였고 2020년 재발굴 되며 캐릭터 상품들이 나오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활용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정부기관 및 공기업, 지방자치단체의 캐릭터들은 서울시의 해치(2008)나 대한민국 경찰청의 포돌이(1999)를 제외하면 이런 활용 로드맵이 거의 전무하다고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지리멸렬한 활용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캐릭터들은 그 디자인 특성상 진지함이 요구되는 공식 석상이나 공문에서의 활용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어떤 캠페인, 그 중에서도 비교적 가벼운 행사 등에만 사용 가능하다는 뜻인데 현실은… 본인이 사는 지역의 캐릭터가 무엇인지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2007년까지 서울의 마스코트가 왕범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심지어 얘는 호돌이와 호순이의 자식이라는 설정까지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지자체 브랜드화 붐이 일어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각자의 로고와 행정 슬로건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행정구역을 상징하는 요소로써 로고는 캐릭터보다 훨씬 활용도가 좋고, 실제로 몇몇 지역 로고는 굉장히 눈에 익을 것이다. 보신각의 종 모양을 한 종로구의 로고라던가, 놀러 가면 많이 보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로고라던가. 로고는 공식 석상이나 공문에도 기재 가능하므로 캐릭터의 완벽한 상위호환이다.
이런 지자체 마스코트가 영문도 없이 난립했을 리는 없고 분명 계기가 있었을 것인데, 가장 의심가는 원인은 일본의 유루캬라ゆるキャラ다. 일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아서, 1970-1980년대의 고도성장기와 버블경제 시기에 지자체 및 기업 등 전국적으로 수많은 캐릭터가 난립했다고 한다. 한국과의 차이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와 활용 노하우가 차원이 다른 곳이며 이를 지칭하는 단어도 별개로 존재할 정도로 활성화된 곳이라는 점. 특수한 몇몇 경우로 봐야겠지만 특정 지자체의 캐릭터가 전국적 혹은 세게적으로 인기를 끄는 경우도 발생하며, 대표적으로 2019년 기준 연 매출이 1조 4천억원에 달하는 구마모토현의 쿠마몬くまモン(미즈노 마나부水野 學, 2010)이나 사이타마현 시키시 문화 스포츠 진흥 공사아니 잠깐 스포츠라고?의 카파루カパル(2017) 등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시 홍보뿐만 아니라 지역 특산물이나 공산품의 상표, 캐릭터 상품 등으로 절찬리에 활용중이다.
한국도 이대로는 세금 낭비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2018년부터 유루캬라와 비슷한 취지의 행사인 우리동네 캐릭터를 전개하기 시작했으나…. 뭐,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2022년인 올해는 5회차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한다. 결과는 직접 판단하도록 하자.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전시 행정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장르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2019년을 뜨겁게 달궜던 대구시 예산 3.5억원 증발 사건 로고 변경 관련 논란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이 외에도 등장 했으되 창조자의 무관심 속에 스러져간 수많은 캐릭터들이 있다. IP를 전개하고 싶다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과 실행이 따라야 한다.
앞서 언급한 지자체 마스코트 캐릭터 산업도 이 부분에 훌륭히 부합하지만 이는 공공사업이므로 지자체 이익 대신 세금을 까먹은 관계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인지도 면에서는 이걸 실패라고 봐야할지 좀 애매한 감이 있지만 영업이익의 측면에서 보면 실패가 맞기에 조금 망설여지지만 라인 프렌즈Line Friends(네이버 및 라인, 2015)의 사례를 소개한다.
카카오톡이 이모티콘 기능으로 한참 재미 보고 있을 때 메신저를 제외한 한국 인터넷 시장에서 군림하던 NHN은 이를 보며 배가 아팠고, 여타 전 세계의 메신저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자체 탑재 이모티콘 기능을 적용한다. 그리고 카카오의 훌륭한 선례를 따라 캐릭터 산업을 전개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NHN은 이상하게 캐릭터나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죽을 쑤는 경향이 강했다. 희대의 마이너스의 손 한게임도 그렇고, 일전에 네이버 카페 등 자신이 운영하던 서비스들에서 밀던 그놈의 아재 스티커도 그렇고. 어쨌든, 라인 프렌즈 라는 이름으로 나름의 서사를 가진 캐릭터들을 대거 런칭한다. 그리고 메신저 적용은 물론 캐릭터 팬시 팝업 스토어와 플래그십 스토어도 열고, 캐릭터들을 활용한 게임도 만들고, 자기들이 운영중인 서비스들에 여기저기 밀어 넣고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붇는데…
다만 안타까운 사실은 카카오 프렌즈에 비해 인기가 상당히 저조했다는 것인데, 뭐 취향은 존중함이 옳지만 매출 규모나 영업이익, 콜리보레이션의 제의 및 성사 빈도를 보면 확실히 부진한 성적으로 보이긴 한다. 일종의 치트키인 방탄소년단의 캐릭터들을 독점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이런 걸 보면 애석할 따름이다. 하지만 본인들도 뭔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하는 것 아닐까….
세계를 기반으로 성공적인 IP 산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세계 자체의 완성도와 수용 과정에서의 재미, 이에 대한 대중의 호응으로 획득한 지속 가능한 팬, 지속적인 컨텐츠 공급으로 생명력 지속을 가능케 할 확장성의 세 가지를 갖추거나, 이도 아니라면 대중에게 회자될 수 있는 어떤 잠재성이나 화제성이라도 지녀야 한다.
여기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현재 세계관이나 캐릭터 등을 내세워 대중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브랜드들이 자신들이 취하는 방법론에 대해 얼마만큼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정말 진지하게 IP산업을 전개하고자 한다면 주체로서의 역량과 가용 자원, 그리고 산업군에 대한 이해도를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한다. 실물 상품의 경우에는 가격을 파괴하면 동업자들의 원망은 들을지언정 가성비라는 명목으로 어떻게든 재고 소진은 가능한 반면, 컨텐츠의 경우 고유성을 지니기에 대체재라는 개념을 적용시키기 힘들다. 복수극 장르의 영화가 보고 싶은데 존 윅John Wick(2014)이 없으니 클레멘타인(2004)을 선택하진 않을 것 아닌가….
단순 재미나 소비자와의 더 깊은 라포Rapport형성 정도의 목적이라면, 글쎄, 그렇게까지 캐릭터나 IT와 연계된 어떤 컨텐츠를 구성하는 데 힘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예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2003)에서 그랬던 것 처럼 럭셔리 패션 하우스들이 가상현실에 상품을 런칭하는 것 처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면 모를까, 목적이 브랜드 이미지 쇄신과 인지도 상승에 있다면 일상 소비재의 입장에서 캐릭터 등의 IP 산업을 전개한다는 것은 크게 메리트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술했듯 제대로 된 세계나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자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히려 그 자금을 프로모션이나 또 다른 상품 개발로 돌리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소위 ‘대세’라고 불리는 것들에 어떻게든 숟가락을 놓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공포에 못이겨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하여 좀 안타깝다.
굽네 치킨이 전개하는 구울레옹과 같이 서사를 입힌 광고는 새로운 게 아니다. 우리는 롯데리아의 크랩버거(2002)나 버거킹의 통새우와퍼(2016)의 광고를 기억한다. 디지털 컨텐츠 사업에 투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야, 이 정도의 노력으로 충분히 브랜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버거킹은 그간 광고 모델들 라인업을 보면 느와르 세계관 쯤 하나 런칭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니 하지 말라며
혹은 2010년대 초반 트위터에서 심후한 덕력과 절륜한 드립력으로 일대 풍파를 이뤄냈던 한국 민속촌, 대검찰청, 듀렉스, 홈플러스, 고양시, CJ제일제당, 동원참치 등의 공식 계정이 보여줬던 행보를 모범 삼을 수도 있겠다. 브랜드에 인격을 부여하고 페르소나를 입혀 개별 차원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실증해낸 사례들로서, 공식 SNS 계정 담당자의 소양과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반증 했지만 그만큼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더불어 현재 풀무원 등의 컨텐츠 마케팅을 시도하는 업체들이 추구했던 세계의 구축, 대중의 참여, 팬의 형성 등 모든 것을 이룩해낸 모범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물론 제 걱정이 기우일 수도 있다. 언론이나 주체의 설레발과 자의적 의미 확대 즉 사기와 부풀리기 도 어느 정도 감안할 필요가 있긴 한데, 실질적으로 특정 개념을 지칭하는 명칭을 붙일 수 없는 상황에도 에쁘게 포장하기 위해 과장하여 표현하는 것은 경영, 정치, 학계를 비롯한 인간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행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시회 참가 업체 도면을 그려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걸 4차 산업혁명적 VR 메타버스 디지털 IP컨텐츠라 이름 붙인다던가…. 현재 기업들이 캐릭터, 컨텐츠, 세계관 마케팅을 한다고 하는 건 이런 맥락에서 부풀려진 것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긴 할 것이다. 그렇다기엔 너무 뚜렷한 것 같아서 문제지만
IP는 쉽게 접근할 만한 사업군이 아니다. 단지 주 상품에 대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전개 중이라면 단지 그 정도에 그칠 수 있도록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며, 보다 진중히 디지털 컨텐츠로의 사업 확장을 고려하고 있다면 그 만큼의 역량과 지식을 지닌 인원들을 섭외하여 보다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부디 기업들이 현명한 선택으로 담당자들을 고문하지 않았으면 의도에 적합한 자세를 취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