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랜덤 Feb 23. 2023

브랜드가 주관이 있어야지

부화뇌동 하지 말고 자기 갈 길을 가자

변화의 조수를 거스르면 도태되나


세상이 변했다. 소비자가 능동적이고 직접적으로 브랜드나 회사에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된 지 좀 됐다. 이제 더 이상 담당자가 받아 보기나 했을까 싶은 항의 편지를 보낼 필요도, 앵무새 같은 고객 상담원의 벽을 넘었지만 수십개의 내선번호를 전전하다 연결이 끊겨 전화기를 잡고 울부짖을 필요도 없다. 물론 자신이 급하면 여전히 내선번호 회전목마를 타거나 알림 없는 이메일 함을 보게 되긴 한다 막강한 인터넷에 힘입어 어디서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 의견이 충분히 설득력 있다면 SNS나 커뮤니티에서 회자될 수도 있고, 굳건한 의지가 있다면 조직적 공론화로 브랜드나 회사에 주장을 관철시켜 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의견을 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장에 유/무형력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픈마켓이나 브랜드 온라인 상점의 후기를 작성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상품과 판매자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수도 있고, 판매자의 대응이나 가격 정책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판매자를 찾아낼 수도 있다. 주변의 리테일 매장에 없는 물건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은 당연 하거니와, 국내에 없는 물건은 존재하기만 한다면 전 세계 어디서든 직접 공수할 수도 있다. 공동구매를 조직하여 공급처와 적정선의 협의점을 찾는 것은 이미 소셜 커머스나 쿠폰이라는 이름으로 e커머스 초기부터 있었던 일이다.


사회적 흐름의 양상 또한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앞서 언급한 인터넷의 발달로 말미암아 훨씬 발생과 전파가 빠르고 영향력도 높다. 더불어 과거에 비해 사회적 사건으로 발달하기까지의 임계점이 폭탄이냐? 상당히 낮아져 소정의 그럴싸함 설득력과 약간의 선동 동조만 있다면 주장이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스스로가 지닌 시장에의 파급력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잘 활용하는 중이다. 이는 브랜드나 회사들이 점차 시장의 흐름과 소비자 의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의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소비자의 수요가 사실상 공급자를 부양하는 상황이므로 세계가 대충 멸망하는 것 같은 구조의 격변이 있지 않는 한 이가 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소비자가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의 영향력이 막강한 시대다.


소비자들이 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 소비가 가능해진 점은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나 그 이면에서는 어슴푸레한 불안감이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소비자들이 미치는 영향력과 사회적 변화들이 꼭 대의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표출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 방향이 올바르다면 시대적 흐름과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브랜드가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인 존재가 아닌지라 때로는 편향적이고 부적절한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괜히 성경에서부터 스파이더맨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큰 힘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격언이 회자되는 것이 아닌 만큼 이에 대해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옳은가


고찰 없는 주장억까 그치는 경우


소비자가 권력을 향유하는 방식의 부정적인 을 칭하기에는, 애초에 정치사회용어이긴 하다만 지금의 한국에서는 특정 집단에 대한 비하적인 정치 색채가 강해 사용하기 꺼려지지만 대중주의Populism만큼 적합한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소비자의 의견이 분야 관련 전문성이 없거나 배경 및 맥락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제시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고, 업계 현황, 기술, 비용 등 현실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것인 경우가 꽤나 많으며, 심지어는 요구의 주체이자 상황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항의 핵심과 실질적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도 간혹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접하고 있자면 마치 대부분 잘못하고 있는 잘못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관련 지식 없는 사람들이 생각만 던지면 그게 브레인스토밍이냐 아무 말 대잔치


정말 위대한 업적들 남기셨다


이미 우리는 제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행동의 결과가 미칠 파급력에 대한 고찰이 수반되지 않은 집단의 힘이 남용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그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홍위병红卫兵Red Guards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단기간에 이들의 이뤄낸 주요 업적으로는 전통 문화 및 역사적 유적과 유물의 훼손, 무차별적인 당대 지식인 핍박 및 학살로 인한 문화와 과학기술 발전의 쇠퇴, 파벌 분화로 인한 실질적인 내전 발발 등이 있다. 3년만의 문명 후퇴 문화대혁명은 마오이즘Maoism의 정착과 자본주의 기득권의 퇴출이라는 기치 아래 시작됐지만, 중심이 된 집단의 전문성 미달, 방향성 부재, 합리성 결여, 연계성과 파급효과에 대한 무지로 유례 없는 광기의 반달리즘Vandalism에 그치고 말았다. 원래의 목적이었던 정치구조 혁신에는 근처 조차 가지 못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긴 했지 반대 방향이지만


보통 이런 연유로 사람들이 PC를 증오하게 된다


홍위병 사태가 중우정치에 기반한 복합적인 정치사회적 배경이 있어 다소 거리감 있게 느껴진다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일련의 사태들이 보다 맥락적으로 부합하는 예시가 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거론되는 단골 주제로는 성평등, 인종 차별 철폐, 종교적 가치의 상호 인정과 수용, LGBTQ에 대한 인식 개선과 인권 존중, 환경 보호 등 민감한 주제는 모두 포함이라 보면 된다 이 있고 이들은 더 성숙한 사회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히 이룩되어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인류가 하는 일이 그렇듯 늘 급발진 과격한 방법을 취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전 세계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조롱의 의미에서 이들에게 다양한 멸칭을 수여했다. 한국에서는 통칭 PC이라 불리며, 양웹 서양에도 세부 분류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사회 정의 전사Social Justice Worrier, A.K.A. SJW라 부른다.


그들이 조롱 받는 이유에 대한 3컷 요약


무척이나 바람직한 것을 주장함에도 이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본질적 의미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쉽게 이해 가능한 몇몇 피상적 사항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며, 그 실천의 방법이 상식의 궤를 벗어나 대중적 공감을 얻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그 자신이 주장과 상반된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정보로 진실을 깨우친 것처럼 행동하는 트페미, 우연찮게 발견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려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주변의 공감을 강요하는 프로 불편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분야의 본좌로 안아키와 타진요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의도는 그나마 좋았으되 방향과 결과가 몹시 잘못됐다는 것이다.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때 무조건 스스로가 전문가적 소양을 갖춰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현황 파악과 이론적 기반에 대한 개론 수준의 이해는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커뮤니티, SNS, 미디어 스트리밍 알고리즘 등으로 인해 편향된 정보의 편중에 따른 자기강화가 쉬운 현실이기에 섣불리 판단하기 전에 다양한 관점과 보다 심도 있는 정보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으며, 최소한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상의 논거를 갖춰야 수용하는 입장에서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한다. 모르겠고 반박 시 님말맞


자신의 요구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놀랍게도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많은 사람들을 특히 기획자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일은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대개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과 으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태 혹은 그 필요성에 대한 고찰이 생략된 피상적인 이해에 기반한 느낌적 느낌 무분별한 지향이 원인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고 적절한 예시로 실험 심리학자였다가 엉겁결에 세계 최정상급의 시장조사 기법의 개파조사가 되어버린 하워드 모스코비츠Howard Moskowitz의 일련의 실험들 중 프레고Prego와 진행했던 가장 고객 선호도가 높은 레시피를 찾기 위한 여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입맛의 구세주다


일반적으로 식품 회사들이 상품의 고객 만족도를 산정하기 위해서 고려하는 것은 염도, 당도, 지방 함량 등 직접적으로 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물론 그 외에도 재질 질감, 식감, 농도, 조리법, 색상 등 다양한 요소가 있긴 한데, 그 항목들을 전부 조사하고자 하면 설문 자체의 깊이가 일반인은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는지라 저 주요 요소들을 조사의 기준으로 잡는게 일반적이다. 더불어 보통 담당자들은 저런 추가 항목은 생각도 못한다 흥미롭지만 매우 긴 실험 내용을 요약하면, 그간 파스타 소스를 고르는 데에는 맛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주였으나 이 실험으로 인해 고객들은 건더기의 크기와 함유량, 이와 소스의 종합적인 식감 등 그간 생산자는 물론이고 소비자 자신조차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고려하고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파스타 소스 기획할 때 고민할 사항이 늘었다는 얘기 하워드 모스코비츠가 식품 시장조사 업계에 초거대 족적을 남기게 된 사연은 여기에 있다. 1980년대까지 식품 기호도 평가의 기준으로 생각되던 맛 외의 항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과 직접 표출되지 않은 요구가 존재하고 이는 사고 주체도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주지시켰기 때문이다.


요컨대 고객이 상품을 선택하는 이유에는 제조사나 기획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포함될 수 있고, 이는 고객들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식품 업계의 언어로 번역하면 지복점Bliss Point을 이루는 요소는 무수히 많고, 모든 이가 그 세부 항목을 전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 자신이 그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을 해 볼 턱이 없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조사하는 주체가 내민 설문지에는 그런 항목이 포함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떠올리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 자유롭게 의견을 서술하라는 항목이 있지 않냐고? 그 항목을 성실히 작성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모르는 걸 어떻게 적어요


문제는 소비자가 개선을 요구할 때, 요구의 본질이 실질적 문제와 별개인데도 이를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가 인지하지 못하면서 변경을 위한 행동에 착수하는 경우 발생한다. 지향점이 모호하니 만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리 만무할 것이고, 당연히 소비자는 나중에 또 우는 소리 하고 생산자는 해주고 욕 먹는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뭐였는지 밝혀 지기 전 까지는 영원히 이런 지옥 같은 굴레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젠 조롱의 반열에 오른 그놈의 효능


또 다른 경우는 요구가 한정적인 지식에 근거하는 경우에 발생하며, 일상에서 굉장히 흔하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예컨대 비스페놀Bisphenol A로부터 촉발된 무차별적 플라스틱 기피 현상, 음식의 어떤 성분의 작용을 과장하며 맹신하는 ㅇㅇ의 효능 푸드 패디즘Food Faddism a.k.a. Fad Diet, 실황을 고려하지 못한 조치의 부적절함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유감 없이 보여준 그린 워싱Green Washing의 사례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런 잘못된 지식에 기반한 사회 반향이 영향력을 지닌 소비자 집단과 결합하면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우리는 이미 삼양 라면 우지 파동이 시장에 초래한 결과를 목도한 적이 있고 현재의 환경은 그 때에 비해 이런 다수의 횡포라고 봐도 좋을 현상이 벌어지기 훨씬 쉬운 상태다. 더불어 이렇게 한 번 습득한 정보에 대해 일상에서는 귀찮아서 교차 검증이나 추가 자료 수집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므로 편리한 단순화된 인식은 바뀌기 힘들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너무 당연해서 말하기 민망한데, 사용자든 공급자든 정말 많은 것을 공부하고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표면적인 것과 실질적인 요구가 상이한 경우, 인지의 문제이거나 이를 표현하는 방법의 부적절함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정말 미세한 의견들의 바다에서 실마리를 찾는 수 밖에. 그나마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 어디서든 수많은 사람이 의견을 쏟아내고 있으니 살펴볼 소스가 차고 넘치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물론 쉽다고는 안 했다. 행간을 읽어내거나 하는 등 환상적인 언어적 소양을 지닌 인공지능 크롤러 머신을 사용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모두 수작업이니…. 사금 캐는 걸 생각하면 편하다.


사회적 요구는 항상 옳은가


직접적인 수요와 구매의 주체인 소비자에 대해 얘기했으니, 이번에는 대중Public이 발산하는 사회적 분위기Atmosphere가 시장 동향Market Trend에 야기하는 암묵적 요구를 살펴보자. 소위 말하는 사회의 트렌드다.



이는 소비자나 생산자 모두 무시할 수 없는 것인데, 시장에 형성된 특정한 경향성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의 인식과 행동에 유의미한 변화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꿔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검정색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대략 1850년-1900년)에는 슬픔과 애도를 상징하는 색이었고 이 색으로 된 옷을 입는 것은 미망인이나 사용인Maids 정도 밖에 없었다. 하지만 1926년 코코 샤넬CoCo Chanel이 저 유명한 작은 검정 드레스Little Black Dress, a.k.a. LBD를 발표한 이후 그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일상복에 적용되는 색이라는 인식이 다시금 활성화됐고, 이런 관념은 패션업계와 대중에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터부가 완전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애도에 국한되었던 검정 복식의 맥락적 의미가 격식과 존중으로 확대되는 일종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야기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듯 사회와 시장의 변화는 동시대의 주요 가치 및 지향성을 반영하기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요구들 또한 시장을 구성하는 사람에게서 비롯하는 것이고 반영의 주체도 사람이다 보니 항상 바람직한 결과로 귀결되지만은 않는다. 복합적 요인에서 형성되는 가치는 집단 혹은 개인의 주관적 판단 결과이므로 앞서 검정색 옷의 예시처럼 특정 계기나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한다. 이런 가치 상대성은 정말 세계가 문화적 통일을 이루지 않는 이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와 시장의 요구는 때때로 브랜드의 정체성 및 추구 방향과 어느 정도 상반되는 경우도 있기에, 비록 그 요구가 매우 올바른 것일지라도 반영에 앞서 신중한 고찰이 필요하다.


예컨대 출신이나 성향, 인종과 성별에 대한 차별은 당연히 사장되어야 할 악습이지만,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과 같이 이를 강제하면 부정적인 부작용이 발생한다. 문화 컨텐츠와 관련된 분야에서 그 안 좋은 부작용이 특히 두드러지는데, 컨텐츠들은 서사 전달의 수단이므로 구성 요소들의 맥락Context이 중요하고 일부는 원작이 존재하여 그 원작의 팬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때로는 제작될 당시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기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맥락적 요소들을 무시하고 개연성 없이 정치적 올바름을 도입한다면 시대적 배경에 대해 무지하다는 조롱을 받거나 원작 팬들의 분노에 직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겠지


원작을 존중해 주세요


디즈니Disney의 작품들이 이런 논란이라는 이름의 팬들의 분노에 자주 직면하는 편이다. 스타 워즈라는 거대 프랜차이즈에 페미니즘과 인종 평등을 반영하기 위해 투입된 것으로 추측되는 스타 워즈Star Wars: 마지막 제다이Last Jedi의 삭제해도 플롯에 지장이 없는 신비로운 등장 인물 로즈 티코Rose Tico는 스토리의 개연성을 말아먹는 이율배반적 자가당착 행보로 기존 인기 등장 인물들의 조기 몰살과 동급의 충격을 줬다는 얘기다 함께 올드 팬들이 프랜차이즈에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으며, 올해 헬게이트를 개봉 예정인 실사 영화 흑어 공주 인어 공주The Little Mermaid(2023)는 원작이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에리얼Ariel을 블랙 워싱Black Washing하며 진저 워싱Ginger Washing하는 모순적 행보를 보이는 동시에 이 캐릭터를 사랑하는 기존 팬들에 대한 존중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는다. 자매품으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관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던 실사화 피노키오Pinocchio(2022)의 검은… 아 아니, 푸른 요정Blue Fairy이 있다. 아, 이건 되려 원작에 좀 더 가까운 건가? 에리얼의 경우 단순한 블랙 워싱을 넘어 좀 더 심각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시각적 측면에서 볼 때 갓 인간으로 거듭난 흑인이 선진적인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왕자인 백인에 의해 문명화 되는 이야기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친다면 인종 평등의 반영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흑인을 주인공으로 채택한 원래의 취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뭐,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외형적 기괴함 때문에 전체 관람가가 아닌 PG-13 등급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사회 정의의 광풍을 두려워한 이런 제작사들의 행보는 디즈니 같은 초거대 제작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평단과 유저 모두 극찬한 동명 게임 원작의 HBO 드라마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2023)도 호평 속에 잘 나가다 원작에 없던 갑분게이 동성애 이야기를 한 화 내내 적나라한 페팅 씬과 함께 보여주며 원작 팬들의 감성을 함부로 다룬다던가 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기존 팬들에게 호평 받은 드라마성과 흥미성을 모두 갖춘 원작의 요소, 예컨대 조엘과 엘리의 38년의 나이 차를 극복한 상호 쌍욕 티키타카 같은 요소를 생략하면서 서사적으로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정치적 올바름의 요소를 도입 했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제발 때와 장소를 가려 주세요


이러한 원작을 파괴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을 억지로 포용하는 행보들은 세련된 정치적 올바름의 적용 전례들이 있어 더욱 비교된다. 예컨대 데드풀Deadpool2(2018)는 원작의 캐릭터들을 재해석함에 있어 바뀐 인종과 성적 지향성을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녹이면서도 진취적이고 자립적 여성상을 보여주며, 마블Marvel의 스파이더맨Spider-man 시리즈(2017-)는 장소적 배경이 되는 뉴욕 퀸즈 소재의 과학 고등학교를 묘사할 때 실제 퀸즈 지역의 거주 인구 구성비를 반영하여 재학생 중 히스패닉, 동양인, 흑인의 비중이 높은 장면을 보여줬고, 메인 유니버스와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인 히스패닉계 흑인 캐릭터 마일즈 모랄레스Miles Gonzalo Morales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기존 팬들과 신규 팬 모두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시리즈를 계승했다. 잘 할 수 있는데 왜 그랬어요


미디어 컨텐츠의 경우 아무래도 시각적 요소에 집중되는 매체 특성상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데 정치적 올바름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어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반 소비재들이 사회적 반향을 도입했을 때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했던 경우를 살펴보자.


얘가 더블 빅 맥 보다 칼로리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미국 맥도날드McDonald’s는 2020년 4월부터 전 지점의 메뉴판에서 1987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던 유구한 역사의 내부의 배신자 샐러드를 없앴다. 얼핏 보면 이는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더 강력하게 식품 업계를 선도하는 건강 트렌드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행보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납득할 수 밖에 없는 경영상의 이유가 있는데, 일단 샐러드 단품의 가격이 $3.19로 $1짜리 더블 치즈 버거의 3배가 넘는 단가임에도 불구하고 개별 수익성이 좋지 않았고, 별도의 재료들을 사용해야 했으므로 별도로 원자재를 수급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어 관리 비용과 공수가 추가됐으며, 기존 메뉴들과 조리법이 상이하여 직원들의 별도 교육이 필요함은 물론 조리 시간이 길어 주문 후 음식 수령 시간이 평균적으로 상승했다. 여기에 미국에서 2018년경 채소류 공급업체에서 비롯된 전국적인 Cyclospora 기생충 감염 사태에 대한 원자재 리스크 관리도 포함시킬 수 있다. 아무래도 상기 사유들로 샐러드류는 맥도날드의 주력 상품은 아니기 때문에…. 더불어 치폴레Chipotle를 위시한 건강을 테마로 하는 온갖 프랜차이즈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패스트푸드의 낙인을 받은 지 오래인 맥도날드가 샐러드를 파는 행위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자기 기만적으로 보이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어쨌든 건강 트렌드에 반하는 듯한 이런 맥도날드의 조치는 경영 측면에서는 꽤나 성공적이어서, COVID-19로 인한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2020년 3사분기동안 대조군 대비 평균 4.6%의 판매량 상승을 보였으며, 고객당 평균 음식 전달 시간이 30초 줄어 더 빠른 서비스가 가능 해졌다. 경영 현황에 따른 SKU와 현장 관리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모든 F&B 브랜드가 건강 트렌드를 반영하기 바쁜 와중 그에 반대되는 대응을 한 것 같아 더욱 눈에 띄었던 맥도날드의 경우는 사실상 빠른 응대와 투자자의 수익, 그리고 햄버거라는 브랜드의 지향점에 충실한 결과로 볼 수 있겠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무슨 샐러드야



브랜드는 정체성을 지키며 주관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브랜드는 어떤 생산자를 특정할 수 있게 하는 시각적 이미지로 구분되며, 이로써 사용자는 자신이 얻게 될 경험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모름지기 브랜드를 표방한다면 자신을 다른 것들과 확실하게 구분 짓는 정체성Identity을 지녀야 하고, 그 정체성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브랜드는 제공되는 경험과 가치에 대한 일종의 증표이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시대의 흐름과 소비자의 요구에도 타협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거다.


브랜드를 고려하지 않은 변화의 끝은 파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적 움직임이나 소비자의 요구가 브랜드의 정체성과 상충된다면, 브랜드의 존망을 좌우할 만한 치명적인 것이 아닌 이상 반드시 응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사회적 패러다임과 정체성이 정면으로 대치하는 브랜드라면 그냥 도태되는 게 맞다


로고 변경 마저 실패한 소중한 사례의 보고


기업 몰락 요인의 종합 사례집 제네럴 모터스General Motors(이하 GM)의 경우에서 주관이 결여된 변화 추구가 어떤 방식으로 브랜드의 몰락을 야기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GM은 사실상 기업이 하면 안되는 것들의 총체적 반면교사 같은 존재라 이게 결정적 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막타는 서브 프라이 모기지 사태가 먹였지, GM이 가진 브랜드들은 몇 개 쉐보레Chevrolet와 GMC 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폭망 몰락 해버린 지라 그 부분은 참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절대 따라하지 말자


1980년대 당시 GM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조금씩 하락하고 있었고,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숫자가 회사의 부진을 보여주는 상황이었으므로 회사는 수익성을 보강하는 방향의 전략을 취하기로 했는데, 얼핏 정상적으로 들리는 이 조치의 문제는 고객 지향을 배제한 경영과 회계 중심 방향이라는 점이다. 미친 거예요?


자동차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로버트 루츠Robert ‘Bob’ Lutz에 의하면 당시 경영진들은 차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GM의 목표는 수익이고 차는 그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는 참으로 환장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차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 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회계와 데이터 중심 경영을 추구했는데, 그 주요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은 원가 절감과 수익률 향상이었다.


굉장히 극적이지 않은가


GM은 1928년에 점유율로 포드Ford를 꺾은 뒤 파죽지세로 성장하며 올즈모빌Oldsmobile, 폰티악Pontiac, 홀덴Holden과 같은 네임드를 위시한 수많은 브랜드들을 처묵처묵 인수합병 하여 시보레로 입문한 사람이 돈을 잘 벌었다면 캐딜락Cadillac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모든 용도와 대상을 아우르는 GM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었다. 심지어 흡수한 브랜드들의 개성과 포지션이 몹시 뚜렷해 이 회사가 무너지는 게 가능하긴 한가 싶을 정도로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듯 싶었지만, 사람의 병신력을 얕보면 안된다 GM의 환상적인 경영진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한 때는 미국 황금 시대의 상징이었다


예컨대 당시 최고급 브랜드의 위치에 있던 캐딜락의 경우 굉장히 높은 매출 성장 목표를 받았는데, 상식적으로 초고가 상품인 럭셔리 세단의 가격을 갑자기 대폭 올릴 수도 없고, 그렇게 가격을 올려봤자 고객들이 사지도 않을 것이며, 판매량이 갑자기 늘어날 리도 만무하므로 잘리지 않기 위해 남은 선택지는 박리다매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개나 소나 캐딜락을 사게 되면서 당연히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는 내려갑니다 수직 하락하며 벤츠, 재규어 등 경쟁사에게 고객을 이양 잃었다. 1970-1980년대 부유층의 상징이자 드림카였던 캐딜락이 오늘날 외면 받게 된 배경이다.


원가 절감의 경우에도 그 적용 방향성에 문제가 많았다. 이 당시 화제가 됐던 것이 토요타 생산 체계Toyota Production System, TPS를 위시한 식스 시그마Six Sigma였는데, 일본과 너무 달랐던 인식과 노동환경 강경노동조합과 높은 인건비 탓에 직접적인 생산 체계의 혁신을 통한 원가 절감은 시도할 수 없었고, 결국 대안으로 진행했던 것이 부품 돌려쓰기와 곰탕 제조 우려먹기 였다. 신규 기술의 개발은 많은 자금이 필요했으므로 자연히 사장됐고, 브랜드의 독자 모델 개발 또한 돈이 많이 드니 뱃지 엔지니어링Badge Engineering이 최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좌측부터 피에로, 페라리 308, 공장제 컨버전 킷이 적용된 피에로


게다가 회사의 전략이 높은 수익 추구였으니 동종 업계인 내부 브랜드들끼리 서로 포지셔닝을 침범하며 출혈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는 브랜드의 몰개성화, 포트폴리오의 개박살 붕괴, 품질 저하, 뒤쳐진 기술력 등으로 귀결됐다. 예컨대 쉐보레는 스타일마스터Style Master나 노바Nova 등 저가의 엔트리급 차량을 담당하는 브랜드였지만 GM 본사의 수익 증가 요구로 상품군에 몬테 카를로Monte Carlo나 셰빌Chevelle 같은 중상급 세단이 추가됐다. 폰티악의 경우는 특히 놀랍다. GTO나 파이어버드Firebird같은 머슬카와 스포츠카를 만들며 브랜드 이미지를 잘 구축해 나가다가 수익성 추구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경영진의 지시로 가만히 놔둬도 잘 팔렸을 경량 미드쉽 스포츠카였던 피에로Fiero에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페라리Ferrari 308과 흡사한 모양의 외판으로 교체하는 공장 옵션을 넣은 것. 뭐하는 지거리야 저작권에 대한 이해를 떠나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페라리가 이런 사태를 좌시할 리 만무했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폰티악은 고소 엔딩을 맞이했으며, 브랜드 이미지는 아메리칸 머슬American Muscle에서 모방품을 파는 싸구려로 나락 갔다 전락하고 말았다. 이 외에도 원가 절감이 원인인 품질 문제와 성능 저하가 다수 발생하면서 GM 전 브랜드의 이미지는 수직 하강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로버트 루츠가 그의 저서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회계와 데이터에 편중된 경영은 위험하다, 즉 머니볼MoneyBall은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만, 이 사례들이 브랜드를 고려하지 않은 변화의 도입이 야기할 미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브리티쉬 레일랜드British Leyland도 동일 분야에서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던 경우이기도 하고. 다수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면 최소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희석하는 조치는 지양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교훈을 회사의 명운을 걸고 보여줬다.


변화가 필요함을 무시해도 파멸이다

 

계속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낯이 조금 뜨거운데, 그 당연한 걸 지키지 않아 브랜드를 말아 먹은 분들 덕에 조금은 어깨를 펼 수 있다. 이게 왜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경영과 브랜드의 세계 시장의 변화가 브랜드의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당연하게도 이를 반영해야 함이 옳다. 경우에 따라 이는 브랜드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청바지가 순식간에 패션 아이템이 되는 마법을 부린 분들. 좌측이 제임스 딘, 우측이 말론 브란도


예컨대 리바이스Levi Strauss는 시장 판도와 소비자 취향의 변화를 무시한 대가로 브랜드 자체를 말아 먹을 뻔한 전적이 있다.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Jr.와 제임스 딘James Dean이 작업복에 불과했던 청바지의 위상을 패션 아이템으로 힘껏 끌어올리긴 했지만 그래도 편하게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남아있었던 상황에서, 1980년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은 브룩 쉴즈Brooke Christa Camille Shields를 모델로 내세워 마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샤넬 No.5 광고를 연상케 하는 지금이라면 아청법 철컹철컹 카피라이팅으로 이에 섹시함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는데 성공했다. 이로 말미암아 게스Guess를 위시한 수많은 브랜드들이 몸에 딱 맞는 핏의 청바지 라인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고, 고고한 패션 하우스들이 그간 격 떨어진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청바지가 구색 맞추기로나마 라인 하나쯤은 갖추고 있는 존재가 됐다. 이러한 브랜드들의 행보는 청바지 시장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데, 작업복과 일상복 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진Premium Jean 장르가 세분화 되며 시장의 흐름과 소비자들의 인식 자체가 변화한 것이다.


이런데 아저씨들이 상대나 되겠냐고


이런 상황에서 리바이스는 실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짓을 저지르는데, 저까짓 듣보잡 신흥 브랜드들 우리가 다 이긴다며 살놈살 디자인과 품질은 물론 마케팅과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100년이 넘는 브랜드의 역사적 가치heritage는 충분히 존중할 만 하나 이미 1990년대 들어서 젊은이, 그러니까 현재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미 리바이스를 엄빠가 입던 틀딱 브랜드 취급 하고 있었으니…. 어쨌든, 리바이스 경영진이 시전했던 무관심의 효과는 굉장해서 매출의 정점을 찍은 1996년으로부터 5년 뒤인 2000년에는 총 매출이 반토막 나고 판매량 급감에 공장 28개를 폐쇄했으며 부채 상환 문제를 겪으며 거의 파산 직전까지 내몰리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뒷이야기가 있다. 일반 라인의 리바이스 청바지 가격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리바이스는 프리미엄 패션에 속하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이야 리바이스도 프리미엄 라인으로 지갑 아픈 가격대를 보여주고 있지만, 입을 만한 리바이스라 하면 대체로 1벌에 2-3만원 정도다. 너무 보세 느낌이 아닌 것도 5-6만원 정도가 일반적인데, 이런 가격대이니 만큼 가장 기본 제품이 10만원을 바라보던 캘빈 클라인 진이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느낀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기존 시장 지배자적 입장에서 보면 금방 잦아들 소비자의 일시적 변덕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게 틀렸습니다 그럼에도 용서되지 않는 부분은, 이 암흑의 시기에 회사를 운영했던 경영진은 자신들이 파는 물건인 청바지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0에 수렴했다는 점이다. 패션 산업에 대한 지식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당시 새로 부임한 CEO의 면담에 따르면 청바지의 시장 역학과 소비 쟁점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90%에 달하는 월급도둑 임원을 해고할 수 밖에 없었다고경영진이 영 아니어도 회사는 돌아간다는 반증


이미지 혁신 중인 리바이스. 좌측은 엔지니어드 진, 우측은 Live in Levi's 캠페인


다행히도 1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브랜드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10년간의 부진이 효과가 있었는지 2000년의 엔지니어드 진Engineered Jean을 필두로 헨델Hendel의 사라방드Sarabande가 귓가에 울린다면 당신은 늙었다 점차 시장 요구와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하며 재기를 도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1년 찰스 빅터 버그Charles “Chip” Victor Bergh가 CEO로 부임하면서 역시 만악의 근원인 임원진을 물갈이 하며 비로소 리바이스는 정상 경영 궤도에 올랐다. 뉴트로Newtro 트렌드와 더불어 헤리티지 및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 전략은 유효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오리지널 501을 복각한다고 난리인 걸 보면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생존이 가능한 변화는 정체성의 보존을 전제로 한다


리바이스의 전략 실책과 완전한 대척점의 방향을 취해 거의 환골탈태에 가까운 사업군 변경을 감행하여 성공한 브랜드도 있는데, 그 유명한 IBM이다. 여기에는 간략한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누구나 IBM에게 허락만 받으면 이런 걸 생산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현재 애플Apple의 맥Mac 계열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컴퓨터는 IBM (호환) 컴퓨터라 불린다. 그 이유는 방식의 기원에 있는데, IBM은 자신들이 독점 공급하기 불가능한 수요가 존재함을 감지하고 컴퓨터 하드웨어의 개방 구조Open Architecture 전략을 취해 라이센스 생산 방식으로 수많은 기업들에 하청을 줬다. 그 대표적인 회사들이 인텔Intel, 컴팩Compaq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다. 어쨌든 이런 공급 전략을 취한 반대 급부로 IBM 자체 생산 하드웨어는 그 오리지널리티에도 불구하고 본격 컴퓨터 산업이 발달하며 수많은 생산업체들이 난립한 1980년대 들어서는 시장에서 가격이나 성능 면에서 큰 매력이 없었고, 자신들이 시작하긴 했지만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에 기대서는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는다.


레노보Lenovo에 인수된 이후 짱깨패드라는 멸칭을 얻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굉장히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다


그래서 1990년대 초 IBM의 CEO로 취임한 루이스 거스너Louis Gertsner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데, IBM 헤리티지의 상징과도 같았던 씽크패드ThinkPad를 위시한 PC 사업부를 해체하고 판매하며 본격 B2B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다른 회사들이 IBM을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초대형 외계인 고문실 R&D에 기반한 압도적인 기술력이었고, 마침 대두되던 IT와 함께 회사들이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려워 한다는 점을 캐치한 IBM은 솔루션Solution이라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를 통합한 개념을 제시하며 종합 비즈니스 IT 서비스로 자신의 사업군을 완전히 이전하여 지금까지 시장 최강자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건 직접 관리 받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현실은 하청의 하청의 하청


조만간 HAL9000을 만들 기세. 좌측은 메인 프레임, 우측은 IBM Q


이런 연유로 컴퓨터 시대 초창기의 사람들과 다르게 현재의 사람들은 IBM의 이름을 낯설어 하며, 이들의 주요 고객도 기업 및 공공기관이고 주요 상품은 메인프레임Mainframe과 슈퍼컴퓨터를 위시한 IT 비즈니스 솔루션이다. 최근 들어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이 대두되며 아마존Amazon과 같은 신흥 강자들이 득세하여 조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IBM은 차기 시장 주도를 위한 대응책으로 양자 컴퓨터Quantum System를 개발하고 있다. 외계인 인권도 보장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혁신과 변화의 과정에서 IBM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정보기술력에 기반한 혁신의 전파라는 그 정체성은 생각하라THINK라는 브랜드 슬로건에 몹시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담겨 있고, 이를 시장에 제공하는 방식과 주요 공급처만 변화했을 뿐 IT와 하드웨어 분야에 몸담은 관계자들에게 IBM은 여전히 독보적인 존재다. 만약 이러한 브랜드의 기조마저 저버렸다면 지금의 우리는 IBM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캐릭터, 세계관, 마케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