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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은있다 Jan 08. 2023

죽어 마땅한 아이

식이장애 이야기









"저는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짐을 정리해둔지 5년도 넘었어요.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데, 그냥 어떨 땐 그냥 삶을 유지할 핑계를 억지로 만들어 가며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10년 넘게 거식증과 폭식 구토로 힘든 시간을 보내온 그녀의 첫마디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다. 언어적 폭력은 물론이고 신체적인 학대도 심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꼭 엄마가 없을 때 때렸다. 엄마한테 아무리 말해도 아버지가 그랬을 리 없다고 했다. 언니는 자신보다 더 오랫동안 심하게 학대를 당했기 때문에 언니와 비교하면 자신은 힘든 축에 속하지도 않아서, 그녀의 고통은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평범하지 않은, 학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라고 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가족끼리 저렇게 대화를 하는구나, 때리지 않는구나, 사랑한다고 말하는구나'라고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녀의 분노와 억울함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더 큰 폭력과 욕설로 대항했고, 집기들이 부서져 있으면 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 대한 분노도 함께 거세졌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가족 안에서의 일들을 한반도 말한 적이 없다. 말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자라는 아이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 중에 가장 사랑받고 자란 것 같은 친구를 보면서 그 친구가 입는 옷, 가방, 볼펜을 따라 샀다. 그러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고, 부모님 지갑에 손을 댔다. 물론 부모에 엄청나게 혼났고 아버지에게 폭력의 빌미가 되어 또다시 맞아야 했지만, 그녀는 ‘사랑받고 자란 아이로 보이기’가 가장 큰 숙제였기 때문에 맞는 것쯤은 대수롭지도 않았다. 가족들은 그녀에게 버릇없는, 제멋대로인, 분노조절장애라는 주홍글씨를 단단히 새겼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녀는 다이어트를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은따였고, 냄새가 나서 그런가 싶어 하루에도 여러 번 씻었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서 가서 세수했다. 내가 뚱뚱해서 그런가 싶어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되는 것에 비하면 수시로 씻는 것, 굶는 것, 은따인 것, 친구들이 때때로 모욕적인 말들을 하는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친구가 "너 냄새나니까 씻고 와"라고 말하면 오히려 고마웠다. 그 친구는 그래도 날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다, 날 그래도 친구로 생각하니까 그런 말도 해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인이 되면서 그녀는 매일 화가 나 있었다. 가족에게도 화가 났고, 철없게 느껴지는 친구들의 행동도 화가 났고, 공평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도 화가 났다. 조금만 거슬리는 모습이 있어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사소한 오해나 부당한 상황이 있어도 대판 싸우고 매번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상사 탓, 동료 탓, 사회 탓, 부모탓을 했다. 이 세상에 나만큼 억울하고 힘든 사람이 없었다. 나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데 그런 자신을 뒷받침해 주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어서 화가 치밀었다. 가장 미운 것은 부모였다. 그럴 때면 그녀는 명품백을 사고, 명품옷을 샀다. 중학교 때 가장 사랑받는 아이 같았던 친구를 따라 했던 것처럼 명품을 사고 다이어트를 했다.      








그녀에게 사랑받는 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녀 내면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절박한 파트가 있다. 그리고 그 파트 옆에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말하는 파트도 있다. 이 파트는 초등학교 때 자신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 생겨났다고 한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보호해주어야 할 부모가 나를 학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부족하고, 못난 존재라는 것이다. 환영받지 못할 만한 이유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의 식이장애 파트 역시 날씬해져서 사랑받고 싶어서라기보다, '위를 터뜨려 버릴 거야, 먹고 먹어서 죽게 할 거야. 이렇게 먹다 보면 위암이라도 걸려서 죽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녀에게 식이장애는 뱃속에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자기 존재에 대한 처벌인 것이다. 그녀에게 분노는 환영받지 못하면서 살아내야 하는, 살아가라고 하는 세상에 대한 슬픔과 절규인 것이다.      





그녀는 상담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런 내면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식이장애만 없다면, 분노 조절만 된다면, 내 인생을 분명히 달라졌을 거라고 믿으며 식이장애 파트와 분노 파트를 미워하고 없애려고만 했던 그녀이다.      


이제 그녀는 어린 시절 그 상처를 떠안고, 그 고통을 해결해보고자 애써온 식이장애 파트, 분노 파트에게 연민의 마음을 느낀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라도 해보려고 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다.      

이제 그녀는 별로 화나는 일이 없다. 여전히 아버지가 욕을 해도, 직장에서 제멋대로인 동료를 봐도, 경력이 없어서 학력에 비해 너무 낮은 보수를 받게 돼도, 그녀는 분노 폭발하기보다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방법을 고민해 본다.      



이제 그녀는 식이장애 파트, 분노 파트가 예전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아도 온전히 자신으로서, 도움이 되는 현명한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딱히 자신이 죽을 이유도 없고, 죽음을 준비해 놓을 필요도 없다. 이제 그녀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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