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 이야기
누구나 하는 다이어트, 뭐가 문제죠?
“누구나 다이어트 하잖아요. 요즘 시대에 남녀노소 다 다이어트 하는데 저는 다이어트 하면 왜 안되죠? 선생님도 다이어트 해보셨을 거 아니에요?”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쾌한 듯 공격적으로 말하는 그녀.
당신의 어떤 얘기도 들어줄 마음이 없으니 그만 포기하고 경고를 하는 것만 같다.
그녀의 이야기는 틀린 말이 아니다. TV만 틀면 다이어트에 대한 내용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통해 인생역전이나 제2의 인생을 얻은 성공담들이 부지기수다. 그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체중에 대해 스트레스 받고 1-2kg만 빠졌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니까 사실 이상할 일이 아니다. 그녀에게 나 역시 수없이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한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예상했던 것 보다 꼰대는 아니라는 듯 그녀의 화난 얼굴을 조금 수그러들고 내 얘기에 조금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왜 남들 다하는 다이어트로 억지로 상담실에 끌려오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황스러워하다가 좋은 건수를 잡은 듯 가족들이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한다며 울분을 터뜨린다.
그녀의 다이어트는 고3 수능이 끝나면서 시작되었다. 이 대목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식이장애 내담자에게 단골 멘트이다. PT를 받으면서 트레이너가 하라는 식단과 운동을 시작했다. 안하던 운동을 하고 음식을 통제하니 체중이 기대보다 빠르게 빠지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고 부러워하니 그녀는 더욱더 운동에 몰두했고 열심인 그녀에게 트레이너는 바디 프로필을 제안했다. 여기까지는 요즘에 너무 흔한 전개이다.
전부가 되어버린 다이어트
다른 친구들은 수능 후에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난다. 소개팅도 하고 대입이라는 너무 큰 과업 앞에 모든 욕구는 뒷전으로 미뤄뒀기 때문에 미뤄둔 모든 욕구를 폭발시키듯 해치우는 시기를 보낸다.
그런데 그녀는 식단과 운동 시간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다. 트레이너가 알려준 식단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약속을 너무 큰 부담이다. 특히 저녁 약속이나 술 약속은 꿈도 꾸지 못한다. 술안주로 나오는 음식들의 칼로리 계산이 자동을 되어서 힘들고, 어떤 음식을 재료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칼로리 계산이 안되니 먹을 수 없다. 오히려 엄마가 해주는 집밥보다 칼로리가 적혀있는 편의점 음식이 더 안심이 된다.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만 마실 수 있다. 디저트는 절대로 안된다. 눈앞에 디저트를 외면할 수 없거나 친구들에게 매번 거절할 수 없느니 아예 약속을 만들지 않고 핑계를 댄다.
이런 날들이 지속되니 친구들은 더이상 그녀를 부르지 않는다. 단톡방에서도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이니 누구를 탓하지 못한다.
집, 헬스장만 왔다 갔다 하니 일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친구들 SNS에는 예쁘고 즐거운 모습투성이다. 맨날 운동복 차림인 자신이 어느 순간 초라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그럴수록 체중계의 숫자에 더욱더 집착한다.
식단을 통제하고 체중이 내려가고 얼굴을 푸석하고 짜증이 늘어가고, 잠도 못 자니 예민해져서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고, 가족들이 치킨이라고 시켜 먹는 날은 온 집안 떠나가라 화를 낸다. 치킨 냄새를 견딜 수 없고, 가족들이 자신이 이렇게 힘들게 참고 있는 것을 이해해주지 못하니 답답하고 화가 난다. 급기야 가족들의 음식도 통제한다. 냉동실은 그녀의 닭가슴살로 가득 채워진지 오래다. 치킨도 피자도 시켜먹지 못하는 가족들도 그녀에게 “작작 좀 해”라며 짜증을 낸다. 집에 있는 날이면 하루종일 음식 생각에 SNS에서 맛집들만 뒤져보며 한숨만 나오고 배고픔에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녀에게 다이어트가 생활의 몇 %나 차지하는지 물었다.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보며 그녀는 흠칫 놀란다. “90% 아니 100%인 것 같아요”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니다.
그녀가 처음 다이어트를 결심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한참 고민하던 그녀는 “사실 잘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냥 수능도 끝났으니 남들 다 하는 다이어트 나도 해볼까?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내 삶을 전부 다이어트로 소비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녀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함께 탐색해보았다. 그녀는 고3이 되면서 수능이 끝나면, 스무 살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묻자 “음...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싶고, 클럽에도 가보고 싶고, 배낭여행도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남자친구 사귀고 싶었고요. 집. 학교, 학원만 왔다 갔다 하는 답답한 삶은 정말 지긋지긋했어요”라고 말한다.
그 순간 그녀는 그 답답한 생활이 싫었는데 다이어트 하느라 집, 헬스장만 오가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저 지금까지 무얼 하고 있었던 거죠? 제가 원하는 스무 살의 행복하고 풋풋한 삶과 완전히 반대로 달려 가고 있었네요. 이건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이어트와 식이장애
다이어트는 대체로 목표 체중이 있고, 목표 체중에 도달하면 성취감을 느끼고 이제 다이어트를 중단한다. 그리고 원래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식이장애는 다르다. 처음 시작은 다이어트는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었는데, 얻고자 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다이어트만 남는다. 다이어트가 삶을 집어삼킨 목전전치가 일어난다. 다이어트나 체중계의 숫자가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다. 그것이 다이어트와 식이장애의 가장 큰 차이이다.
다이어트를 통해서 내가 얻고 싶었던 것, 진짜 목적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산책을 갈 때 명품 옷을 걸치고 가기보다 트레이닝복이나 가벼운 옷차림이면 된다. 내가 산책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고 해서 내가 부족하거나 못난 사람이 아니다. 회의에 참석할 땐, 트레이닝복 대신 단정한 옷차림이어도 되고, 명품 옷을 걸쳐도 되고, 구두를 신어도 되고 로퍼를 신어도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지를 잊지 않으면 우리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