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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바하 Jan 12. 2024

해파리

#제발무탈하고원만하게살자

제무원. 제발 무탈하고 원만하게 살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간직했다. 새로 배치된 내과 병동에서 사고가 하나씩 터질 때마다 그는 마치 크리스천들이 '주님'을 찾듯 '제발'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는데, 독자 여러분들이 주지하시다시피 그것은 '제발 무탈하고 원만하게 살자'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제발'이라는 단어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그의 삶은 무탈하지도, 원만하지도 않았다.


우선 그의 신체적인 조건부터가 무탈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어떤 사유 인가로 인해 아버지에게 귓방망이를 맞아 왼쪽 귀가 완전히 먹어버린 그는, 오른쪽 귀마저도 청력을 크게 상실해 일상생활에서 곤란을 겪곤 했다.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아마 대다수가 그의 불운한 유년시절에 심심한 위로를 보내리라. 하지만 아쉽게도 무원을 향한 사람들의 연민은 오래가질 못하였으니, 청각 장애가 있는 그로 인해 그의 주변인들이 꽤나 심한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불편이라는 것들 대다수가 미리 예방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었으므로 먹먹하던 연민은 순식간에 서슬 퍼런 비난으로 탈바꿈하여 무원을 겨누곤 했다. 그 비난은 대부분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보청기는 대체 왜 안 끼는 거야?


그렇다. 무원은 보청기를 끼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그를 무탈하지도 원만하지도 못하게 만든 진짜 원인이리라. 만일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이 조용한 연구실이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이 하루에도 수백 명이 스쳐 지나가는 종합병원이고, 그의 위치가 고작 말단 중의 말단인 레지던트 1 년 차라는 사실을 감안해 보았을 때 그의 비극은 일종의 필연이었으니...


"이유나 들어보자. 왜 보청기를 안 끼는 건지."


세미나실 문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무원을 서늘하게 내려다보는 펠로우 선배 앞에서 무원은 두 손을 공손히 모은채 서있었다. 무원의 묵묵부답이 길어지자 펠로우의 깊고 이지적인 눈동자에 빡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그 펠로우는 인턴 동기들 사이에서 아이돌로 추앙받는 존재이자(특히 그녀의 날카로운 지성과 합리적인 태도가 동기들 사이에서 높게 평가되었다), 무원이 짝사랑하고 있는 선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세미나 발표 중이었잖아. 발표자가 소리를 못 들으면 중간중간 날아오는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고. 이래서 세미나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가 있겠어? 언제까지 너 때문에 내가 혼나야 해?"


서늘하게 벼려진 칼로 회라도 뜨듯 섬세하게 인과를 되짚는 선배에게 무원은 기다란 상체를 구기듯이 접으며 비굴해 보일 만큼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고개를 너무 숙인 탓에 선배의 입모양을 볼 수가 없어졌으므로 그는 더 이상 선배의 잔소리를 읽지 못하게 됐다. 무원의 귀에 '비효율적', '납득', '상식', '왜'와 같은 단어가 처음엔 희미하게 스쳐가더니 점차 아프게 꽂히기 시작했다. 남몰래 짝사랑해 온 선배의 냉랭한 분노는 무원을 절망적인 기분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는데, 무원에게는 어쩐지 이 비극적인 상황이 '보청기를 끼지 않았기 때문'을 넘어 '자신이 청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만 같았다. 이 비약은 그를 더 갈 데 없는 코너로 몰아넣는 걸로도 모자라, 저 벽 너머 어딘가, 그러니까, '만일 내가 다른 아버지를 두었더라면...' 하는 무용하기 짝이 없는 가정문까지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답한 순간에 다다를 때면 의례 그러하듯 무원은 '제발'과 쌍을 이루는 또 다른 단어를 재채기하듯이 중얼거렸다(무원의 동기들은 그에게 이것이 틱 장애의 일종이라고 알려주었다).

몰라! 몰라! 몰라!


보청기를 끼지 않는 것은 아마 아버지에 대한 저항 때문이리라. 

라고 어떤 동기들은 추측했다. 그 추측에 대해 다른 몇은 무원이 과연 저항이라는 숭고한 행동을 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인가 하고 반박했는데, 그의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리는 목, 기민하지 못한 지성, 위기의 순간마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몰라!'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회피성향 등이 그 주장의 뒷받침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월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 거야, 그냥. 너무 멍청해서 보청기를 끼면 잘 들린다는 사실도, 잘 들리면 삶이 나아진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거야."


하지만 무원의 시험 성적표와(비록 턱걸이로 아슬아슬하게 합격하였다고는 하나) 의대 합격통지서 등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무원이 보청기의 효용을 모를 만큼 멍청하다는 의견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무원은 오로지 시각 정보에만 의존해야 하는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의대 합격점을 받아냈을 정도로 꽤나 우수한 지능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한 번 본 장면을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과연 그는 많은 것들을 사진처럼 선명하게 간직했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세한 뼈와 근육의 위치, 뇌를 가로지르는 뉴런의 모양, 그리고 자신의 귓방망이를 날리던 아버지의 경멸 어린 표정. 그는 그날의 장면을 슬로 모션처럼 세세히 기억한다. 딱 두 대였다. 첫 번째는 제대로 맞았고, 두 번째는 빗맞았다. 왼쪽 귀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흘러내렸고, 그것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이 짜증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연이은 장면들: 쯧하고 입천장을 한 번 강하게 차고 내려오던 검붉은 혀, 아직까지도 채 분출되지 못한 분노가 꿀렁이던 목울대.


무원은 결국 병원에서 왼쪽 귀의 청력 회복 불가 판정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친절하게도 일부 단어를 놓쳤을지도 모를 무원을 위해 종이 위에 자신의 소견을 담담하게 적어주었는데, 그 펜 끝을 따라가는 무원의 눈동자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처럼 초점이 없었다. 미동 없이 홀로 다른 세상에 빠져 있는 무원을 깨운 것은 환자용 의자가 덜컹이는 충격이었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간호사의 발이 의자 바퀴에 걸린 것이다. 그제야 무원의 굽은 등이 파드득 펴지며 귀 끝이 붉게 물들더니 입술이 수줍게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그러니까 그 말씀은... 제가 그... 그...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죠?"


무원은 그에 대한 답을 며칠 뒤에 그의 아버지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교복을 입은 채 식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막 들어 올린 무원에게 무원의 아버지는 보청기를 툭 던지며, 행여나 그가 못 알아듣기라도 할까봐 또박또박, 그리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병신 같은 놈. 부끄러운 줄 알면 보청기나 잘 끼고 다녀라!


심해로 가라앉고 있던 무원의 정신이 번쩍 깨어난 것은 그때였다. 뇌가 미친 듯이 간지럽고, 심장이 벌컥벌컥 하고, 손끝이 저릿저릿해졌다. 그 순간 눈앞에 웬 흐물거리는 무언가가 나타나 팔랑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양이 꼭 무원을 약 올리는 것 같았다. 그 해파리 같은 것을 노려보기 위해 무원이 눈을 부릅뜨자 그의 뒷목에 찌지직 전기가 일며 쥐가 났다. 고통이 일자 하나의 질문이 그의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부끄러워야 해? 왜 내가 아파야 하지? 부끄러워야 하는 건 병신이 된 내가 아니라, 날 병신으로 만든 아버지여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건 공평하지가 않잖아. 왜 내가 부끄러워야 해? 응? 왜 내가 부끄러워야 하냐고? 해파리는 아버지에게 반박 한마디 못하는 무원이 가소롭기라도 하다는 듯 살랑살랑 춤을 추며 무원의 뇌를 더욱 간지럽혔는데, 무원은 빳빳하게 굳은 목을 좌우로 힘주어 비틀며 해파리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저 해파리, 잡아서 터뜨리고 싶어... 죽여버리고 싶어! 마침내 무원이 해파리에게 손을 뻗으며 동시에 아버지에게 


왜 내가 부끄러워야 해요?


하고 용기 내어 소리 지르려는 순간, 팔랑거리던 해파리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무원의 얼굴을 그대로 덮쳤다. 해파리에게 모든 숨통이 막힌 무원은 그날 처음으로, 발작에 가까운 틱 증상을 보였다. 그의 나이 열여덟 때의 일이다.


자, 그럼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무원이 보청기를 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답을 모른다. 다만 들리던 소문에 의하면, 어느 날 무원이 수학 시간에 '명제의 대우(*하나의 가언 명제에 대하여 그 후건의 부정을 전건으로 하고, 전건을 부정한 것을 후건으로 한 명제. 원명제와 대우 명제의 참과 거짓은 늘 일치한다.)' 문제를 풀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끄적인 적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힌트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명제: 부끄러운 줄 알면 보청기를 낀다.
—> 대우: 보청기를 끼지 않으면 부끄러운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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