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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Sep 24. 2024

Red, 뜨겁게 바라보기











하늘은 높고 햇살은 마냥 따가운 날 하필 시선으로 Red가 자꾸 들어옵니다. 
골목 막다른 집 앞에서, 때 이르게 물고추를 가득 널어놓은 풍경을 만났습니다. 빛깔 곱게 널려있는 마당 안쪽으로, 반짝이는 장항아리들과 고무 화분들이 정겹습니다. 인기척을 내며 열린 대문을 빼꼼히 들여다보자, 후덕한 인상의 어머니께서 실내에 널어두었던 고추를 들고 나오시다 저를 보시고는 구경 오셨냐 묻습니다.



서울토박이라는 이 어머님은 해마다 좋은 고추를 사서 말리고 손질하여 자식들에게 보낸다 하십니다. 마당뿐 아니라 방안 가득 널려있는 매운 고추를 보면서 어머님의 정성을 생각해 봅니다. 어디 고추뿐이던가요, 마당가에 그득한 장항아리마다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매년 직접 담가 자식들에게 보낸다고 하시니 어머니의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있었을까요.



고추 자랑 말미에,  올초 임용교사에 합격하여 학교 선생님이 된 막내딸 자랑까지, 잘 키워 살림을 내어놓으신 육 남매의 자랑이 어머니의 살풋한 표정 속에 자부심과 행복으로 가득합니다. 마당 한편에 앉아 차 한잔 내어주시고,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시겠다더니, 일어서는 제게 지난해 열매를 채취해 싹을 틔웠다는 어린 문주란 한 포기를 기꺼이 내어주십니다.



이즈음엔 왜 자꾸만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운지요. 도심의 한복판에서 폭염의 시기를 두문불출 지내다 보니 어느 틈엔가 슬며시 가을바람냄새 사람냄새가 그리워진 걸까요?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별스러울 것 없이 무심코 지나던 동네 풍경들이 왜 이다지도 절실한 삶의 느낌들로 다가오는 건지, 가능하면 좋은 것만 보고, 이쁜 것만 담고 싶던 마음에서 땀냄새로 얼룩진 장면들에 애정이 가기 시작한 것도 변화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지요, 누추한 것들의 표현이 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지를. 눈에 들어온것들에 마음이 닿아야 마침내 내것이 되는것이겠지요. 


작열하던 태양과  붉은 기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붉은 색깔은 여름의 잔영일까요 아니면 익어갈 가을의 상징일까요?
아무튼 저는 오늘, 짧은 외출에서 뜨거운 것들과 만나고 붉은 기운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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