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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만찬》시나리오. 2막A

by SeaWolf

INT. 「마지막 만찬」 식당 내부 – 저녁

[와이드 롱샷 | 저조도, 청록과 자홍의 대비]
비가 그친 골목. 물방울이 빈 캔 위를 타고 흘러내린다.
아스팔트는 거울처럼 빛을 삼키고,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왜곡되어 흐른다.
카메라는 천천히 내려간다—비에 젖은 신발자국이 문 앞으로 이어진다.

낡은 주택의 지하. 쇠창살이 든 유리문 위로 붉은 간판이 깜빡인다.
손글씨로 쓰인 「마지막 만찬」—글씨는 바래,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벗겨져 있다.
그 위로 빗물이 흘러, 글자가 한 자씩 사라지는 듯하다.


연출 노트: 카메라는 마치 식당을 기억하는 존재처럼 움직인다.
색감은 청록과 자홍의 대비로 구성—생명과 죽음, 기억과 망각을 상징.
조명은 외부에서 오는 빛보다 내부에서 새어나오는 붉은 빛이 우세하게 설정.

[서서히 줌 인 | 포커스 풀 인/아웃]
문이 열린다. 김이 방울방울 떠오르며, 카메라 렌즈를 스친다.
김은 투명한 장막처럼 흐르고, 그 뒤로 식탁 위 실루엣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세 사람? 네 사람? 아니—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단지, 강철수와 손님 한 명만이 확실하게 존재한다.


연출 노트: 김은 기억의 장막을 상징.
카메라는 김을 지나면서 현실과 회상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포커스를 일부러 흐리게 하여, 관객이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하게 유도.

[클로즈업: 조리대 위 손 | 100mm 매크로 렌즈]
강철수의 손. 나이프를 잡고 있다.
칼날은 무광, 마치 검은 돌처럼 빛을 삼킨다.
손등의 주름은 마치 지도처럼 깊고, 기름과 소금이 스며들어 고갈된 땅 같다.
검지가 고추를 베자, 씨앗이 떨어진다. 톡, 톡.
소리는 10배 확대된다. 마치 심장박동처럼.


강철수 (중얼거림, 목소리 낮고 둔함)
고추는 씨를 빼면 맛이 얇아진다.
죄는… 씨를 빼도 뼛속까지 배어 있다.


연출 노트: 배우는 말을 할 때 눈을 감지 말 것.
시선은 고추에 고정. 마치 그 씨앗 하나가 과거의 한 조각이라도 되는 듯.
손의 떨림은 미세해야 함—감정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근육의 기억.

[팬 오른쪽: 식탁 | 카메라 천천히 스위프트하게 이동]
손님. 마흔 후반, 양복은 비싸지만 구겨졌다.
위스키 잔은 반쯤 비었고, 손가락은 땀으로 축축하다.
눈은 강철수의 손을 쫓는다—칼, 고추, 손가락 끝.
그의 시선은 마치 기계처럼 정밀하다.


손님 (조용히, 숨이 막힌 듯)
저는… 죽기 전에, 평양 냉면을 먹어보고 싶습니다.


연출 노트: 배우는 말을 할 때 목소리를 떨리게 하되, 눈물은 금지.
감정은 억눌려야 하며, 대사는 마치 자백처럼 느껴져야 함.
조명은 그의 얼굴 왼쪽만 비추고, 오른쪽은 어둠 속—과거와 현재의 경계.

[강철수 멈춤 | 슬로우 모션 1.5배]
칼끝이 고추 위에 멈춘다.
김이 천천히 올라오며, 카메라를 흐리게 만든다.
그가 고개를 든다. 표정은 없다.
하지만 눈동자 속에서 기억의 파편이 번뜩인다—
0.5초간, 어린 강철수가 조리복을 입고 국물을 섞는 장면이 겹쳐 보인다.


강철수 (목소리 낮게, 마치 기도처럼)
평양 냉면이라…
그걸 누가 드셨다고요?


손님
제 아버지입니다.
2003년,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열린 만찬에서.
그는 우리 외교관이었고…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연출 노트: 배우는 "그날 밤"을 말할 때 호흡을 멈출 것.
카메라는 그의 입술에 클로즈업—말이 끝난 후 2초간 정지.

[강철수의 손이 살짝 떨린다 | 스테디캠, 근접 촬영]
그는 고추를 내려놓고, 냉장고 문을 연다.
철문이 열리며, 냉기가 카메라 앞을 가로지른다—
안개처럼 퍼지고, 그 안에서 검은 박스가 나타난다.
박스 위엔 붉은 글씨: “조선의 냉면”.
서류 봉투처럼 낡았고, 모서리는 찢어져 있다.


강철수
그날, 제가 냉면을 만들었습니다.
국물은 산초와 사과즙, 고명은 돼지고기와 오이.
국수는… 수제분으로 반죽, 얼음 위에서 삼백 번 친 것.
그게… 그분의 마지막 음식이었습니까?


손님 (목이 메인다, 손가락이 잔을 움켜쥔다)
네.
하지만… 식중독이 아니었어요.
국정원 보고서엔… 독극물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죠.
그냥… 외교적 사고로 덮어졌어요.


연출 노트: "외교적 사고로 덮어졌어요"를 말할 때,
배우는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을 것—비통한 아이러니.

[강철수의 손이 박스를 여는 속도가 느려진다 | 초점 이동: 손 → 눈 → 박스]
그는 박스 안에서 소면을 꺼낸다.
면은 햇빛을 본 적 없는 듯, 희다.
물에 담그자, 면이 천천히 풀어진다—뱀이 꼬리를 풀 듯.
물이 흐르는 소리만 가득하다. 단조롭고, 끝없는.


강철수 (목소리가 더 낮아짐)
그날, 저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국물에 소금을 두 스푼 더 넣어라.”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소금은… 고혈압 환자에겐 칼보다 무섭습니다.
조금만 과하면… 심장이 멈춥니다.


손님의 눈이 커진다 | 클로즈업, 눈동자에 반사되는 조리대 불빛


손님
제 아버지는… 고혈압이 있었어요.


강철수 고개를 끄덕인다 | 슬로우 모션, 고개 끄덕임이 3프레임에 걸쳐 완성
그는 면을 삶는다.
김이 올라오며, 카메라가 흐려진다.
그 안에서 어린 강철수가 보인다—
흰 조리복, 눈을 감은 채 국물에 소금을 넣는다.
그의 입이 움직인다—"이건… 죽이는 겁니다."


강철수 (회상처럼, 목소리 이중 녹음)
저는 그때 말했습니다.
“이건… 죽이는 겁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말씀하셨죠.
“요리는 명령이다. 질문은 필요 없다.”


연출 노트: 회상 장면은 실제 영상이 아닌, 그림자 연극처럼 처리.
화면 왼쪽 아래에만 어린 강철수의 실루엣이 비치고, 나머지는 흐릿.

[손님이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켠다 | 클로즈업: 잔이 떨리며 바닥을 치는 소리]
잔이 식탁에 내려놓이며, 산산조각 날 듯한 진동.


손님 (목소리 날카롭게)
그래서… 당신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란 말입니까?
그게 다입니까?


강철수 (긴 정지 후, 시선은 조리대에 고정)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 냉면은… 당신 아버지가 드신 그 맛을 되살리려는 게 아닙니다.
이건… 내가 감추고 싶었던 진실의 맛입니다.


연출 노트: "내가 감추고 싶었던 진실의 맛"을 말할 때,
배우는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릴 것—마치 심장이 아픈 듯.

[조리대 위, 국물이 끓는다 | 트래킹 샷, 카메라가 국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
강철수는 소금을 계량스푼으로 담는다.
한 스푼.
두 스푼.
그는 멈춘다.
세 번째 스푼을 들어 올리지만, 손이 떨린다.
소금이 흘러내린다—마치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천천히.
결국, 그는 스푼을 놓고, 소금을 버린다.


강철수 (조용히, 거의 속삭이듯)
이 국물은… 소금 없이 만들겠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먹었어야 했던 그 맛.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처음으로 만드는 맛입니다.


연출 노트: 소금이 흘러내리는 장면은 슬로우 모션 + 사운드 확대.
소금 알갱이 하나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들리게 처리.
배경 음악은 없음. 오직 물소리, 숨소리, 소금 떨어지는 소리만.

[클로즈업: 강철수의 손이 국물에 손가락을 담그는 장면]
손끝이 국물을 감촉한다.
김이 올라오며, 그의 눈에 과거와 현재가 겹쳐 비친다.


강철수 (속삭임)
이번엔… 제 손으로 선택하겠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위한 요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위한 음식을.


연출 노트: 이 대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러나 관객의 귀에 꽂히도록.
카메라는 그의 손끝에서 시작해, 천천히 식탁 위 빈 그릇으로 이동.

[화면 어두워짐 | 붉은 간판의 빛만 남음]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문 위의 「마지막 만찬」 글씨가 빗물에 젖어 흐려진다.
그 위로, 새로운 글씨가 덧씌워지는 듯한 효과—
「처음의 맛」


연출 노트: 이 장면은 환상일 수도, 현실일 수도.
관객은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라.
단 하나, 붉은 글씨만이 희미하게 빛난다.

[블랙 아웃]


사운드: 국물이 천천히 끓는 소리, 그리고 한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
한 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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