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의 미래를 기대합니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글을 쓰는 법을 배운다는 오픈 AI의 챗GPT가 얼마 전 공개되며 세상이 떠들썩하다. 원하는 정보를 탐색하는 것 이상의 '정답'을 제공하는 챗GPT는 머지않아 구글을 대체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PC통신부터 스마트폰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디지털 유목민이자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경험한 바를 되돌아 생각해 보면 챗GPT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진다.
M세대의 시작점 즈음에 해당하는 나는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세대라 볼 수 있는 MZ세대에도 해당이 된다는데 막 10대에 접어든 나의 딸 린아는 온전한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버추얼 세계에도 전혀 거부감이 없는 알파세대라고 한다. 네모난 스크린은 터치만 하면 다 작동되는 줄 알던 꼬꼬마 시절을 거쳐 클로바(Clova)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고, 시리(Siri)에게 오늘의 날씨도 물어보는 그야말로 디지털 디바이스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린아를 보며 격세지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IT업계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업무차 다운로드한 메타버스 세상도 따라잡기 버거운데 린아가 성인이 되는 10년 후에는 과연 어떤 세상을 마주하게 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내가 10살이던 그때 손바닥만 한 전화기가 일상 대부분의 일을 해결해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유튜버가 될 줄이야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린아는 로블록스를 시작으로 지금은 제페토에 푹 빠져 있는데 주말이면 친구들과 약속 시간을 정해 제페토 월드에서 만나 좋아하는 아이돌의 댄스 챌린지를 함께 하고, 가상현실 세계의 브이로그를 만들어 친구들과 공유하는 활동들을 즐겨한다. 언뜻 보면 나의 20대와 함께 했던 싸이월드의 진화한 버전 또는 바비인형 놀이의 온라인 버전인가 싶기도 하지만 딥러닝 기반의 정교한 안면인식 기술로 만들어지는 3D 아바타의 매력은 바비가 줄 수 없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린아에게 선사하고 있는 듯하다.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아바타를 섭외하고,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협찬받은 제품을 광고하고, 제페토 스튜디오에서 배경을 설계하며, 아이템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하는 이 시대에 제페토나 유튜브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만 가는 린아를 보며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알파세대에게 디지털 디바이스와 미디어를 멀리하게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전교 1등은 비호감이지만 틱톡커는 추종한다는 알파세대 아이들을 보며 현실과 디지털 세상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줘야 하는 부모의 역할이 더없이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기도에서 대치동으로 학원 라이딩을 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함도 아닌 의대에 가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부모도 내 옆에 있고, 1년 내내 캠핑을 다니느라 아이의 학교 체험학습 20일 사용이 오버돼 결석 처리까지 하는 부모도 내 옆에 있다. 나는 여전히 그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줏대 없는 부모이다.
어린이집 등원할 때 입고 싶은 옷과 코디에 집착하는 여섯 살 린아를 보며 나중에 파슨스에 보내야 하나 싶었던 적도 있었고(어린이집 졸업식에서 최고의 패셔니스타라는 별명을 부여받았더랬다.) 블랙핑크의 핑크베놈 안무를 몇 시간 만에 따는 린아를 볼 때는 아이돌을 시켜야 하나 아주 잠깐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제 이과 계열로 진학하지 않으면 대학 진학도 취업도 어려울 거라는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에 혹해서 다가오는 겨울방학에는 기존의 수학 학원에 더해 예비 5학년 연산 특강을 신청하고 말았다.
린아의 돌잔치에서 사회를 맡았던 아나운서가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나 같은 회사원은 절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저작권을 가진 음악가나 자신의 브랜드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린아의 한 살 생일을 축하하러 와준 갓 결혼한 후배 부부는 그 말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지만 네가 어때서 그런 말을 하냐며 나의 엄마는 화를 내셨다. (사실 엄마가 그 말에 그렇게 서운해하실지는 생각도 못 했다. 엄마에게는 나도 자랑스러운 딸일 테니까.)
이렇게 키워야 하나 저렇게 키워야 하나 하루에도 열두 번을 더 고민하고 생각이 바뀌기도 하지만 린아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이 어떠할지 좀 더 잘 들여다보고 캐치해서 아이가 그 세상을 살아가는데 부모로서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의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될지 어느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어떤 능력자가 되어 있을지 린아의 미래에 엄마인 나는 오늘도 열심히 기대를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