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우연한 기회에 사내일반강사에 선발되었고, 이번엔 사내전문강사에 도전해 보았다. 4명의 전문위원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냉혹한 경연대회이다. 만 45세... 이 나이에 아이돌이나 배우를 꿈꾸는 청춘처럼 오디션이라니.
강의계획안이 통과되었다는 말에 처음엔 기뻤다. 멋진 리조트에서 맛난 조식뷔페도 먹으면서 명강사에게 강의기법을 사사한다는 말에 들뜨기도 했다. 꿀 같은 이틀의 교육이 지나고 난 오늘 이 오디션장 앞에 서있다. 내 차례까지 3시간이 남았다. 이제 내 앞사람이 들어간다. 모두에게 주어진 동일한 10분이라는 평가시간. 이제 10분 후면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갑자기 극강의 긴장감이 밀려오면서 여기까지 달려온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상영되기 시작한다.
검찰공무원이 되고 싶어 2년의 수험생활을 보냈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맞벌이를 하면서 애 셋을 낳고 키웠다. 어느 날 집 근처 공공기관에서 공채 시험이 있다는 말에 ‘아, 바로 이거다.’ 싶었다. 수험여건이 너무나 열악했지만 내 인생의 승부수를 다시 띄워볼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했다. 막둥이를 포대기에 업고 공부하여 입사한 지금의 직장은 어쩌면 처음부터 운명이었나 보다.
지금 이 순간 생뚱맞게 어긋난 인연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한때는 애틋했는데 이유도 모른 채 틀어져버린 지금. 오래 아팠었다. 하지만 이제 기력이 달려서 아픈 것들을 기억해 낼 힘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안타까웠던 인연들이 부디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길 작게나마 기도했다.
지금 이 순간 사랑스러운 가족과 정겨운 친구들 그리고 날 응원해 주는 지인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 언제나 날 것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찐 내편들을 사랑하고 축복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따듯하게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언제나 자책하고 몰아세우기만 했던 나를 늦었지만 이 오디션장 앞에서 살포시 안아본다.
“18번 참가자 들어오세요.”
문이 열린다. 무대에 선다. 내가 발표한 시간은 단 10분이지만 내가 준비한 기간은 45년이었다. 내 인생을 녹여낸 10분의 강의를 끝으로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 이렇게 나의 인생 2막이 시작되고 있다. (두둥)
<전통찻집의 여유를 정겨운 벗과 자주 가지길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