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내 나이가 어느덧 중년이 되어있다. 내가 기억하는 인생의 첫 장면은 쥐가 천장에 사는 낡은 시골집에서 연필을 가지고 심심하게 놀던 세 살의 나다. ‘어, 나는 누구지, 여긴 어디지, 무엇을 해야 하지.’ 의문만 가득한 채 세상에 던져진 듯 심히 당혹스럽고 막막하였다.
철이 없었고, 무식했었고, 무기력했었다. 연못에 마냥 떠다니는 부레옥잠처럼 태어난 김에 사는 인생으로 마감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할 때 즈음 부모님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나라의 수도, 서울특별시로 상경하게 된 13세의 나는 타이어공장의 매연이 뒤덮은 신도림역 하늘을 바라보며 마치 인생 2회 차를 다시 살게 된 것처럼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것을 품었더랬다.
작은 동네에서 전교 1등을 한 후 서울대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들뜬 적도 있었고, 학교에서 연예인 뺨치게 잘 생긴 남학생의 고백을 받고는 미남을 쟁취한 자부심 가득한 결혼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법대를 다니면서는 검사가 되어서 집안을 일으키고 부모님 꽃가마 태워드리는 야망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무모한 기대감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줄 뿐이었다. 나 자신을 지나치게 높게 보는 기대감, 타인에게 바라는 기대감... 이런 수많은 기대감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헛된 것임을 이제 나는 인정하련다.
기대감과 싸우면서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나의 ‘마음’을 놓친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고들 한다. 농사를 짓듯 나의 마음 밭을 수시로 점검하고 가꾸었어야 했는데 너무 방치해 버린 거다. 마음 밭을 가만히 들여 다 보니 잡초(나쁜 마음)도 있고, 돌부리(산만함)도 가득하다. 맑은 날(행복한 날)만 계속되길 바랐었는데 농사가 잘 되려면 비 오는 날(슬픈 날)도 필요했었다. 또 태풍(분노)과 각종 자연재해(돌발상황)에 미리 대비하고 예방해야 농사를 망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밀려오니 잠시 ‘내가 헛살았나’ 하는 허무함(현타)이 밀려왔었다. 하지만 곧 안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의 안 좋은 기억(상처, 시련, 후회, 실패, 배신, 수치심 등)은 결국 마음 밭의 좋은 거름이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론 부질없는 기대감에 집착하기보다는 나의 마음 밭을 정성스럽게 경작하려 한다.
<오늘부터 마음경작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