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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May 12. 2024

스위스 제네바,
"시간의 가치"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33 _ Geneva, Switzerland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위스 제네바,

시간의 가치.



    리옹에서 동쪽으로 약 2시간 기차를 타면 스위스 국경을 지나 '제네바'에 도착할 수 있다. 스위스는 여타 다른 일반적인 유럽 국가들과의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이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았고, 통화 또한 '유로(Euro)'를 쓰는 유로존이 아닌, 자국 화폐인 '스위스 프랑(CHF)'을 사용한다. 특히 스위스가 국제외교적으로 특별한 이유는 바로 '중립국'의 지위를 오랜 기간 지켜냈기 때문이다. 세계 2차 대전을 지나 냉전 당시에도 꾸준히 중립을 유지하였으며, 현재까지 어수선한 국제관계들 속 평화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에 따라 스위스 제네바에는 UN 사무소를 포함한 많은 국제기구, NGO, NPO들이 위치하고 있다.



    스위스는 '평화'라는 단어와 너무 잘 어울리는 나라다. 중립국의 지위뿐만 아니라, 알프스 산맥을 중심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어, 이곳에 있으면 누구라도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푸릇푸릇한 풍경에 집중하게 된다. 제네바는 '레만 호수'가 '론 강'이 되어 만나는 접점쯤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 어디서든 알프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청정한 푸른 호수를 볼 수 있다. 또한 도시를 둘러싼 산들을 보며, 정말 자연 속에 지어진 예쁜 도시임을 느낄 수 있었다.


    스위스는 금융업과 제조업 산업도 잘 발달되어 있어 국민들의 삶의 질도 높으며, 실제로 스위스를 여행하는 내내 '이곳이 가장 지구에서 이상적인 국가 중 한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관광객들에게는 높은 물가와 어려운 접근성으로 인해 쉽게 여행하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종교개혁과 원리원칙



Reformation Wall

    제네바가 유명한 이유들 여러 가지 중 한 가지는 바로 '장 칼뱅'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칼뱅은 마틴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 당시 대표 개혁자 중 한 명이다. 종교개혁 후 제네바에서 사망할 때까지 남은 여생을 본인의 종교 철학을 담아 제네바를 신정정치 프로테스탄티즘의 대표 도시로 이끌었다. 당시 그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만큼 지금도 제네바 대학에 방문하면 칼뱅의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동상과 박물관을 볼 수 있다.


    당시 타락했던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해 압박 속에서도 본인의 사상에 기초한 큰 종교적 개혁을 이뤄낸 것에 있어서 대단하다 생각한다. 작은 움직임에서 큰 변화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칼뱅의 종교개혁은 다소 엄격하며 금욕주의적 성향이 짙었다. 세속적 쾌락에 있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만큼 축제를 금하거나, 제네바 시민들에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 다른 '원리원칙'을 세움으로써 사상의 근간을 지켜낼 수도 있지만, 너무 '원칙' 자체에 매몰되어 다음 세대가 그 참뜻을 자칫 잘못 이해할 경우, 또 다른 형태의 원리주의적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 종종 어떤 이들은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기보다 단순히 그 원칙, 규칙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상황에 맞는 유연한 사고가 부족해질 수 있으며, 원칙에만 입각한 '꽉 막힌 답답이'가 될 수 있다. 원리원칙의 목적은 어떤 시스템의 체계를 잡기 위한 것이지, 해당 부분을 남용해 누군가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란 것을 기억하자.






시간의 가치



제네바의 시계점

    스위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제조업 산업은 바로 세공업이다. 과거부터 농업이 크게 발달하기 어려운 환경과 자원이 없는 지역으로써 가진 것이라고는 인력 밖에 없었다. 인력을 최대한 활용한 생존 방식으로 세공업 중심의 '장인정신'이 발달하였다. 정밀한 기술들을 점차 쌓아나가며 '시계' 제조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현재 유명한 하이엔드 럭셔리 시계 브랜드 대부분은 스위스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시간의 개념이 계절과 해의 위치 등을 파악하여 1시간 혹은 그 이상의 단위로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러나 과학과 공업의 발전을 통해 점점 분 단위, 초 단위의 정교한 시계들이 만들어지며, 시간에 대한 개념이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근무 스케줄, 근무시간 측정에 많이 활용되었으며,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분 단위의 시간을 확인할 만큼 본인의 바쁨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사치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상당히 과학적인 질문이기도 하며,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The Flower Clock (L'Horloge Fleurie)

    우리가 단순히 이해하는 바 '시간'은 공간과 함께 인간이 3차원 세계를 이뤄 함께 흘러가는,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자연의 물리적 법칙 같은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두고자 인간은 '기록'을 하고 '사진'을 찍어 '과거'의 단상을 현재로 일부나마 남겨둔다. 그러나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방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왜곡되거나, 물체의 빠른 속도로 인해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변한다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아직까지 인간이 시간을 통제하기에는 과학적 진보가 더욱 필요할 듯하다.


    여러 가지 상상의 산물로 '타임머신'과 같은 소재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인간이 시간을 진정한 의미로 통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부정적인 편이다. '운명'과 상반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통제함으로써 과거의 후회되는 일을 없애고, 미래를 바꾸며 주어진 운명에 거역하는 것. 이것이 인간이 시간을 통제하려는 가장 원초적 이유라 생각한다.


    반대로 철학적인 관점에서 '시간'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다. 누구에게나 매일 같이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하루를 열심히 살아 하루하루가 계속 쌓일수록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가 많아진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일분일초를 소중히 아낌없이 사용할수록 더욱 다채로운 인생을 있다. 


    또한 그리스어에서 시간을 표현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한다면, '카이로스'는 '기회의 순간, 의미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를 형상화할 때 앞머리는 풍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로 표현한다. 그 의미는 한 번 지나간 시간, 기회는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누가 되었든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어떤 이는 인생을 100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오랜 삶의 시간을 가지는 반면, 어떤 이는 생명의 꽃이 제대로 피기도 전에 세상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자본으로 다른 이의 시간과 노동력을 사서 본인의 시간을 벌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본인을 위한 시간 없이 하루종일 일만 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 '인 타임'에서는 본인이 가진 남은 수명 시간이 '부(富)'가 되어버린 디스토피아적 사회를 잘 표현하고 있다.

행복노트 #30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소포클레스


    시간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 어렵게 여러 말들을 써놓았지만, 결론적으로 나에게 '시간'은 '당연하지 않은 것' '찰나의 작은 순간도 감사한 것'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과거에 머물면 후회를 불러들이고, 미래에 머물면 불안을 불러들인다. 내가 '현재'에 존재하고 현재 시간에 집중한다면 후회할 과거를 최소화하고 긍정적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현재에 머무는 것이 인간이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 무슨 일을 하는데 시간을 투자할지 신중해질 필요가 있으며, 한 번 지나간 시간은 과거가 되어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매 순간 진심으로 살아가자.


기다림


    스위스 제네바를 걷다 우연히 꽃다발을 든 할아버지를 발견하였다. 보이는 모습에서부터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삶을 함께 한 사람. 그 사람의 작은 기쁨을 위해 기꺼이 꽃 한 송이 꺾어 갈 수 있는 마음. 내가 가진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게 행복이 되고, 기쁨으로 내 시간을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며, 그것이 아깝지 않고 충분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 아닐까.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삶의 일부를 주는 것이다.

Geneva,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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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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